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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콩가루 해병대’ 되기 전에 윤 대통령이 나서라

등록 2023-12-14 09:11수정 2023-12-14 15:26

정치BAR_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
지난 9월23일 오후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고 채 상병 사건의 진상을 촉구하는 해병대 예비역 전국 연대 1차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23일 오후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고 채 상병 사건의 진상을 촉구하는 해병대 예비역 전국 연대 1차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는 ‘작지만 강한 군대’다. 해병대는 2개 여단, 2개 사단으로 꾸려져 있고, 전체 병력규모는 2만9천명이다. 병력만 따지면 육군 1개 군단 규모다.

‘작은’ 해병대가 강한 것은 강한 결속력과 특별한 임무 때문이다. 해병대는 상륙작전에 특화된 부대다. 상륙작전은 매우 위험하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도입부 때 2차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참혹한 장면처럼, 상륙 부대는 적의 총탄과 포탄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해병대의 특징인 세무 전투화, 상륙 돌격형 머리는 언제든지 전장에 투입될 준비가 돼 있다는 자세를 상징한다.

해병대 전투화를 흔히 ‘세무 워커’라고 하는데, 공식 이름은 육면(肉面) 전투화다. 보통 전투화는 쇠가죽의 껍질(피면)로 만드는데 세무 워커는 가죽의 겉과 속을 뒤집어 육면으로 만든다.

가죽전투화는 물을 먹으면 무거워져 발을 떼기 힘들고 상륙작전 때 갯벌에서는 빠져나오기 어렵다. 육면 전투화는 털 사이사이마다 기포와 공기가 들어갈 공간이 생겨 갯벌에 빠져도 발이 잘 빠져나올 수 있다.

해병대 상륙돌격형 머리는 앞 머리 3cm 이내 귀 상단까지 5cm 올려 자른다. 이 머리 모양은 적군에게 공포심을 주고 백병전 때 머리카락이 잡히지 않도록 하고, 전투 중 머리를 다쳤을 때 상처 부위를 바로 확인해 응급처치, 수술을 빨리 하기 위해서다.

해병대는 이등병부터 별 세 개인 해병대사령관까지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한몸(해병)이란 의식을 갖고 있다. 이런 강한 결속감은 상륙작전 같은 극한 상황에서 버티고 승리하는 전투력의 원천이다.

실제로 전우애는 전장의 병사들이 끝까지 싸울 수 있는 중요한 동기다. 미 육군참모대학 전략연구소가 2003년 발간한 <그들은 왜 싸우는가 : 이라크 전쟁에서 전투 동기>(Why They Fight: Combat Motivation In The Iraq War)는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미군과 이라크 병사들을 대상으로 전투에 나가 싸우는 이유를 물어봤다.

그 결과 미군은 ‘동료를 위해 싸운다’는 개념이 분명했다. 총탄과 포탄이 날아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병사가 전진할 수 있는 것은 앞뒤에 있는 동료 병사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영화 &lt;라이언 일병 구하기&gt;에서 연합군의 오마하 비치 상륙 작전 장면. 드림웍스 제공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연합군의 오마하 비치 상륙 작전 장면. 드림웍스 제공

한국과 미국 해군·해병대가 지난 3월29일 경북 포항 일대 바다·하늘에서 육지로 상륙돌격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 해군·해병대가 지난 3월29일 경북 포항 일대 바다·하늘에서 육지로 상륙돌격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같이 살고 같이 죽는다‘는 믿음은 해병대가 적의 포화를 뚫고 상륙작전을 펼치는 원동력이다. 그런데 지난 7월 해병대 1사단 채아무개 상병 순직 이후 벌어진 일들은 이 믿음을 흔들고 있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은 부하인 대대장에게 사고 책임을 미루고, 대대장과 병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고소, 고발했다.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 중 고 채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 생존한 동료 병사는 지난 10월 전역 직후 당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소했다.

지난 8월 국방부 조사본부가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을 경찰에 넘기면서 임성근 사단장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하지 않고, 대대장 2명만 혐의가 있다고 밝히자, 채 상병이 소속된 대대의 대대장(중령)의 법률대리인 김경호 변호사가 임 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임성근 전 사단장은 지난달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 항명 사건을 맡은 군사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수중 수색을 하지 말라는 자신의 지시를 현장 지휘관들이 잘못 알아들어 생긴 일”이라며 사고 책임을 부하인 대대장에게 미뤘다. “나만 살겠다”는 그의 욕심이 ‘같이 살고 같이 죽는다’는 해병대의 믿음을 허물고 있다.

해병대 사건은 경북경찰청이 수사하는 채 상병 순직 사건, 군 검찰이 수사하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항명 사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하는 수사 외압 사건으로 3가지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사건이 복잡해진 첫 단추는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결과에 대해 ‘VIP(대통령 지칭)가 격노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부인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국군통수권자인 윤 대통령이 나서 해당 발언의 진위 논란을 빨리 매듭지고, 흔들리는 해병대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현재 상황을 방치하면 ‘이등병부터 해병대 사령관까지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한몸’이란 해병대의 오랜 믿음이 허물어지고 ‘콩 가루 군대’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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