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들 모습만큼 대견한 것도 없다. 책 읽기에 골몰하는 요즘 국어 시간이 딱 그렇다. 책에 빠진 아이들의 뒤꼭지도 이쁘려니와, 나 또한 그 옆에 앉아 더불어 삼매경에 빠질 수 있으니 이런 즐거움이 없다.
사실 학년말 쯤 되면 중3 수업은 거의 전장을 방불케 한다. 외고나 예술고에 합격한 녀석들은 툭하면 엎어져 자고, 나머지 아이들도 덩달아 긴장이 풀려 수업과는 따로국밥으로 노는 탓이다. 내신 성적 90% 안짝에 들면 인문계 진학에 큰 문제될 게 없는데, 학년말 시험에 공연히 힘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학교 수업은 적당히 때우고 고교 선행학습이나 신경 쓰라는 학원의 부추김까지 겹치니 아이들의 노는 폼이 거의 ‘말년병장’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학기초에 3학년 국어 교사들이 모여서 작전을 짰다. 그나마 아이들이 수업에 열의를 보이는 2학기 중간고사까지 교과서 주요 단원을 발췌하여 가르치고, 그 이후는 교과서 대신 책을 읽히자. 그나마 여유가 있는 이때 읽지 않으면 고등학교 가서는 어림도 없다. 학년말 시험도 독서평가로 대신하자. 뭐 대략 그런 작전이었다.
이후 발 빠르게 아이들에게 읽힐 책을 고르는 작업으로 들어갔다. 고교 문학수업 준비를 겸할 수 있는 단편소설 여남은 편, 초딩 때 그림책으로 읽었을, 그러나 이제는 완역본으로 읽어봄직한 세계명작류의 단편과 고전소설 서너 권. 문학도서만 읽히랴, 인생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전기도 한 권(<쉽게 읽는 백범일지>), 그렇게 선별한 뒤 넉넉한 분량으로 책을 신청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계획대로 책 읽기로 들어가면서 처음에는 좀 걱정이 되었다. 이것마저 안 하겠다고 튕기면? 그러나 기우였다. 간단한 안내만 했을 뿐인데, 뜻밖에 아이들이 쉽게 빨려 들어왔다. 뭐라 잔소리할 것도 없이 일단 분위기만 잡히면 쥐 죽은 듯 조용하게 책 속으로 파묻혔다.
이제는 책바구니만 가지고 들어가면 만사가 순조롭다. 저희들이 알아서 가져다 읽고, 다 읽으면 다른 책으로 바꿔 읽는다. 독후감의 강요가 없으니 읽는 속도도 빨라서 도서실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 녀석들도 있다. (숨어서 다른 공부를 하는 삐딱이가 없는 것은 아니나) 거듭 고마울 뿐이니, 아이들의 도란거리는 소리조차도 예쁘다.
“포우라는 사람 변태 아냐? 작가 소개를 보니 열세 살짜리 사촌동생과 결혼을 했대. 어쩐지 검정고양이 이게 끔찍하더라니.”
나도 그 틈에 묻혀 아이들의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같이 책을 읽는다. 입시가 여지껏 살아있더라면 엄두도 못 냈을 학년말 독서수업, 나는 오랜만에 즐겁고 행복하다. 그리하여 슬금슬금 아이들 사이를 돌며 한마디씩 던져보는 것이다.
“알퐁소 도데가 쓴 <별>보다 황순원의 <소나기>가 더 멋지지 않냐?”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