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과 과속의 부조화, 페미니즘>사빈 보지오발리시·미쉘 장카리니푸르넬 지음. 유재명 옮김. 부키 펴냄. 1만7500원.
잠깐독서 /
‘가정주부’란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선 산업혁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세기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여성은 집에 머물러야 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출산과 양육은 물론, 남편이 쾌적하게 쉬고 출근하도록 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었다. 고용주들은 가정주부를 절대 채용하지 않겠다고 떠벌였다.
20세기를 거치면서 여성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적어도 참정권과 시민권을 요구했던 19세기 페미니스트들의 꿈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는 2470년이 지나서야 여성들이 진짜 평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저자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여성들이 어떻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됐는지를 흥미롭게 파헤쳤다. 예컨대 바지를 입으면 반체제인사로 낙인찍혔던 여성들이 어떻게 자유로운 복장을 쟁취하게 됐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철제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땅에 끌리는 긴치마의 끝단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리 먼 과거는 아니다.
저자는 또 여성사에 획을 그을만한 사건과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여전히 남아있는 논쟁거리를 하나 둘 씩 던져 준다. 페미니즘이 맞닥뜨린 안팎의 도전도 들여다볼만 주제다. 여성들의 외침에 비우호적인 반페미니스트는 제쳐둔다고 하더라도, 선진국과 개도국간에 혹은 민족이나 종교, 이데올로기가 서로 다른 문화권간의 갈등은 주목할만하다. 이런 맥락에서 1989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차도르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차도르를 쓰고 등교했다가 퇴학을 당한 이슬람계 여학생들의 사건을 놓고 서구의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차도르 착용이 여성의 억압에 대한 표시라며 퇴학처분을 지지했다. 반면 이슬람에선 프랑스가 외국인의 문화를 거부했다며 강하게 맞섰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저속과 과속의 부조화는 이런 대목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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