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여당 의원들의 불참 속에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불참했다. 연합뉴스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의 파행이 장기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22일 국회가 원 구성에 합의한 뒤 한 달이 훌쩍 지나갔지만 과방위가 온전히 열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지난 7월27일·29일, 8월18일·24일, 9월7일에 열린 과방위 전체회의는 모두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반쪽 회의’였습니다. 여야는 왜 과방위에서 ‘치킨게임’을 이어가고 있을까요?
국민의힘 “정청래 물러날 때까지 복귀 안 해”…정청래 “불량학생”
파행의 중심에는 과방위원장을 맡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있습니다. 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7일 정청래 위원장의 사퇴 결의안을 국회 운영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정 위원장이 과방위를 독단적으로 운영하고 사유화하는 등 위원장으로서의 직권을 남용”했고, “지금까지 무려 네 차례나 여당 간사를 선임하지 않은 채 전체회의를 독단적으로 진행했다”는 이유입니다. 국민의힘은 정 의원이 과방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전체회의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완고한 태도입니다.
반면 정 의원은 파행의 책임이 국민의힘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난 7∼8월 전체회의를 열어 후반기 국회 첫 상견례와 간사 선임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해 간사조차 선임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정 의원은 ‘열차 정시출발론’을 내세웁니다. “과방위 열차는 예고한 대로 항상 정시에 출발합니다. 무단결석하는 불량학생들의 무리한 요구는 들어줄 수 없습니다.”(정청래 의원 페이스북)
‘상임위원장과 주요 당직’ 겸임 않는 관례 깬 정청래
정 의원이 지난 8·28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최고위원에 당선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보통 당에서 주요 당직을 맡은 의원은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당헌·당규에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상임위 운영을 중립적으로 하려고 확립된 ‘관례’ 때문입니다. 특정 의원이 주요 당직과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겸직해 다른 의원들의 기회를 빼앗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최근 2년 간의 사례만 봐도 박광온·한정애·윤관석 의원 등이 사무총장이나 정책위의장을 맡은 뒤 상임위원장 자리를 내려놨습니다.
정 의원에게는 ‘관례’가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전당대회 전부터 “최종적으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다면 그때는 국회직과 당 지도부를 겸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냐고 말씀드린 바 있다”고 밝혔고, 실제로 전당대회 뒤 원내지도부가 설득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정 의원은 “조중동과 국힘이 그만두라고 하니 더 그만둘 수 없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정 의원은 13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관례라는 것은 바뀌고 깨지는 것”이라면서 ‘과방 위원장 자리를 내놓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말인가’라는 사회자의 물음에 “네”라고 답했습니다.
파행의 궁극적 이유는 ‘방송 공정성’ 신경전이지만…
정청래 의원의 최고위원·과방위원장 겸직 여부가 파행의 궁극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과방위에는 정권교체기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방송의 공정성’ 이슈와 관련한 현안이 산적해 있습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이나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임기 보장 문제 등 등 굵직한 논쟁거리만 여럿입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을 직접적으로 다룰 ‘정보통신방송 법안심사소위(2소위)’의 소위원장 자리를 두고 여야간 신경전이 치열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수적으로는 민주당이 유리한 상황입니다. 21대 후반기 과방위원 20명 중 과반이 넘는 11명이 민주당 소속이고, 국민의힘 소속은 8명입니다. 무소속인 박완주 의원도 본래 민주당 소속이었습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여당은 정청래 의원이 최고위원에 당선되기 전부터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최소한의 일정 협의도 거부해왔다”며 “방송 장악이 그만큼 중요하니 정 의원을 빌미로 선제적으로 기싸움을 거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정청래 의원의 겸직 고집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주요당직과 상임위원장의 겸직을 피해온 국회 관례를 “당원과 지지자들이 페이스북에 단 3700개의 댓글”을 근거로 무시하고 있는 정 의원의 행보를 두고는 민주당 안에서도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한 민주당 중진의원은 “관례라고 무조건 존중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여야 간에 최소한의 신의를 위해서라도 지켜야 한다”며 “(정 의원이) 결국은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음 달 4일부터 국회는 국정감사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과방위는 지금의 상황이 이어진다면 증인 채택 등 최소한의 절차라도 진행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과방위에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 말고도 ‘망 사용료’ 관련 전기통신사업법 처리 등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시급한 현안들이 많습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