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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명랑국토부] 팅커벨, 이 땅에 생명가루를 뿌려줘/우석훈

등록 2006-11-02 19:33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농지법 고쳐 투기판 만들고 광우병 소에 빗장 열고
노무현은 ‘농업을 죽인 대통령’으로 기록될 거다
팅커벨이 관중의 박수소리를 살아났듯
우리의 관심과 사랑만이 농업을 살게 할 수 있다
여기는 명랑국토부 날아라 팅거벨, ‘개발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나라의 농업은 죽어가는 중이다. 마지막 산소호흡기를 떼어놓기 직전의 환자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4천년, 우리의 선조들이 이 땅에 처음 농사를 시작한 이후로 땅에 살아가던 사람들을 먹여 살리던 그 마지막 숨길이 넘어가기 직전이다.

“여러분, 박수를 쳐주세요. 박수만이 우리의 팅거벨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제는 상업주의의 첨병에서 디즈니 영화가 시작될 때마다 바쁘게 날아다니며 화면가득 요정가루를 날리는 팅거벨이 죽어갈 때 관중들을 향하여 피터팬이 외친 소리다. 그리고 팅거벨은 사랑의 힘으로 살아나게 된다. 이 말은 지금 우리나라의 농업에 딱 맞는다. 그리고 지난 4천년간 배달족이라고 스스로 불리기 원했던 어느 한 족속이 점유했던 지역의 소위 국토생태의 위기 앞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지금 우리의 농업은 죽어가는 중이고,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아파, 나 아파”라고 소리칠 힘도 없이 그야말로 속살 그대로 죽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야말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만이 농업이 살아나게 할 수 있다. 농업이 어려운 것은 다른 선진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농업은 특히 어렵고, 그 몰락의 속도가 역사상 어느 제국도 경험해보지 못한 극적인 것이다.

밭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밭의 토양유실은 요즘 한 해에 1헥타르, 즉 3000평에서 40톤 정도를 기록한다. 비가 올 때 40톤의 토양이 밭에서 쓸려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토양유실률이 10톤 정도 된다. 10톤이면 1밀리미터 정도의 표피층이 쓸리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밭은 매년 4밀리미터 정도의 알짜배기 같은 표피층이 씻겨내려간다. 이 비율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농업이 화학농이며 상업농으로 찌들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온 국민이 먹는 김치를 만드는 고랭지 배추를 시장의 논리대로 상업적으로 집약화시키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토양유실을 막는 기술적 방법은 존재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대신에 각 지자체당 수백억씩 정부가 다른 곳의 멀쩡한 흙을 퍼다가 밭에다 부어주는 방식으로 임시방편을 하는 중이다.

물론 그래도 그나마 논 혹은 밭으로라도 사용되지 않는, 땅투기꾼이 가장 선호하는 ‘잡종지’의 토양유실은 천문학적이고, 온 국토를 누비는 도로는 토양유실의 첨병이다. “그까짓 흙 정도야!”라고 생각하지만, 토양유실은 농업에만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결국은 더 큰 홍수를 발생시켜서 일종의 ‘포지티브 피드백’을 만들어 언젠가 국토가 폭발적인 자연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서울은 사실 그 자체로 몬스터다. 대형건물이 올라갈 때마다 어디에선가 그만큼의 모래가 시멘트와 함께 배합되는데, 이제 이 반도에는 더 이상 모래를 퍼올 데가 없어서 중국에서 모래를 퍼오고, 그것도 모자라 북한 모래도 퍼오는 중이다. 서울이 생태적 수용능력을 넘어선 과잉으로 몸살을 앓는 만큼 중국땅과 북한땅도 몸살을 앓는 중이다. 그리고 서울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값싸고 실한 배추를 위해서 더 많은 화학비료를 뿌리고, 또 잠깐 비어 있는 밭에는 제초제가 들어간다. 비가 오면 그대로 끝장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미안하지만 역사가 지나고 나면 이 특별한 대통령은 민주주의나 시장주의 혹은 한미 FTA로 기록될 대통령이 아니라, 반도의 농업을 죽인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농림부 원래 예산이 10년간 100조원인데, 농업회생으로 119조원을 마련했다고 사기치는 한편 도시의 투기자본들에게 농지법개정으로 투기의 길을 열어준 것도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원래 농업에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다. 박정희의 통일벼 이후로 강화했던 논을 점차적으로 줄이고, 콩과 밀가루 그리고 배추와 같은 사실상 국민들의 주곡과 부식에 해당하는 농산물들의 생산을 국내 생산물로 전환하고, 다시 이를 친환경으로 바꾸려는 흐름이 있었다. 이건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생겨날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굳이 정부에서 개입하지 않더라도, 농민들이 알아서 2단계의 전환을 하게 될 일이다. 유럽 선진국들의 농업역사가 그렇다.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이 농정을 썩 잘 한 것은 아니지만, 박정희 때부터 누적된 농가부채 문제 같은 것들을 해결하려는 정도만 하고, 굳이 농업을 죽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노무현이라는 특별한 대통령이 등장해서 “자신도 농민의 자식”이라고 하면서 “부모님들 농사 그만 지세요”라는 말을 지난 3년 반 동안 했고, 그 땅에 골프장 만들고 아파트 짓는 것이 ‘국토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서 좋을 것이라고 늘 말했다. 그리고 ‘실버타운’ 만들어서 도로도 만들고, 전원주택도 만들면 “그 아니 좋겠느냐”라고 말했다.

당신 같으면 누적된 농가부채가 이미 수천만원인데, 이 상황에서 농사짓겠는가? 서울에서 업자들 내려오면 ‘밭떼기’ 하던 심정으로 지역개발계획만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동안에 짧게는 국민경제의 건전한 투자가 ‘완전 투기경제’로 전환되었고, 길게는 국토생태라는 ‘배달민족’이 살던 땅의 마지막 안전판까지 서 있을 곳이 없게 되었다. 노무현식 ‘개발민주주의’ 하다가 4천년 땅의 역사가 종료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대부분은 사실상 밭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 밭을 없애고 “사다 먹으면” 소비자의 선택권도 높아지고 가격도 싸진다고 하면서,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부터 수입허가를 내주었다. 물론 싸지는 건 맞지만 통조림 아니면 냉동식품 외에 반도의 소비자들에게 남는 것은 없고, 생선에나 있던 ‘생물’ 타이틀이 밭작물에도 붙어서 중산층 정도의 소득으로는 엄두도 못내는 새로운 ‘소비자 후생’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야말로,

“박수를 쳐주세요, 여러분!”

시대의 팅거벨은 바로 반도의 밭 한 구석에서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날아라, 팅거벨, 죽음의 회색먼지에 휩싸인 국토에 생명의 요정가루를 날려주세요.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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