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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명랑국토부] 착한 사람과 똑똑한 사람의 상관관계/우석훈

등록 2006-09-28 18:58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착하지 않은 똑똑한 사람 부자 되고 승리한 게 노무현 정부의 가장 슬픈 점이다
착한 사람들이 똑똑해지는 시대가 되면 골프장·FTA도 막을텐데…한겨레가 할 수 있을까
여기는 명랑국토부

황우석 사태가 전국을 휩쓴 지 6개월이 지나간다. 한겨레신문이 제2창간이라는 몸부림을 보여준 지도 1년이 지나간다. 내가 한때 한겨레신문이 더 이상 한겨레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첫 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말하듯이 집권여당에 대하여 지나치게 동정적이었다거나 혹은 기타등등의 이유는 아니었다.

균형발전과 ‘한국형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노무현 정부가 골프장 300개를 만들겠다고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이해찬 전 총리를 전면에 내세워 골프공화국 정책을 펴던 시절에 열심히 골프 중계하고 골프 레슨 같은 걸 신문에 싣는 걸 보면서 마음 아팠다. 그 이후 골프장은 어찌됐나? 아직 시민단체와 지역단체가 건설을 저지한 골프장은 하나도 없고, 골프장 반대싸움에 매달렸던 활동가들은 ‘무승전패’라는 화려한 스코어를 기록했고, “골프장에 반대했던 사람 중에 흥한 사람 없느니라…”가 됐다. 그 와중에 유일한 위안은 용인시 다음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골프장을 가진 여주시가 더 이상 골프장을 짓지 않겠다고 정책 방향을 전환한 정도다. 제주도나 강원도나 군사분계선 인근지역이든, 지역경제라는 말은 대부분의 경우 ‘골프장 경제’와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하긴 개성공단은 물론 금강산에도 골프장을 만드는데 성공한 골프 자본의 치밀함에 그 누가 당하겠는가? 1987년의 이른바 민주투사들이 정권에 들어가서 “이젠 민주화 시대다!”며 열심히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새만금에도 골프장을 짓겠다고 한다. 골프장을 지으면 인근의 농지나 도로와 접하지 않은 ‘맹지’가 ‘잡종지’로 풀려서 개발이 가능해진다. 작게는 100억원대 크게는 1000억원 정도를 그냥 벌어들인 사람들이 새로 지역토호에 진입한다. 전국적으로 노무현 시절 대략 토호 200명 정도가 새로 생겨났다. 가끔은 골프장이 서울에 사는 소위 ‘부재지주’에게 ‘대박’을 준 경우도 많다. 이렇게 골프장이 생기면 ‘똑똑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 존경도 받게 된다.

한겨레신문의 제2창간은 국민들속에서 ‘새로운 신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울려퍼졌던 그 시절의 것과는 조금 달랐는데, 가장 달랐던 것이 황우석 교수가 제2창간의 브랜드로 전면에 나섰다는 사실일 것 같다.

황우석 사건은 게임이론이나 진화이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질문을 남겨놓았다. ‘착한 사람’과 ‘똑똑한 사람’이라는 기준을 통해서 분석해 보면 아주 머리 아프다. 나름대로 똑똑하신 분들은 국익과 “우리나라 경제의 나아갈 길”을 얘기하면서 “바로 이거거든”이라고 하신 것 같다. 더 똑똑하신 분들은 “생명공학에 주어진 이 기회를 사소한 일로 잃어서는 안된다”며 상황을 증폭시켰다. 반면에 ‘착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나라가 좋아진다는데에야”라는 희생적인 정신을 보여주었고, 또 “모든 아픈 사람들의 희망이야”라는 숭고하고도 숙연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스코틀랜드의 신금욕주의 철학 전통에 서 있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독특한 기준으로 보면, 숭고한 황우석 지지자들은 개인의 이익보다는 조직 전체의 이익이라는 전형적인 이타주의의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국가의 이익인 국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작은 희생은 참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타주의’의 정의이고, 이에 따르면 국가와 전체를 위해서 줄기세포는 개발되고 발전되어야 한다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타주의에 가깝다. 물론 언젠가는 국가가 튼튼해져서 자신의 삶에도 조금 나아질 점이 있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자신 보다는 전체를 돌보는 ‘이타주의’의 정의 그 자체다.

여기에서 사회문제에 적용된 진화이론은 하나의 딜레마에 부딪힌다. <이타적 인간의 출현>을 저술한 최정규 박사의 연구결과는 어쩌면 이타주의자는 바로 테러리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가장 이타적인 사회는 영화 <전함 포템킨>에 나온 “개인은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개인을 위하여”라는 레닌의 말이 구현되는 바로 그 사회주의적 전체주의일지도 모른다.


한-미 FTA도 묘하게 황우석 사태와 구도는 같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개방’ 시대에 국가가 살아남기 위해서 “작은 희생은 감수하자”는 현재의 상황은 그야말로 한국형 이타주의와 국가주의가 오해와 희망 그리고 ‘정보독점’을 버무려서 만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의 방향을 잡을 것인가?

착하면 똑똑해지는가 아니면 똑똑하면 착해지는가? 혹은 착하지 않고 똑똑하면? 이런 사람들이 경쟁하는 것이 사회라고 할 때, 확실한 것은 “똑똑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이 승리하는 시스템은 좋지 않다는 점이다. 그걸 ‘지대경제(rent-seeking economy)’라고 부른다. 노무현 정부의 가장 슬픈 점은 ‘착하지 않고 똑똑한 사람’이 큰 부자가 되었고, 새로 토호의 반열에 올랐고, 진화 게임에서 승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집 한 채 있거나 사려고 하는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지려고 애써도 골프장으로 한 번에 천억 번 사람이나 균형발전전략으로 100억원 정도를 한 번에 쥔 사람들에 비유하면 다들 “가냘픈 인생”들일 뿐이다. 이런 시각에서 노무현 시대는 ‘대통령의 친구들’이 신났던 전두환 시대만큼이나 아주 끔찍한 시대였다.

착한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고, 똑똑한 사람들이 착해지고, 또 착하면 똑똑해지는 시대가 좋은 시대이다. 그리고 동양 역사상 최고의 시대는 ‘착해도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이 “왕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바로 그 요순시대이다. 그 때가 올 때까지는 별 수 있겠는가? 착한 사람들이 똑똑해지는 수밖에…. 그날이 올 때까지 착한 사람이 똑똑해지기 위한 등대 역할을 한겨레신문이 할 수 있겠는가? 국민 80%가 똑똑해져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된다면, 골프장 경제도, 황우석 사태도, 그리고 “무조건 해야 합니다, FTA!”도 사라질 것 같다. 현재는 “그래도 조선일보가 하라는 대로”의 국민들과 “제대로하라, 한겨레”의 국민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경제에서 진화경쟁을 벌이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개의 등대가 벌이는 경쟁은 흥미진진하지만, 10년 후의 결과도 흥미진진할까? 지금이 바로 분기점이다.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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