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북> H. 안나 서 엮음. 조윤숙 옮김. 이룸 펴냄. 7만9000원
다빈치 육필 원고로 들여다본
미술론과 사유세계
시원한 편집 돋보여
미술론과 사유세계
시원한 편집 돋보여
잠깐독서/
슈퍼울트라 르네상스맨 레오나르도 다 빈치. 화가, 수학자, 조각가, 해부학자, 지질학자, 물리학자, 식물학자, 건축가, 도시계획가…. 꼽기에도 숨찬 그의 이력을 경외하여 우리는 그를 신에 도전한 천재라 부른다. 그러나 천재라는 명함을 뒤집으면 이면에 ‘메모광 노력파’ 다 빈치가 있다. 천재는 99%의 땀방울이 만든다던가. 다 빈치는 30년간 수천 장의 육필원고를 써내려갔다. 불후의 명작 밑그림 스케치와 철학적 ‘낙서’에는 사유세계의 단상이 담겨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페이퍼’로 알려져 있는 그의 생짜 원고는 초인적 예술 성취를 엿볼 수 있는 열쇠다. 하지만 해독이 쉽지 않아 대중에겐 접근 불능에 가까웠다. 왼손을 사용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역방향으로 쓴 데다 문장을 구획짓는 부호도 없고 설령 문장이라고 해도 단어를 이어붙인 분절문장이었기에 그렇다. 용케 필사본을 열람하더라도 암호나 다름없었던 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노트북>(이룸)은 명망 있는 미술사학자들의 노력으로 해독한 육필원고를 추려 묶은 책이다.
다른 버전 동명의 책=같은 제목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노트북>이 지난 여름 루비박스에서 이미 나왔다. 영화 <다빈치 코드> 열풍에 때맞춰 나온 ‘루비박스본’은 독일 태생의 권위있는 이탈리아 미술사학자 장 폴 리히터의 주석서(1883년)를 9명의 미술 전문가들이 공동 번역을 한 것이다. 번역이 균일치 못한 티가 있으나 방대한 내용을 짚고 있어 미술의 원전으로 손색 없다. 제1부 ‘미술론’과 제2부 ‘문학론’으로 크게 나누고 ‘미술론’은 회화 개요, 원근법, 빛과 그림자, 색채론, 조각론, 인체의 비례와 움직임 등으로 정밀하게 세분했는데 그 하부 카테고리의 분류도 아주 치밀하다. 이번에 나온 ‘이룸본’은 대형 판본의 아트지에 오리지널 텍스트를 큼직큼직하게 실어 본문 흐름과 대조하기 편하게 공들인 편집이 돋보인다. 내용 면에서는 전자의 축약본이라 하겠다. 고고학자이자 메트로폴리탄 미술박물관 큐레이터 출신이 엮었다. 두 책 모두 머리맡에 두고 아무 쪽이나 펼쳐봐도 무방한 건 다르지 않다. 대신 전체를 빠르게 훑어 보지 말고 한 글자씩 한 문장씩 꼼꼼히 들여다보라고 다 빈치는 주문한다. 성근 눈으로 보려 했단, 그의 주도면밀한 관찰력을 놓치기 십상일 테니까.
자연이 만든 모든 형상을 표현하라=다 빈치는 회화론의 대전제로 “자연이 만든 모든 형상을 표현할 수 없다면 좋은 화가라고 할 수 없다”며 좋은 화가의 덕목을 두 가지 꼽는다. 사물이 멀어질수록 작아지고 희미해지며 윤곽이 흐릿해지는 원근법을 화폭에 담을 것이며 그 다음은 움직이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그리라는 거다. 후자는 팔 다리 몸통 얼굴 등 각 부위의 비례를 수치화하고 10구가 넘는 시신을 해부해 근육과 뼈의 구조를 알아내야 했던 이유인 셈이다. 특히 그의 대표 자산인 ‘스푸마토 기법’은 윤곽을 분명히 하지 않고 사물과 경계의 공기효과를 살린 섬세한 명암법으로 원근과 공간감을 느끼게 할 뿐아니라 그림의 심오한 깊이를 더해준다. “회화에서 물체의 경계는 모든 요소중 가장 중요하지 않다. … 그리려고 하는 물체를 선으로 둘러싸지 말라.” 바로 <모나리자> 미소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화가는 만능인이 되라=“화가는 만능인이 되지 않으면 칭송받을 자격이 없다.” 다빈치 노트에서 혀를 내두를 부분은 “눈구멍에서 귀까지의 길이는 귀의 길이와 같으며 이는 얼굴 길이의 3분의 1”이라는 식의 고도정밀한 비례도이다. 나아가 노인과 아이와 여자의 관절이나 피부, 살점은 비례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까지 직접 스케치해 보이며 설명한다. ‘빛과 그림자’ 부분은 광학 내지는 수학 교과서를 방불케 한다. “그림자는 빛보다 더 강력한 존재다”, “그림자가 원근화법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단지 말로 끝내지 않는다. 빛의 각도와 광원의 세기에 따른 그림자의 모양과 농도에 대한 증명은 고대 수학자들의 ‘정리’에 가깝다. 관찰의 압권은 인체 해부도인데 완전한 지식을 얻으려고 어떤 출혈도 없이 혈관의 미세한 살점까지 떼어냈다고 고백한다. 토막 나고 가죽이 벗겨진 끔찍한 시신과 함께 밤을 보내야 한다는 공포를 이겨내는 것보다 부족한 시간과의 싸움이 난관이었노라는 기록에서 대가의 끈질긴 열정이 배어난다. 이처럼 미스터리한 다 빈치의 성과는 모두 눈으로 본 경험에 입각한 결론이다. 500년전 대가의 육필을 뒤적여보는 일은 조각, 세공, 건축, 도시설계, 자연과학과 천문학으로 뻗어간 천재성이 하나하나 성실하게 체득해 간 땀방울이란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눈썹에서부터 입술 아래에 턱이 시작되는 지점까지를 잇는 선과 턱 점, 그리고 얼굴 윗부분에서 귀가 관자놀이와 만나는 점은 완벽한 사각형을 이룬다. 이 사각형의 각 변은 머리 전체 길이의 반이다. 그림 이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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