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까스로 부결된 뒤 당내에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표결 하루 전날까지 “검찰의 정치 영장을 압도적으로 부결시키겠다”(조정식 사무총장)고 자신했던 당 지도부 안에서는 이탈표를 던진 의원들에 대한 강한 불쾌감과 함께 “제대로 망신당했다”는 자책도 나온다. 이 대표 취임 뒤 한동안 잠잠했던 ‘이재명 비토층’이 빠르게 결집하는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했다는 게 여실히 증명된 셈이기 때문이다.
‘분위기 파악 실패’를 자인하듯 체포동의안 부결 뒤 이 대표가 내놓은 메시지는 ‘당내 소통 강화’였다. 체포동의안 부결 이튿날인 28일 오후 당 지도부는 3시간 가까이 고위전략회의를 한 뒤 의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앞으로도 당대표를 포함해 정무직 당직자들이 당내 의원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경청하면서 당을 걱정하는 마음에 대해 활짝 귀를 열고 더 많은 논의를 나눌 생각”이라고 밝혔다.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비명계 의원들과 ‘일대일 만남’에 나섰던 이 대표뿐 아니라 주요 당직자들 역시 계파를 가리지 않고 의원들과의 접촉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친명으로 채워진’ 원보이스 지도부…“이재명 대표의 방어본능”
당내에서는 ‘소통 실패’가 이미 전당대회가 친이재명계의 압승으로 끝난 지난해 8월부터 ‘예정’돼 있었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당시 전대 결과 당선된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고민정 의원을 제외한 4명(정청래·서영교·박찬대·장경태 의원)이 친명계 혹은 신명계(신이재명계) 의원들로 채워졌다. 이 대표가 지명한 나머지 2명의 최고위원(서은숙·임선숙) 역시 ‘친명계’로 분류된다.
이어진 주요 당직자 인선 역시 ‘통합’을 강조했던 이 대표의 공언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많았다. 대선 시절부터 이 대표를 지원해온 이해찬계 의원들(조정식 사무총장, 김성환 정책위의장, 이해식 조직사무부총장)이 주요보직에 중용됐고, 핵심 측근 그룹인 ‘7인회’ 소속 의원 중 3명도 주요 당직(김병욱 정책위 수석부의장, 문진석 전략기획위원장, 김남국 미래사무부총장)에 발탁됐다. 당내에서는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부터 당 안팎의 공격에 시달려온 이재명 대표의 ‘방어본능’이 발휘된 인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재명 앞에서 ‘이재명 수호’”…경쟁의 장이 된 최고위
친명 일색의 ‘원보이스 지도부’에 대한 우려는 빠르게 현실화했다. 최고위원회의가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수사에 속도를 내는 ‘사법리스크’ 국면과 맞물려 ‘이재명 수호’ 분위기를 주도하는 주요 통로가 됐기 때문이다. 한 당직자는 “공개 최고위원회의가 이 대표 앞에서 ‘이재명 수호를 누가 더 세게 외치나’를 겨루는 민망한 경쟁으로 흐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이 지난해 11월 벌인 ‘#난 이재명과 정치공동체다’ 캠페인이 그 ‘민망한 장면’의 한 예로 꼽힌다. 정 최고위원은 당시 자신의 모두발언 시간을 할애해 이를 소개하며 “민주당 정치인과 당원은 당연히 이재명 대표와 정치공동체다. 이재명 당대표를 지키는 것이 당을 지키는 것이고, 당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다. 이 릴레이 캠페인에 많은 동참을 바란다”고 말했다. 이 캠페인에 참여한 현역 의원은 민주당 소속 의원 169명 중 2명(정청래·이해식)에 그쳤다.
지난해 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당 지도부의 승인 아래 공론화된 과정도 ‘원보이스’ 지도부의 위험성이 노출된 사례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당 관계자는 “당시 비공개회의에서 박홍근 원내대표 정도만 공개회의에서 문제 삼는 것을 신중하자고 했는데, 다른 당 지도부는 이를 일축하며 공론화를 강행했다”며 “그런데 이후 막상 역풍이 부는 상황이 되자 저마다 책임을 미루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런 탓에 ‘친명 일색 지도부’의 색깔을 중화하기 위한 ‘인적 쇄신’ 목소리는 비명계 뿐만 아니라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의원·당직자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원보이스 지도부’가 오히려 이 대표를 당에서 고립시키는 철옹성 구실을 해온 게 이번 ‘체포동의안 사태’로 드러난 만큼, 인적 쇄신으로 소통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당직자는 “이번 표결 사태는 이 대표를 보좌해온 측근 그룹이 얼마나 당내 사정에 괴리된 채 지내왔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최고위원 구성을 바꿀 수는 없으니 주요 당직자들이라도 쇄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적 쇄신을 통해 ‘강성 지지층만 대변한다’는 당내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계파색이 옅은 한 재선 의원은 “이번 사태를 ‘공천 문제’만으로 접근하는 건 1차원적”이라며 “접전 지역에 있는 의원들이 ‘이재명 대표 얼굴로 총선을 치르면 당장 낙마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적지 않다”고 짚었다. 이 의원은 “‘친명’이라는 딱지 떼놓고 무능했던 주요 당직자를 교체해 당내 불안감을 불식시켜야 한다”며 “단순히 탕평에 그치지 않고 능력 있는 전략가로 당직 인선을 채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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