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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명랑국토부] 자동차, 섹슈얼판타지 그리고 공공의 적/우석훈

등록 2006-09-14 17:14수정 2006-09-15 18:28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다른 여자를 태우고 펜션 갈 꿈을 꾸는 남편들
나라면 1500cc 이상 차를 남편에게 사주지 않겠다
큰 자동차는 그저 ‘바람피우는 장치’일 뿐이니까
게다가 ‘스틱’ 아닌 ‘오토’로 국토까지 망칠테니까
여기는 명랑국토부

성인 남자들의 3대 장난감이라고 하면 자동차, 오디오, 그리고 카메라를 이야기한다. 대충 수십만달러 정도의 가격인데, 남자들은 어른이 되어도 장난감 만지는 걸 너무 좋아해서 자신이 10년 동안 모을 수 있는 용돈을 장난감에 털어넣는 것을 전혀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프리앰프와 파워앰프 그리고 스피커까지 제대로 장만하면 벤츠 한 대의 가격을 간단히 넘어가는데, 2미터짜리 전선 하나가 백만원을 간단히 넘어가는 하이엔드 오디오의 가격은 장난감이라고 하기에는 좀 심각하다. 200만원을 호가하는 스피커선 하나를 80만원에 사들고 흐뭇해서 전자상가를 내려오다가 엄청나게 큰 냉장고 가격이 80만원이라는 것을 보고 자신의 소비행위가 제대로 된 것인지 고민했다는 얘기가 가슴에 와 닿을 정도로 나도 음악을 듣기 위한 장치에 많은 돈을 지불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베엠베(BMW)를 사고도 남았을 돈을 기꺼이 털어넣은 나의 ‘음악 듣기’ 취미가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 가끔 반성한다. 장난감이라고 쉽게 얘기하기에는, 좀 과도한 지출이었다. 점심은 라면으로 때우던 월소득 30만원이던 강사시절, 새로 수입된 스피커를 ‘청음’하러 용산으로 달려가던 10년 전 내 모습은 이상한 것이었다. 가끔 자동차, 오디오, 카메라가 ‘섹슈얼 판타지’와 관련되어 있다는 심리학 논문을 읽을 때마다 속내를 들킨 것 같기도 하지만, 하여간 이런 장난감들은 섹스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이 있어 보인다.

파리에서 택시를 타면 르노 아니면 뿌조를 타게 된다. 아랍의 이민자임이 분명할 듯한 이 남자들에게도 자동차는 판타지일까? 택시 운전사와 얘기하다가 벤츠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야말로 ‘파리의 택시운전수’들은 독일에 가면 택시도 벤츠인데, 프랑스 좌파정부 시절에 외국 자동차에 대한 세금을 너무 높여서 뿌조 택시를 운전해야 하는 자신들이 불행해졌다는 얘기를 가끔 한다. 베를린이나 본에서 택시를 타면, 줄줄이 길거리에 서 있는 자동차가 거의 메르세데스-벤츠다. 독일의 운전사들에게 파리의 택시 운전사에게 들은 얘기를 해주면, 속 모르는 얘기라며 독일 좌파정부 때문에 소득세가 너무 높아져서 자신의 삶도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

그렇지만 내 30대의 경험으론, 벤츠를 타고 싶어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부장들이나 이사들보다는 파리나 독일의 운전사들의 삶이 여전히 훨씬 행복한 것 같다. 꼭 뿌조나 벤츠를 타기 때문이 아니라 끝없이 승진하고, 연봉으로 자신의 삶을 재단하는 우리나라 남자들은 자신들의 정신세계에서도 불행해 보인다. 경제학자인 톨스타인 베블렌은 이를 ‘과시적 욕구’라고 말했는데, 보신탕과 해구신으로 대표되는 한국 남성들의 남근주의는 “미친 놈”이란 소리를 들어도 쌀 정도로 과도하다. 하여간 커야 하고, 무조건 비싸야 한다. ‘똑딱이’라고 부르는 자동카메라를 쓸 수는 없는 일이고, 출력이 과대포장된 일제 앰프도 쓸 수는 없는 일이고, 또 문짝이 4개 달리지 않은 자동차도 탈 수는 없는 일이다.

교묘하게 취미 혹은 장난감으로 위장되어 있지만, 한국 남자들에게 전세계 공통의 이 취미조차도 많은 경우 섹슈얼 판타지의 위장에 불과하다. 내가 부인이라면 자신의 여비서나 동료를 태우고 잘난척할 것이 분명한 비싼 승용차를 남편에게 사도록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부인들은 너무 관대하게 남편의 ‘바람피우기 장치’를 허용한다. 많은 남편들은 언젠가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펜션에 ‘이상’적인 ‘이성’을 자동차에 태우고 가는 날을 꿈꾸며 운전을 한다. 나라면 절대로 1500cc 이상의 차를 남편에게 사주지 않겠다. 남편은 ‘안전’이라고 위장해도 결국 큰 자동차는 ‘바람피우는 장치’일 뿐이다.

그래도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파리나 베를린에서 우리나라 남성들의 90%가 타는 ‘오토매틱’ 기어는 ‘핸디캡드’ 즉 ‘장애인용’이라고 불린다. 자동 카메라를 ‘이디엇 카메라’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바보들도 셔터만 누르면 찍힌다는 바보 카메라처럼,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서 개발된 ‘오토매틱’을 타고 다닌다는 것은 신체건강한 성인남자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독일의 벤츠 택시도 전부 수동기어, 일본말로 ‘스틱’으로 운행된다. 이 사람들에게 한국에서는 벤츠나 BMW도 대부분 ‘오토매틱’이라는 얘기를 해주면, 야릇한 미소를 띄우면서 ‘지적 장애인’ 아니냐고 은근히 무시한다. 마치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깃발을 따라다니는 소위 ‘깃발부대’, 일본 관광객들을 연상하는 표정이다.


어차피 섹슈얼 판타지 혹은 ‘과도한 남근주의’ 아니면 성공시대, 그 무엇이라도 좋다. 그렇지만 어차피 큰 자동차를 탈 것이면, 오토매틱 기어를 버리고 수동 자동차를 타는 것이 국가와 국토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좋다. 화석연료를 바로 20% 정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협약, 고유가 대책, 에너지 안보, 미세먼지 저감, 도시환경 개선, 아토피 대책 등등 수많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것들의 공통점은 ‘오토’를 ‘스틱’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책이란 점이다. 매연, 에너지, 오존, 극미세먼지 등 이름만 다르지 결국은 한 가지 원인임이 확실한 이것들은 수동으로 바꾸면 20%가 준다. 자신이 기계를 모른다고 확실하게 써붙여 놓는 ‘오토매틱’을 타면서 벤츠라고 좋아할 대한민국 남성은 국제기준으로 자신이 ‘기계를 모르는 바보’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총리실에 있던 시절 기후변화협약 종합대책을 수립하면서 ‘수동기어 보급촉진을 위한 기본계획’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더니 국장들과 실장들 그리고 심지어는 장관들까지 나에게 “우 박사, 근데 난 이젠 나이 먹어서 수동은 운전 못할 것 같은데 어쩌지?”라고 말했다. 이 대책은 결국 세상에 얼굴을 보이지 못했다. 자신의 소득보다 과도하게 좋은 차량을 구매하고 장애인용 자동차였던 오토매틱을 운행하면서 섹슈얼 판타지를 꿈꾸는 대한민국 남성들은 완전히 바보다. 그리고 국토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실천도 하지 않는 이 집단은 반도의 야비한 반역자들이고, 태어나지도 않은 ‘다음세대’의 적이다. 아토피와 ‘오토매틱’의 상관관계는 통계적 유의수준을 보여준다.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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