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술자리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성추행한 최연희 의원 사건이 한나라당의 발빠른 대응에도 수습될 기미가 없다. 최 의원이 27일 탈당하고, 이재오 사무총장이 거듭 대국민 사과를 했으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여성단체들에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머리를 조아렸으나 한나라당의 ‘더 큰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거세지고 있다. 아직 당 차원의 통렬한 반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탈당으로 안된다. 의원직 사퇴 사법처리” 거세지는 반발

최 의원의 탈당, 한나라당의 거듭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에도 여론은 한나라당을 더욱 코너로 몰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한국기자협회, 여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음식업중앙회 등이 28일 일제히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치권에서는 최 의원 성추행 사건이 정치쟁점화했다. 김현미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는 28일 고위정책회의에서 “최 의원 성추행 사건은 개인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오만함에서 비롯됐다”며 “최 의원 탈당은 한나라당을 보호하려는 연막탄인 만큼 의원직 사퇴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도 성명을 통해 “최 의원이 당직 사임과 탈당으로 무마하려 하거나 대국민 사과 등 버티기로 모면하려고 한다면 큰 오산”이라며 “국민들의 분노를 직시하고 책임있는 결단을 하라”고 촉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성범죄자가 국회의원을 계속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나라당은 최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결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최 의원의 행태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며 “법에 따라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단법인 한국음식업중앙회는 28일 성명을 내고 “최 의원의 해명에 우리는 더욱 분노한다”며 “전국 60만 업주와 300만 음식업 가족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국회의원직 등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라”고 성토했다.

뒤숭숭한 한나라당, 최 의원 두둔하려다 동료 의원도 뭇매
정의화 의원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 누적 과음 탓 실수”

한나라당은 더욱 깊이 머리를 조아렸으나 뒤숭숭한 분위기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를 마친 뒤 “언론인,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한나라당 의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의총에서 지금까지 일어난 의원들의 적절치 못한 일련의 언행을 깊이 자성했다”고 밝혔다.

성범죄 예방을 위한 전자팔찌법을 추진했던 진수희 의원은 이날 의총에서 “의원직 사퇴로 한나라당을 위한 마지막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최 의원을 압박했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제의 술자리에 함께 했던 당 지도부도 당에 누를 끼쳤으니 통절히 사죄하는 의미에서 당직을 사퇴하라”고 ‘연대책임론’도 제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자성하는 분위기 일색인 것은 아니다. 최 의원을 두둔하는 흐름도 감지된다. 신경외과 전문의 출신인 정의화 의원은 28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최 의원의 성추행이 술탓”이라고 두둔하고 나서 거센 반발을 샀다.

정 의원은 “(최 의원은)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당 대표를 대신해 언론인들과 분위기를 돋우려고 과음한 것 같다”며 “신경외과 전문의인 제가 볼 때 나이에 맞지 않는 과음으로 인한 급성 알코올중독 증세로 잘못을 했다고 유추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또 “최 의원이 최근 모친상도 당하고, 따님 혼사도 치르신 분으로 보도처럼 속되게 보이는 그런 분은 절대 아니다”며 “최의원과 통화하면서 위로를 전했다”고 덧붙였다.

누리꾼들은 “모친상이나 딸의 혼사, 선거를 앞둔 스트레스와 성추행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성추행을 술 탓으로 돌려 물타기하려는 비열한 수작”이라고 맹비난했다. 정 의원은 결국 누리꾼들의 거센 비난에 홈페이지에서 문제의 글을 삭제했다. 이렇듯 한나라당 안에서는 깊은 반성의 한편에 ‘술 탓에 재수없이 걸렸다’는 동정론도 엿보인다. 자성하는 분위기에서도 한나라당이 탈당과 사과로 사태를 무마하려는 것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우리당 “징계논의 중인 최 의원이 민노당 사절단” 은폐의혹
곤혹스런 박 대표…여성단체 “제명 총대 매야”

최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놓고 박 대표가 더욱 몰리는 형국이다.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가 이번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이 성추행 사건 다음날인 25일 대책회의를 열고도 최 의원을 사무총장 자격으로 민주노동당 전당대회에 축하사절단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피해 기자가 최연희 사무총장의 공개사과와 사법처리를 처음부터 완강하게 주장했으나 한나라당이 이를 무마하려 하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한 징후들이 있다”며 “박근혜 대표의 해명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여성단체 대표들도 28일 국회에서 박 대표를 만나 최 의원의 제명 등 중징계를 거듭 촉구했다. 이들은 “박 대표가 여성 대표라 남다른 기대를 했는데, 이번 사건에 너무 놀라고 경악했다”며 “탈당으로 일단락되는 것이 아니라 의원직 사퇴 등 당 차원에서 더욱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 대표에게 최 의원 제명에 총대를 매달라는 압박이다.

박 대표는 “제명은 당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도 “윤리위 참여 의원들이 의지를 가지고 하고, 최 의원 본인도 의원직 사퇴 등 그 문제로 고민한다고 안다”고 밝혔다.

지방선거 앞둔 미묘한 시점, ‘도마뱀 꼬리자르기식’ 해법 통할까?
한나라당 더 큰 결단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최연희 성추행 사건을 놓고 한나라당과 박 대표가 곤혹스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코앞으로 다가온 5·31 지방선거와 무관하지 않다. 당 안팎에서는 선거가 코 앞인 상황에서 최 의원 탈당 등 ‘도마맴 꼬리자리기식’의 대응으로 부족하다는 여론이 흘러나온다. 전여옥 의원의 ‘디제이 치매발언’에 이어 성추행 사건은 지난 17대 총선의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의 재판이 될 수 있는 메가톤급 폭발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또 최근 성범죄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한나라당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다가는 ‘차떼기당에 이어 ‘성추행당’이라는 낙인과 함께 지방선거에 참패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이 최 의원의 탈당 이상의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한나라당은 당 소속 국회 윤리위원 5명의 공동 명의로 최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한 상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낸 윤리심사안은 징계가 결정되더라도 윤리사실 위반을 통보하는 수준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한나라당의 반성이 면피성이라는 공격도 여기서 나온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전국여성위원회 명의로 최 의원의 의원직 제명까지 가능한 ‘징계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규범을 어겼다”는 이유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징계요구건은 국회법 위반사항에 국한되며 국회 밖에서 품위 손상 등의 행위는 윤리심사안으로 제소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최 의원 징계를 놓고 국회의 고질적인 법리공방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한나라당은 더욱 코너로 몰리는 꼴을 자초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조직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단은 무엇이 있을까? 언론단체의 요구처럼 ‘최연희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안’이라도 채택해야 할까?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아 보인다. ‘모든 것을 버려야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 꼴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