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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처녀귀신과 소풍을? 오~노!

등록 2006-11-05 18:50수정 2006-11-06 16:31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

김밥, 삶은 달걀, 10원짜리 크림빵, 그리고 보란 듯 하늘 저만치 치켜 올린 채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마시던 그 사이다. 그리고 수건돌리기와 장기자랑, 보물찾기….

‘소풍’이란다. 이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 그런데 우리 아이들 별로 반가와들 하지 않는다. 설레는 마음은 커녕 오히려 안 가면 안 되냐는 아이까지 있다. 학창시절의 꽃, 소풍이 우째 이런 지경까지 되었는지. 아무래도 이번 소풍엔 수건돌리기까지는 못하더라도 뭔가 기억에 남는 이벤트 한번 만들어 줘야겠다. 그래, 이번에야말로 진짜 ‘테마 학습’의 진수를 보여주리.

가만 있자. 우선, 볼 것이 있어야겠지만 단순히 보고만 온다면 소풍의 의미가 없겠지? 이렇게 좋은 계절에 학교 밖을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 공기 좋은 곳에서 맘껏 뛰어 놀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라는 뜻. 그렇다면 한창 때 아이들 서른 명이 맘껏 뛰놀만한 곳이라…. 고궁? 초등학생도 아닌데…. 산? 그러다 이놈들 지쳐 떨어져 “아이고, 제발 살려 줍쇼”하면 어떡하나?

며칠을 고민, 고민하다 볼 만한 것과 등산과 놀이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곳을 생각해 냈다. 바로 서대문형무소와 안산, 그리고 연세대학교 교정을 잇는 코스다. 출발은 서대문형무소부터다. 무시무시한 장소니 이놈들 분명히 좋아할 거다. ‘빠삐용’, ‘쇼생크 탈출’, ‘더 록(The Rock)’에 ‘도마 안중근’까지 적당히 비빔밥을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 다음 행선지는 형무소 뒷길로 해서 안산 꼭대기까지. 높이가 채 300m도 안 되는 언덕 수준이지만 그래도 힘들다고 투덜대겠지? 하지만 적당히 땀을 흘려야 뭔가 성취감도 뒤따르는 법. 게다가 안산 정상엔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어 사진발 끝내준다. 또, 발밑으로 펼쳐지는 서울의 전경은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인왕산, 유유히 흐르는 한강, 좌청룡 우백호에 여성의 자궁같은 지형 어쩌구 하면 지리 교육과 성교육은 절로 하는 셈. 여기에 ‘등동산이소로(登東山而小魯)하고 등태산이소천하(登泰山而小天下)하더라’며 한자성어 한 구절에, 눈 아래 빌딩 숲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저 많은 빌딩 중 성냥곽만한 빌딩 하나도 아니요, 한 층도 아니요, 고작 한 칸 차지하자고 그래, 평생 고생하는 인생 어쩌구저쩌구’ 하면 그것 또한 인생 철학 강의, 얼씨구.

산 정상에서 점심 식사 뒤 봉원사 쪽으로 하산해 사찰 곳곳에 써 있는 한자 몇 자 폼 나게 설명한 뒤 연세대학교로. 교정에 있는 윤동주 시비 앞에서 잠시 국어 수업 5분 특강. 그리고 드넓은 운동장에서 축구, 축구, 축구! 운동 끝난 뒤 신촌역에서 쌈박하게 ‘테마 학습’ 종례. 오, 예!

이렇게 멋진 계획서를 제출했더니 한 선생님 왈. “그 안산이란 곳 몇 년 전인가 살인범, 거 누구야 하여간 여자 여럿 죽여 매장한 곳 아냐? 거기 애들 데려 갔다간, 그것도 총각 선생이 새파란 사내애들 서른 명씩 데려 갔다간 아마 처녀 귀신들이 가만 안 놔 둘 걸?” 오 마이 갓!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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