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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명랑국토부] 토박이 멸종할라/우석훈

등록 2006-07-20 18:52수정 2006-07-21 16:22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한해 전국민의 18%가 이사 다니는 나라 그 절반이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라면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고통의 공간 지역을 보존할 ‘지역공동체’가 어찌 생기랴
여기는 명랑국토부

공동체라는 개념은 약간 익숙하게 사용되고는 있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어려운 개념이다. ‘공통적인 것(commun)’이라는 말이 어원인 일련의 단어들은 공동체(community)와 공산주의(communism)라는 단어에서부터 포스트모던 계열의 공동체주의(communalism)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계속해서 파생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카페와 새로운 소통의 형태들에 붙여주는 ‘인터넷 코뮤너티’라는 말까지 파생되고 있는 걸 보면, 이 단어가 얼마나 어려운 단어인지 방증한다.

우리 국토는 사실상 이제 보존이 불가능한 ‘위험수준’을 넘어선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에게 심각한 ‘생태재앙’이 벌어지지 않을 최소기준도 이미 넘어선 상태가 아닐까 의문이다. 바닷가 갯벌에서 발견되던 깔따구나 모기와 같은 특정 곤충류의 과다한 번식으로 인근 주민들이 겪게 되는 생태계 교란은 무리한 생태조건 변화를 수반하는 각종 공사의 후유증이고, 점점 격화되는 물난리 역시 생태조건의 변화와 무관하지는 않다. 화산지형이라서 물 흡수가 좋은 제주도에서 최근 열심히 도로를 건설하고 난 다음에 홍수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도 우리나라의 생태계가 지금 얼마나 심각한 교란현상을 겪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사람은 괜찮을까? 동물이나 식물이 살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대형포유류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아무 일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급증가하고 있으며, 일부 성인들한테도 생겨난 아토피성 피부질환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환경성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보존’이나 ‘보호’와 같은 어려운 단어들은 사실상 ‘사람’이라는 행위주체 혹은 ‘주민’이라는 주체를 전제하는 개념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는 이 보존의 주체가 바로 지역공동체 혹은 주민공동체라는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법률체계는 환경소송권을 ‘주민등록증’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지역에 주소를 두고 있는 사람들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주민들이 뭔가를 보존하는 장치가 바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공동체를 통해서 보존되는 것은 지역 생태만이 아니라 특수하지만 아름다운 문화 그리고 전통산업과 같은 ‘산업 다양성’ 등 포괄적인 삶, 그리고 그 삶으로부터 파생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이 지역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에는 전통이나 염치 같은 것들이 사라지게 되었고, 동시에 음식이나 향토상품 같은 것들도 위기를 겪게 되고, 당연히 지역 생태계의 보존도 곤란하게 된 셈이다.

개구리가 없는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이론적으로 한다면, 종 다양성, 문화 다양성, 산업 다양성 확보처럼 특수한 존재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적 협약과 노력들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통시장이 왜 보호돼야 하고, 도시의 작은 자영업자들이 왜 보호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도요새가 왜 보호받아야 하는지와 사실상 같은 질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지역색과 사투리 같은 것들을 경멸과 조롱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보다는 이러한 특색과 전통들이 의미를 가지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사실상 우리가 바라는 선진국의 본모습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지역공동체는 현재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 워낙 공동체라는 단어가 어렵기 때문에 적절한 수치를 찾기가 어렵지만, 간접적으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통계가 아주 없지는 않다.

2005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880만명 즉 전체인구의 18.1%가 이사를 갔다. 여성이 남성보다 약간 더 많이 이사했는데, 이는 남성의 일부가 군 복무 때문에 이사갈 수 없는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5년이면 전 국민이 현 거주지를 떠나 어딘가로 이사를 간다는 엄청난 이동률을 자랑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거주지를 선택하는 것일까? 2004년도 사회통계에 따르면 국민의 48.8%가 “경제적 능력에 맞추어서” 거주지를 선택하였고, “직장 때문에”라고 답한 사람들이 16.6%다. 사실상 국민들의 65%가 어쩔 수 없어서 지금 집에 살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원래 살던 곳이라서” 즉 고향이어서 사는 사람들은 14.8%밖에 안 되는데, 2001년의 19.1%보다 많이 줄어든 셈이다. 참고로 자녀교육을 이유로 현 거주지에 사는 사람들은 4.6%이고, 투기꾼에 해당하는 “경제적 가치가 오를 것 같아서”라고 답한 사람은 1.1% 정도 된다.

20% 정도의 높은 이사율과 “옛날부터 살아와서” 지금 사는 곳에 사는 사람이 14.8%라는 점을 결합시키면, 우리나라에서 지역공동체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하고 약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국민의 절반이 지금 거주지가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어서” 사는 곳이라고 한 현실은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하루하루의 삶을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불행한 처지를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취약한 풀뿌리 민주주의’ 상황을 이렇게 통계로 찾아보면 너무 적나라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전국을 사업대상으로 보고 열심히 파헤치며 도로와 건물들로 먹고 사는 건설교통부가 국민들이 명랑해질 수 있도록 이제는 지갑을 열어야 할 순간이다. ‘분권’이니 ‘균형발전’이니 하는 말장난이 아니라 실제로 지역공동체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도록 시급하게 지갑을 열어야 한다. 왜냐하면 매번 국책사업을 비롯한 거대한 공사가 생길 때마다 대규모 지역공동체가 하나씩 망가져 간 것이 지난 30년 동안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명랑한 국민들이 명랑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내가 여기에 사는 것은 이곳을 사랑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다. “다음에 어디로 이사갈까?”라는 국민들의 고민은 즐거운 고민이 아니라 눈물나는 고민이다. 이 사람들은 지역에 정착하기 싫어서 이사 가는 게 아니라고 고백하고 있다는 걸 사회통계는 보여주고 있다.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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