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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명랑국토부] ‘공영개발의 투명인간’ 세입자/우석훈

등록 2006-05-11 21:54수정 2006-05-12 17:19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뉴타운’ 공공의 비용 사용하면서도 살지도 않는 10%의 집주인만 ‘사람’ 대접
세금도 내고 투표도 하는데 세입자는 시민권 박탈되는 ‘없는 사람’
여기는 명랑국토부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발생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사회학에서는 ‘사악한 결과’라고 부른다. 한때는 새로운 비판이론의 태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주목을 받았던 레이몽 부동이 제시한 개념이다. ‘모순’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시도 중의 하나이다. ‘난개발’이라는 용어가 지금과 같은 이러한 사악한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1990년대에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난개발이라는 용어가 잉태한 씨앗이 도시빈민만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집이 없는 모든 사람들을 패자로 만들어버리는 공포스러운 일을 만들어내고 말 줄이야 정말로 선의로 “난개발이 문제다”라고 했던 사람 중 누가 상상했을 것인가?

분당과 일산의 경제적 성공 이후로 수도권의 많은 위성도시들은 나름대로 “아파트만이 살길이다”며 열심히 아파트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민간자본이 투입된 이 많은 아파트들은 학교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도로와 사람이 살기 위한 기초적인 아무 것도 만들지 않았고, “덜렁” 아파트만 지었다. 물론 여기에 싸다는 이유와 그래도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입주한 사람들은 그 후 십 년간 혹독한 고생을 했고, 난개발은 고통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다. 그래서 난개발은 곤란하다는 사회적 정서와 함께 이명박씨가 서울 시장으로 선출될 바로 그 즈음에 난개발은 사회악이 되어 있었고, ‘공영개발’이 박정희 이후로 다시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당연히 정부가 나서서 기반시설을 정비하니까 최악은 면한 녹지율과 공원도 하나쯤 있을 것이고, 기본 진입도로도 나라에서 지어줄 것이니까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당연하다. 난개발의 반대는 공영개발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였고, 이 과정에서 생겨날 약간의 토지수용 정도는 전체를 위해서 참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새롭게 생겨난 제도가 그 이름도 찬란한 뉴타운이라는 것이다. 본질은 정부가 하는 재개발 사업인데, 이걸 공영개발 방식으로 하니까 기초시설들이 공공기금으로 지원되고, 당연히 녹지와 생태계에 대한 고려 같은 것도 있을 것이라고 행복한 상상들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 뉴타운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맹점을 그 누가 알았으랴! 주거권과 난개발 방지라는 꿈과 같던 이 영어 문자는 놀랍게도 민주주의의 맹점을 파고 들어간 지금과 같은 사악한 악마가 되어버릴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토지수용이라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의 일부를 ‘공익’을 이유로 제한하는 장치인데, 이 헌법적 권리를 제한하는 근본적인 의사결정에 중요한 사람들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민주주의 기본 중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을 줄 도대체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주거지역 정비라는 근본 정신을 가지고 있는 공영개발의 의사결정 과정에 현행법규들은 지주와 주택소유자들만을 “사람”으로 간주하고, 전세로 사는 사람들이나 월세로 사는 사람들 혹은 임대상가로 경제활동하는 사람은 “없는 사람”으로 간주한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기본적인 보상절차에서는 그래도 좋은데, 공공의 비용을 사용하는 공영개발에서 엄연히 세금을 내고 투표도 하는 지역주민들 중 집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시민권이 박탈당하는 황당한 결과가 발생하게 되었다. 시에서는 집이 없는 사람들은 이사비용만 지불하면 되는 사람으로 간주하게 되고, 주요한 의사결정 과정에는 보상을 받아야 할 사람들 중심으로 과정이 진행되게 된다. 물론 민간개발에서는 그래도 할 수 없는데, ‘공영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시 혹은 구에서 의사결정하고 공공기금이 투입되는 일이 집 가진 사람과 땅 가진 사람의 의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이 공영개발이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 절차의 주요 맹점을 보여준다.

보통은 80%가 세입자인 지역 그리고 심지어는 90% 이상이 세입자인 아현과 같은 곳에서 먼저 뉴타운이 결정되는 과정은 당연히 왜곡될 수밖에 없는 근본 속성을 가지게 되는데, 시스템 분석으로 보면 10%의 집 가진 사람들과 힘 가진 공무원들이 의사결정권의 대부분을 독점하게 되고,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과정에 공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거의 원천적으로 배제된 셈이다.

집값 올라가면 모든 주민들이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50% 이상의 전월세 주민들은 집값이 올라간다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올라간 집값만큼 다음 계약 때 전세값이 얼마나 올라갈지 시름이 시작되고 좀 더 싼 곳으로 이사가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걱정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렇게 쫓기고 쫓겨서 몰려간 곳부터 뉴타운과 같은 각종 공영개발이 추진되는 상황이니 집 없으면 사람도 아니고 시민도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현재의 보상절차 중심으로 되어 있는 의사결정에 ‘주거권’이라는 개념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이제는 이 지주들과 집 가진 사람들, 대개는 실제로 살지도 않는 10% 정도의 집주인의 인생만 행복해지는 뒤틀린 공영개발 방식을 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 생태에도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낸 공영개발이 민주주의 원칙을 묘하게 위반하고 있다는 이 골치 아픈 상황이 언제나 시정될 것인가? 아니, 시장에 대한 투표권이 있으면 시에서 추진하는 공영개발에도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전월세 사는 주민은 시민도 아닌가?


강남북 균형개발과 국토균형개발을 외치는 공영개발 찬양론자들이여, 집값 올리고 땅값 올려서 주민들 행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하기 전에 시민들의 절반 이상이 집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국토대개조 정신에 충만한 제2의 한강개발론자들이여, 우리나라의 절반은 집이 없고 주거권이 집값 올라가는 것보다 더 우선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제발이지, 억울하면 집 사면 될 거 아니야라고 말하지 마시라. 역설적으로 집이 없는 절반의 국민들이 집값이 올라가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아직 이 국토생태가 폭발하지 않고, 국민경제가 버티고 있는 것이지, 당신들 생각처럼 집값 올라가면 모두가 행복할 상황이었다면 진작에 튤립 폭동으로 국가가 파산한 17세기 네덜란드 사태가 났거나, 전국의 지자체가 리조트와 골프장 짓는다고 결국 10년의 ‘헤이세이 공황’을 맞은 일본 꼴이 났을 것이다. 더 이상 전세사는 사람을 민주주의 절차에서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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