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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명랑국토부] ‘건설교통부’를 새로 건설하라/우석훈

등록 2006-06-22 19:46수정 2006-06-23 16:21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건설’이라는 이름 때문에 뭔가 부수고 지어야 하는 강박에 시달린다면
‘명랑국토부’라고 바꾸어주고 싶다 그렇다면 국민을 즐겁게 할 일 하지 않겠는가
여기는 명랑국토부

우리나라 행정부 부처 구성은 조금 딱딱한 편인데, 대통령 중심제여서 조각에서부터 행정시스템 구성에 관한 전반을 대통령이 총괄해서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다보니 부처의 경계가 조금은 빡빡하고 부처간 이동이 이뤄지더라도 각 부처특유의 특성들이 강하게 드러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무원들은 프랑스나 스위스에 비해서는 조금 딱딱한 편이고, 미국에 비하면 봉건적이고, 일본에 비하면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일 것 같다. 일본 공무원의 딱딱함은 국제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7년간 정부대표단으로 협상을 하러 유엔을 비롯한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갖게 된 약간의 주관적 느낌으로는 제일 부드럽고 국민의 공복일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공무원은 말레이시아 공무원이었고, 이게 공무원인지 아니면 마피아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국가 이익과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공무원들은 내전 중인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들이었다. 슬픈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 외교부에 대해서 내가 받은 느낌은 하위직급일수록 국민을 위한 협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지만 정작 전문성과 권한이 부족해서 그렇게 움직이고 어려웠고, 단장이나 책임을 가지고 있는 고위직 외교관일수록 미국 정부의 공무원 같다는 느낌을 짙게 받았다. 어쩔 수 없이 미국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므로 대개의 경우에는 이해할 수 있기는 한데, 몇몇 고위직 공무원의 경우에는 미국 정부에서 월급 받으라는 얘기가 목구멍까지 넘어온 적이 있기도 하다. 물론 나는 그렇게 말할 정도로 용기가 있거나 애국심이 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프랑스의 경우는 국토를 관장하는 부서가 ‘국토정비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녹색당이 연정에 참가하는 경우에는 환경부와 통합되어서 ‘환경 및 국토정비부’로 운영이 되다가, 녹색당이 실각하면 다시 국토정비부로 떨어져나간다. 물론 이건 국토부와 환경부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고, 경제와 통상 그리고 국민복지 등 정치와 민감한 현안이 있는 부처에서는 어느 당 출신이 장관이 되는가에 따라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수상이 내각을 총괄하는 의원내각제의 요소가 강한 나라라서 정치인이 당연히 장관을 차지하고 당의 운명을 걸고 국정을 운영하는 체계라서 그렇다.

우리나라는 건설교통부가 재정경제부와 어깨를 겨룰 정도로 힘 있는 부처고, 환경부는 청에서 승격된 지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예산편성이나 부처간 업무조정에서는 목소리가 별로 없는 작은 부처다. 동료로서 같이 일했던 두 부처 사이의 분위기를 약간 주관적으로 비교하면, 건설교통부 공무원들은 약간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일에 대해서 소신이 또렷한 반면에, 환경부 공무원들은 어딘가 좀 주눅이 들어 있고, 좀 애처로와 보이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공무원으로서의 건설교통부 직원의 활동에 대해서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부처로서의 건설교통부가 하는 일 중에서 국민들을 명랑하게 해주고 웃게 만드는 일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이름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게 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정부 시스템내에서도 이런 묘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국토정비’ 정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적절할 것 같은데, ‘건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보니 뭔가 부수고, 짓고, 또 부수고, 또 만들고 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직원들도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홍수를 예방하는 일에서부터 지하수를 보존하고, 또 집짓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당연하지만, 이걸 ‘국토정비’라는 눈으로 보지 않고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이 일을 하다보니 결국에는 건설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집단적인 무의식 같은 걸 만드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국토정비라면 산이나 강을 잘 정비하고 그대로 두는 일이 되는데, 건설이라는 이름을 주면 왠지 산이 있으면 없애거나 뚫어야 할 것 같고, 강이 있으면 매워야 할 것 같고, 평지를 보면 운하를 파야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쩌면 선하고 착할지도 모르는 이 건설교통부 직원이 ‘건설’이라는 이름 때문에 박정희 시절 건설의 기수들처럼 계속해서 짓기 위해서 뭔가를 부수고 있어야 한다면, 5년 후에도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산이나 강이 있을까? 강만 보면 댐을 짓고 싶고, 바다를 보면 메우고 싶어지는 이 ‘건설교통부’의 주술어린 이름을 한 번쯤은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기본법령으로 보면 건설교통부는 국토의 이용과 활용에 관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에 해당하는데, 건설이라는 이름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암묵적으로 건설산업의 대변자 혹은 건설마피아의 대부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또 안스럽기도 하다. 극단적으로는 일각에서는 건설교통부를 폐지해야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경제발전이 비로소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고려 말에 잠깐 있었다가 토호들이 폐지시켜버린 전민변정도감을 다시 부활시켜 건설교통부의 현판을 전민변정부로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름 때문에 건설교통부가 지난 5년 동안 온 국토를 헤집고 다니면서 그렇게 ‘악독한 짓’들을 하고 다니던 거였어? 필요하지도 않은 댐을 만들어야 자신의 자리가 생긴다고 했던 데이터 조작에서부터 주민여론조작들, 그리고 일단 짓고 보자고 생태계 가장 깊숙한 곳까지 ‘로드 킬(road-kill)’로 사람은 물론 동물들까지 찻길 건너가는 훈련을 하게 만들었던 건교부의 숱한 ‘도로 없이는 선진국 없다’는 말장난과 정보조작들을 어찌 일일이 말로 할 수 있으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이름이 어떤 민족인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사람들을 전세계인이 선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건설교통부가 ‘명랑국토부’로 이름을 바꾸면 천년 뒤에라도 국민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역사상 남을 특별한 조직이 대한민국에 있었다고 후세가 기억할 것인가! 나에게 권한이 있다면, 나는 건설교통부로 ‘명랑국토부’라고 선하고 즐거운 이름으로 바꾸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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