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단식 58일째, 일주일 동행 취재기
“안해본 것 없다” 단식농성현장엔 관까지
“안해본 것 없다” 단식농성현장엔 관까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파업이 1000일을 넘어섰다. 그 동안 기륭 노동자들은 고공시위, 단식, 점거농성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고, 7일까지 58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여기서 죽겠다”며 농성장 천막에 관까지 올려놓았다. <한겨레> 취재영상팀은 지난 일주일동안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 현장과 단식농성 현장, 국회 점거시위 등을 동행 취재하면서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들어봤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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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단식하게 되면 간과 신장 등에 치명적 영향을 끼쳐 언제 의식을 잃을지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조합원들은 단식 농성장으로 관까지 올렸습니다. 이들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김소연 분회장: 아무래도 기력은 좀 없고요.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주로 누워 있다가 잠깐씩 앉고. 뭐 그러고 있죠. 1000일 넘게 오면서 안 해본 것 없이 다 해 봤죠. 고공 농성까지. 비정규직 문제가 목숨을 걸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동안 다양한 투쟁을 했었고 교섭도 수십 차례 했었고. 그런데 그럴 때마다 해결될 것처럼 하다가 다시 뒤집히고.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으니까 다른 선택의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흥희 조합원: 저는 46킬로그램이었는데요, 지금 한 36킬로 정도. 이번이 아니면 기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4년 싸우고 있는 우리가 이기지 못한다면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까요. (죽을 셈인가?) 그것이 필요하다면… 올라올 때부터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였고….
이들이 직장에서 쫓겨난 것은 2005년 8월입니다. 회사는 이들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문자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했습니다.
윤종희 조합원: 64만1850원이었는데요. 그 당시 최저 임금이 64만1840원이었습니다. 거기서 10원을 더 주고 잔업을 70시간 80시간. 100시간을 넘겨도 100만원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제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데도 휴가를 낼 수 없었습니다. 휴가를 내면 곧바로 해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럼에도, 조장에게 부당한 것의 수정을 건의했다가 잡담한다고 해고당했습니다. 윤씨는 70여 일 전 30미터 상공의 시시티브이탑(CCTV)탑 위로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였습니다. 1000일 동안 싸웠지만 해결의 기미가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윤종희 조합원: 아이들은 엄마 왜 못 오냐고, 무슨 일 있느냐고 얘기하는데 차마 고공 농성 간다고 얘기 못했어요. 애를 꼭 껴안고 그냥 애가 보지 않게 눈물 한 방울 흘리고 올라왔는데요. 제 아이들의 미래를 제가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제가 천일동안 싸우면서 느꼈던, 이 사회가 얼마나 비참한지 제가 잘 알기 때문에…. 쟁점은 기륭전자가 이들 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가 맞느냐 아니냐 하는 점입니다. 회사는 이들이 파견회사 직원일 뿐 기륭전자의 노동자가 아니므로 교섭할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기륭전자 회사 쪽 관계자 : (결국, 이들은 기륭전자 직원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죠. (실질적 사용자의 지위에 있었다는 점도 부정하나?) 그렇습니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박사: (기륭전자는 검찰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기업의 정규적으로 고용되는 매우 안정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입니다. 그러한 고용을 한 대가로 사용주가 감당해야 하는 대는 과태료 정도를 무는 것에 그치고요. 단식이 43일째 되던 날, 경찰의 체포영장이 발부됐습니다. 단식 농성장이 회사의 사유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금천경찰서 관계자: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회사가 고소를 했나?) 그렇죠. 우리가 고소를 안 하는데 왜 막 그렇게 하겠습니까? (건조물 침입죄로?) 그렇죠. 개인 사유지 아닙니까? 정부 여당에도 읍소해 봤습니다. 한나라당의 파워는 대단했습니다. 배영훈 대표이사가 즉각 교섭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륭전자 노조는 이 교섭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6월 잠정합의안과 달리 직접고용 약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소연 분회장: 정부 여당한테 살려달라고 호소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다시 칼날이 되어서 저희에게 돌아온 상황이에요.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경영학에서도 기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많이 그러는데, 이건 사람을 중요한 자산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최대한 줄여서 써야 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폐기해야 할 비용 내지는 소모품 정도로 쓰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고요, 이런 상황에서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마저도 갉아먹는 양상으로 갔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단식자들은 점점 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보애 서울의료생활협동조합 간호사: 저혈당 증세가 계속 지속하면 좋지 않고 혈압도 너무 떨어져 있는 상태고 지병도 있고 해서 건강뿐 아니라 심각한 위험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단식자들을 말릴 수 없었습니다. 유흥희씨는 살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말했습니다. 8월 1일. 조합원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시민단체, 종교단체의 도움을 받아 다시 한나라당을 찾아가 보기로 합니다. 그러나 일행은 국회 경비에 막혀 면담요청도 하지 못했습니다.
윤종희 조합원: 나오라고! 사람이 죽어 가는데! 그 따위로 회사에 면죄부를 주고, 우리를 죽이려고 그래?
김소연 분회장: 가족 생각은 많이 안 해요. 별로 정신 건강에 도움이 안 되니까요. 속상하기도 하고. 요즘엔 이것저것 음식 생각하면서 같이 맛있는 것 사먹으러 가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하고 있죠.
유흥희 조합원: 정말 끌고 가고 싶은데 차마 끌고 갈 수 없어서 그냥 간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너무나 당연한 건데 너무 많은 목숨을 걸어야 하고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런 얘기 하면서 가는 식구들을 보면서 더더욱 우리가 이겨서 들어가야 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요. 우리가 정말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들기도 하죠.
일행은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이곳에서 단식농성을 하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오늘 밤은 이곳에서 머무를 수 있을 듯합니다. 이때 송경동 시인이 뜻밖의 소식을 접합니다. KBS 앞에서 촛불집회를 벌이던 시민들과 이랜드노조가 응원을 하러 온 것입니다.
김기수씨(촛불집회 참여자): 촛불시위 참가했다가 오게 됐습니다. 힘이 될까 해서.
최장운씨(촛불집회 참여자): 힘이 될 것 같아서 들러 봤어요.
홍윤경 이랜드노조 사무국장: 기륭을 생각하면 항상 맘이 아파요. 정말 비정규직 투쟁하는 많은 노동자의 맏언니 같은 믿음직스러운 모습인데. 요즘에 50일 넘는 단식투쟁하는 것을 보면서 혼자 울 때 많았거든요. 왜 노동자들이 그렇게… 자기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하는 현실이 너무 가슴이 아프고요. 힘내십시오, 기륭 언니들. 저희뿐 아니라 많은 노동자, 학생들 연대하는 동지들이 기륭 동지들 하루빨리 승리하는 날을 손꼽아 응원하고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파이팅.
(국회 안 농성단은 다음날 경찰에 연행됐다가 이틀 만에 풀려났다. 8월7일 현재 김소연씨와 유흥희씨는 단식 58일째다.)
글·영상 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하며 50일째 회사 경비실 옥상에서 단식 농성을 해 온 서울 금천구 가산동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30일 오후 ‘요구가 수용되기 전에는 내려오지 않겠다’는 뜻으로 “근조”라고 쓴 천을 덮은 관을 농성장에 올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들이 직장에서 쫓겨난 것은 2005년 8월입니다. 회사는 이들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문자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했습니다.
윤종희 조합원: 64만1850원이었는데요. 그 당시 최저 임금이 64만1840원이었습니다. 거기서 10원을 더 주고 잔업을 70시간 80시간. 100시간을 넘겨도 100만원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제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데도 휴가를 낼 수 없었습니다. 휴가를 내면 곧바로 해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럼에도, 조장에게 부당한 것의 수정을 건의했다가 잡담한다고 해고당했습니다. 윤씨는 70여 일 전 30미터 상공의 시시티브이탑(CCTV)탑 위로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였습니다. 1000일 동안 싸웠지만 해결의 기미가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윤종희 조합원: 아이들은 엄마 왜 못 오냐고, 무슨 일 있느냐고 얘기하는데 차마 고공 농성 간다고 얘기 못했어요. 애를 꼭 껴안고 그냥 애가 보지 않게 눈물 한 방울 흘리고 올라왔는데요. 제 아이들의 미래를 제가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제가 천일동안 싸우면서 느꼈던, 이 사회가 얼마나 비참한지 제가 잘 알기 때문에…. 쟁점은 기륭전자가 이들 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가 맞느냐 아니냐 하는 점입니다. 회사는 이들이 파견회사 직원일 뿐 기륭전자의 노동자가 아니므로 교섭할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전국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소속 여성 해고 노동자가 26일 서울 구로역 앞 광장에 설치된 철탑 구조물 위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설 것을 촉구하는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불법 고용을 일삼는 최동열 기륭전자 회장이 이 대통령의 중국 순방에 동행하는 것을 비판하고, 즉시 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기륭전자 회사 쪽 관계자 : (결국, 이들은 기륭전자 직원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죠. (실질적 사용자의 지위에 있었다는 점도 부정하나?) 그렇습니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박사: (기륭전자는 검찰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기업의 정규적으로 고용되는 매우 안정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입니다. 그러한 고용을 한 대가로 사용주가 감당해야 하는 대는 과태료 정도를 무는 것에 그치고요. 단식이 43일째 되던 날, 경찰의 체포영장이 발부됐습니다. 단식 농성장이 회사의 사유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금천경찰서 관계자: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회사가 고소를 했나?) 그렇죠. 우리가 고소를 안 하는데 왜 막 그렇게 하겠습니까? (건조물 침입죄로?) 그렇죠. 개인 사유지 아닙니까? 정부 여당에도 읍소해 봤습니다. 한나라당의 파워는 대단했습니다. 배영훈 대표이사가 즉각 교섭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륭전자 노조는 이 교섭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6월 잠정합의안과 달리 직접고용 약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소연 분회장: 정부 여당한테 살려달라고 호소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다시 칼날이 되어서 저희에게 돌아온 상황이에요.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경영학에서도 기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많이 그러는데, 이건 사람을 중요한 자산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최대한 줄여서 써야 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폐기해야 할 비용 내지는 소모품 정도로 쓰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고요, 이런 상황에서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마저도 갉아먹는 양상으로 갔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단식자들은 점점 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보애 서울의료생활협동조합 간호사: 저혈당 증세가 계속 지속하면 좋지 않고 혈압도 너무 떨어져 있는 상태고 지병도 있고 해서 건강뿐 아니라 심각한 위험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단식자들을 말릴 수 없었습니다. 유흥희씨는 살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말했습니다. 8월 1일. 조합원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시민단체, 종교단체의 도움을 받아 다시 한나라당을 찾아가 보기로 합니다. 그러나 일행은 국회 경비에 막혀 면담요청도 하지 못했습니다.
기륭전자㈜에 직접 고용을 촉구하며 장기간 농성을 벌여 온 한 여성 노동자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가해 “목숨을 건 단식 농성을 55일째 벌이고 있는 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최부석 인턴기자 biu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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