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대전 유성구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무인기 개발 현황 전반을 점검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 26일 대낮에 5시간 동안 북한 무인기 5대가 수도권 하늘을 휘젓고 다닌 뒤 “서울 하늘이 뚫렸다”는 공포가 시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탱크를 파괴하며 큰 역할을 한 무인기는 미래전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수도권 시민들은 이런 무시무시한 첨단무기인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데, 군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최근 언론에 등장한 국내외 전문가들이 북한이 무인기에 폭탄과 생화학무기를 달아 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대북 강경발언을 연일 쏟아내면서 안보 불안이 ‘무인기 대란’으로 번질 태세다.
이런 불안감이 얼마나 근거가 있는 것일까. 앞선 ‘무인기 대란’ 사례에서 살펴보자. 2014년 3·4월 경기 파주·강원 삼척·백령도에서 추락한 북한 무인기가 발견됐을 때도 지금처럼 불안·공포가 온 나라에 들불처럼 번졌다.
2014년 당시 시작은 <조선일보> 4월3일치 1면 ‘北무인기, 청와대 바로 위 20여초 떠 있었다’ 기사였다. 조선일보는 북한 무인기가 찍은 청와대 상공 사진을 1면에 공개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방공망이 뚫렸다고 개탄했고, 조선일보는 북한이 무인기에 폭탄을 장착해 자폭 공격용으로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동아일보> 사설도 청와대 사진을 두고 “북한이 우리 대통령을 정조준해 무인기로 공격해도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다니 통탄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북한 무인기를 탐지조차 못한 군 당국은 큰 질타를 받았다. 궁지에 몰린 국방부는 무인기를 탐지할 첨단 저고도레이더 구매 등 방공망 강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요즘 벌어지는 것과 판박이 상황이었다.
2년 뒤인 2016년 국방과학연구소가 2014년 당시 파주·삼척·백령도에서 발견한 북한 무인기 3대를 복원해 성능시험을 한 결과, 탑재된 엔진과 정보수집용 카메라 작동 기능은 모두 1980년대에 제작된 수준으로 조잡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 당국이 복원된 북한 무인기를 날려보니 소형이라 400~900g 정도의 수류탄 1개를 달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미 2014년 당시 미국과 영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무인기 기술 수준이 대부분 서방에선 퇴역해 박물관에 기증된 구식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북한 무인기들은 대부분 서방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군인들이 간혹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 연습을 위한 표적기 등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국민들이 공포감을 느끼는 무인기는 덩치가 크고 무기를 많이 달 수 있는 최신 공격 무인기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당시 테러세력 지도자를 공격할 때 프레데터(RQ-1, MQ-1)와 리퍼(MQ-9) 같은 무인기를 사용했다. 미국은 프레데터, 리퍼에 미사일을 장착해 수백㎞ 밖의 목표물을 타격했다.
2017년 6월21일 경북 성주골프장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을 촬영한 북한 무인기가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공개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와 달리 지난 26일 서울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는 공격 기능이 없는 정찰용 소형 무인기다. 이번에 넘어온 무인기는 2017년 발견된 것과 유사한 형태였다고 한다. 2017년 6월 강원 인제에 추락한 북한 무인기는 폭 2.86m에 길이 1.85m였다. 지난 26일 군 당국이 사진을 찍고, 공군 조종사가 맨눈으로 확인한 결과 북한 무인기 크기는 날개 기준 2m급이었다. 이 규모 소형 무인기는 무장한다면 수류탄 1~2개를 장착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 수류탄 1발이 떨어진다고 대한민국이 무너지지 않는다.
북한이 무인기에 치명적인 살상력을 가진 생화학무기를 탑재해 공격할 가능성도 따져볼 대목이 있다. 북한은 이미 수십전부터 화학·생물무기를 대포나 미사일에 담아 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북한은 유사시 시간당 수만발의 포탄을 대량 발사할 능력이 있다. 북한이 분초를 다투는 유사시에 생화학 무기 살포 수단을 선택한다면, 몇분 내 대량 발사할 수 있는 대포와 서울까지 도달하는데 1시간이 걸린 정도로 느린 시속 100㎞ 무인기 중에 무엇을 선택할까.
보수 성향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대수장) 공동대표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예비역 중장)은 지난 26일 <펜앤드마이크>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무인기에 생화학 무기를 실어 테러를 감행하거나 국지도발에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것은 가능하지만 그 경우는 전쟁상태로 가는 것”이라며 “북한 무인기를 막기 위해 모든 군인들이 24시간 휴전선에서 보초를 선다는 것은 옛날 개념이며 사실상 북한 무인기는 우리 안보에 크게 위해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김 전 참모차장은 “북한 무인기 사건을 너무 심각한 문제로 부풀리는 것이 북한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역 근무 때 국산 항공기 개발과 무인기 업무를 오래 다뤘던 한 예비역 공군 장군도 “국민들의 심리적 충격이 크지만 북한 무인기의 군사적 위협 자체만 놓고 보면 심각하지 않다. 소형 정찰 무인기가 우리에게 가할 위해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무인기 대란의 실체는 서울 하늘이 뚫렸다는 심리적 공포라는 것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27일 허술한 무인기 대응을 사과하면서 “우리에게 실질적 위협이 되는 적 공격용 무인기는 우리 탐지·타격 자산으로 대응이 가능하나, 정찰용 소형 무인기는 3m급 이하의 작은 크기로 현재 우리 군의 탐지·타격 능력으로는 제한되는 부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비판 여론을 의식해, 북한 무인기 중에서 정찰용 소형 무인기는 실질적 위협이 아니란 이야기를 에둘러 한 것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북한 무인기는 무장을 탑재할 크기는 아니고 이보다 크고 무장이 가능한 무인기에 대한 방어망은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무인기에 무기를 탑재하려면) 무장 규모에 따라 다를 수는 있는데 최소 5m 이상, 또는 6m 이상은 돼야 한다”며 “6m이상 무인기에 대한 방어망은 충분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형 정찰 무인기는 너무 작아 레이더에 잡히지 않아 대응이 어려웠지만 6m이상 크기인 공격용 무인기는 레이더에 포착되니 탐지·격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28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합참이 제출한 북한 무인기 항적. 국회 국방위원회 제공
심지어 일부 전문가는 북한 소형 정찰용 무인기의 군사적 위협이 미미하니 서울 사진 좀 찍어가도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정부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지난 28일 기자들과 만나 “무인기 대응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북한) 정찰 드론이 (사진을 찍어가도) 구글어스(지도 해상도)보다도 못할 수도 있으니까 대응을 아예 포기하든지, 아니면 대단히 정교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서 시스템에 입각한 훈련을 하든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후자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정찰용 무인기라도 군사적 위협은 분명…대응은 어떻게?
북한의 정찰용 소형 무인기가 위협은 낮아도 분명한 군사적 위협이다. 특히 영공을 침범하는데 정부가 손놓고 있을 수는 없고, 당연히 대처해야 한다. 문제는 대응의 방향이다. 북한 무인기 위협은 무시해서도 과장해서도 안된다. 위협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평화를 얻기 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고, 군 관계자들과 참모진에게는 “북한의 무인기뿐 아니라 우리 영공을 침범하는 모든 비행 물체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 체계를 재검토해서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최근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소형 정찰무인기, 대형 공격 무인기 할 것 없이 휴전선 넘어오는 북한 무인기는 모두 탐지·격추할 능력을 완비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155마일 휴전선을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못하도록 철통경계하고 있다”고 홍보해왔듯이 ‘물 샐 틈없는 철통경계’로 북한 무인기 남하를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모든 북한 위협에 100% 대응하겠다는 것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통해 안보를 추구하겠다는 ‘절대안보’ 개념이다. 하지만 제한된 국방예산과 군 병력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이야기다. 전문가들은 무인기 대책으로 레이더 탐지능력을 확충하고 주요시설 위주로 방어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은 수년 전 북한 무인기를 탐지하려고 이스라엘제 저고도 탐지레이더 10대를 수입해 국가 주요시설과 서부전선의 주요 접경지역에 배치했다. 이 레이더는 1대가 10억원쯤인데, 휴전선 전역과 수도권 북부에 촘촘하게 배치하려면, 수백대가 필요하다. 이 레이더 100대만 사와도 1천억원인데, 북한 소형 정찰 무인기 1대 값은 1천만원 가량이다. 1천억원을 투자해 1천만원 짜리 북한 무인기를 감시할 경우 가성비가 너무 낮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국경선 전체, 국토 전체에 무인기 탐지용 레이더를 설치한 나라는 없다.
지난 29일 북한 소형무인기 대응 및 격멸훈련에 참가한 육군 제5군단 장병이 방공무기인 20㎜ 벌컨포를 운용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탐지 레이더를 갖추더라도 현재 무기체계로는 무인기 격추도 쉽지 않다. 군 당국이 2014년 4월 초순에 북한 소형 무인기와 유사한 형태의 소형 무인기 격추 시험을 했다. 당시 30㎜ 자주대공포 비호, 20㎜ 기관포 벌컨, 공용화기(M-60 기관총), 개인화기(K-2 소총)가 조준사격을 했다. 비호는 전자광학추적장치(EOTS)를 활용한 사격방법으로 사거리 600~700m 이내에서 300발을 사격하여 1발을 명중시켰고, 벌컨은 수동사격 방법으로 사거리 400~500m 이내에서 300발을 사격하여 2발을 명중시켰다. 기관총과 소총 육안에 의한 화망사격 방법(3차원 공중 공간에 집중사격)으로 사거리 200~500m 이내에서 각각 150발, 100발씩 사격을 실시하였으나 1발도 명중하지 않았다. 일부 주장처럼 휴전선 일대와 수도권 이북 최전방지역에 북한 무인기를 격추하려고 대공진지와 대공 무기들을 대거 배치해도 실제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다.
국방부는 북한의 무인기 침범에 대비하기 위한 무기 실전배치에 속도를 내고 윤 대통령이 지시한 드론부대 창설도 서두를 계획이다. 군은 북한 요인 정밀 타격 등이 가능한 신형 자폭 드론을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운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국방부가 지난 28일 공개한 향후 5년 동안의 군사력 건설과 운영 청사진인 ‘2023~2027 국방중기계획’에는 북한 무인기 위협에 대비하는 예산은 없었다. 국방부가 중기계획을 짤 때는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전이라, 무인기 위협의 우선순위를 낮게 봤기 때문이다. 중기계획에는 다양한 무인기 확보 예산이 있지만, 이는 한국군 정찰 무인기 확보 용도이지, 북한 무인기 침범을 막는 용도는 아니다.
앞으로 무인기 관련 예산이 늘어날 것이다. 이는 국방예산 자체가 늘지 않으면 다른 분야의 국방예산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국방부는 국내외 위협 우선순위 분석에 기반해 국방예산과 국방중기계획을 짠다. 국방부의 최우선 순위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대비다. 윤 대통령이 북한 무인기 침범 이후 “그동안 도대체 뭐한 거냐”며 이종섭 국방장관에게 ‘격노’한만큼 무인기 대응이 국방부의 발등의 불이 됐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소중한 것을 먼저하라”고 강조한다. 급한 일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먼저해야 하듯이, 안보도 위협 우선순위를 판단해서 중요한 것부터 대응해야 한다. 자칫 급한 일을 먼저 하느라 중요한 일이 뒤로 밀릴 수 있다.
북한 무인기 대비책이 급하지만 무엇보다도 차분한 대처가 우선이다. 자칫하면 위협에 기반한 무인기 대책이 아니라 공포에 기반한 무인기 대책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센 시대 독일의 군인이자 전쟁 이론가였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의 안개’(The Fog of War)란 비유적 표현을 사용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란 따지고 보면 대부분 불확실성의 영역에 속한다. 군사행동의 기초를 형성하는 것 중 4분의 3은 지극히 애매하고 불확실한 구름에 잠겨 있다”고 했다. 2016년 6월 ‘육군력 포럼’ 주제발표를 통해 이근욱 서강대 교수는 한국 육군력 증강은 북한의 대응과 반응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며, ‘전쟁의 안개’ 개념을 원용해 북한이 만들어내는 ‘안개’와 한국이 걷어내려는 ‘안개’의 상호작용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1천만원 짜리 무인기 1대를 서울 상공에 보내 한국 사회 전체를 공포에 빠뜨렸고, 한국 국방력 건설과 국방예산 투입의 우선순위를 비틀고 있다. 이미 북한은 싼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뒀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만든 ‘무인기 안개’ 속에서 헤매지 말고 안개를 걷어내야 한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