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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명랑국토부] 깡패들의 공화국이여/우석훈

등록 2006-08-03 16:41수정 2006-08-04 14:26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동네 골골마다 파고든 성인오락실 천국 2만곳서 하루 100만원씩만 수익 낸다해도
한달 2천억이 깡패계좌로 들어가는데 골목길경제가 나라를 먹여살리고 있단 말인가
여기는 명랑국토부

며칠 사이에 대구에서 남원까지 짧은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남원시는 ‘러브테마 파크’니 변강쇠 도로니 보기에도 민망한 관광사업을 지난 2년 동안 열심히 추진한데다가 국악원 바로 앞자락까지도 유흥 술집이 잔뜩 자리를 잡고 있어서 점잖지 못한 도시라는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말 새롭게 남원을 생각하게 되었다. 전국에서 서울 다음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이 약하다고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평가하는 대구는 역시 유명한 음식점을 포함해서 도시의 주요 거리마다 성인오락실로 변해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라는 마음으로 둘러본 몇 개의 도시들은 서로 자신이 깡패들의 도시라는 자랑이라도 하듯 주요 시내도로는 물론이고 유서깊은 거리까지 전부 성인오락실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긴 전국 풀뿌리 시민단체의 총본산에 해당하는 어떤 단체가 있는 건물에도 성인오락실이 2개나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 이 성인오락실의 열풍을 도대체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그런데 지리산에 들어가 있는 남원시의 몇 개 마을들에는 초등학교 앞 그리고 관공서 앞에 ‘가정파괴의 주범’이라는 붉은 글씨로 성인오락실에 들어서지 말 것을 동네 주민들에게 그야말로 ‘권면’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권면의 사전적 의미인 “알아듣도록 권하고 격려하여 힘쓰게 함”이라는 일을 남원시에서는 하고 있는 셈이다. 원래 나는 정부에서 펼쳐 놓은 플래카드만 보면 유신시절 생각이 나서 마음이 불편해지는데, 정말이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빨간 글씨로 적어놓은 플래카드를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 문정동 로데오거리에서 멀지 않다. 가끔 들르던 동네 찻집이 성인오락실로 변한 것은 1년 전의 일이고, 그나마 마지막 남은 만화가게 역시 6개월 전에 성인오락실로 변했다. 그리고 나서 로데오 거리로 통하는 골목길에 검은색 대형승용차가 뻔질나게 다니기 시작하면서 주택가 골목길이 깡패들의 거리로 변해버렸다. 전국이 동시다발적으로 깡패천국으로 변하게 된 이 흐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리산 자락에서 대구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운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이 흐름에서 서울의 동네골목이라고 별 수 없다. 이것이 자본의 힘인가 아니면 천민자본주의의 힘인가? 아니면 동네에 이런 것들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막아줄 풀뿌리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댓가를 우리는 이렇게 호되게 치루는 걸까?

갑자기 참여정부의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오랫동안 있던 이창동 감독 생각이 났고, 도대체 장관 자리에 앉아서 성인오락실도 ‘건전한 오락’일 뿐이라며 ‘문화상품권’이라는 해괴한 유사화폐를 깡패들이 발행하고 자기들끼리 지하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동안에 무슨 일을 하고 있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한국은행도 그렇지, 도대체 규모도 제대로 추산하지 못하면서 동네에서 깡패들이 환전하고 심지어는 화폐를 대체하는 이런 유사화폐가 ‘지역화폐’ 노릇을 하고 있는 걸 눈뜨고 보고 있었단 말인가? 여기에 유사화폐에 위폐까지 등장했으니 한국은행도 부작위의 작위라는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짧지만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지금 한국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위기도 아니고, 개발정부의 위기도 아니며, 깡패들의 본거지가 주택가까지 밀려들어와서 주차장까지 온통 점령하고, 또 전봇대마다 붙어 있는 “떼인 돈 받아줍니다” 딱지에서 보듯 급전과 급전받아주는 해결사들이 판치고 있는 데서 오는 문제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사람들은 유사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흔적이 있으면 은행에서 정식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니, 돈이 없는 사람한테서 떼인 돈을 어떻게 받아준다는 거야?

유럽의 정책사로 보자면 원래 좌파들은 범죄나 깡패에 대한 정책들이 대체적으로 온건하고, 우파 정부가 들어서면 범죄정책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아니, 그렇다면 현 정부가 좌파정부가 맞단 말인가? 영국의 블레어 총리도 최근 범죄단속을 강화시킨다는 정책을 발표하고, 유력한 차기 사회당 대선후보인 세골렌 루아얄이 범죄 단속프로그램을 대선에 제시하겠다는 말로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것을 보면 유럽도 깡패들 등살에 몸서리치고 있는 듯하지만, 내가 경험해본 세계 어느 나라 도시에도 우리나라처럼 성인오락실이 골목길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걸 본 적이 없다. 성인만화가게가 밤새 영업하면서 범죄의 온상이 된다고 했던 전두환 시절에도 이런 이상한 일들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처음으로, 차라리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할아버지 국회의원들이 가끔 술자리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기는 하더라도 설마 성인오락실에 출입하거나 급전을 빌리는 일은 없을 것 아닌가? 성업 중인 2만개 이상의 성인오락실에서 하루 100만원씩만 번다고 해도 한 달에 2천억원이 서민들 주머니에서 깡패계좌로 전환되는 셈인데, 이래서야 가정경제는 물론이고 지역경제도 남아날 리 없다. 1년이면 조 단위의 돈이 성인오락실을 통해서 유통되고, 여기에 해결사들이 돈받고 어려운 일 해결해준다고 하는 특수 서비스 업종까지 추가하면, 한국의 골목길 경제가 그야말로 나라 먹여 살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오, 이 깡패들의 공화국이여, ‘사행성 성인오락실 금지’라는 작은 법안 하나로 쉽게 해결할 수 있고, ‘고리대자금 금지에 관한 법률’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안 하고 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가정에서 부부싸움과 함께 한 개씩의 가정이 행복하지 않은 일들로 부서지고 있을까? 민주주의는 좀 살살해도 좋고, 사회정의는 천천히 실현해도 좋고, 인권국가는 차근차근 만들어도 좋다. 그렇지만 이 깡패공화국은 시급히 해체해야 한다. 좌파니 우파니 따질 일이 아니고, 87년 체제니 개헌 따위가 급한 게 아니라 지금 동네 깊숙이 들어와 있는 성인오락실이 급하다. 서민 긴급구제에 여야가 따로 있겠는가? 그게 힘들면 남원시처럼 플래카드라도 붙여 권면이라도 하시기 바란다. 온 국토가 성인오락실 천국이 되고, 그만큼 골목은 지옥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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