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튼의 평화론>토마스 머튼 지음, 조효제 옮김,분도출판사 펴냄. 9000원
잠깐독서 /
<칠층산> <명상이란 무엇인가> 등을 통해 세계적 영성지도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토마스 머튼이 쓴 <포스트 그리스도교 시대의 평화>가 <머튼의 평화론>이란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본을 얻었다. 머튼은 1915년 프랑스에서 나 10대때 미국으로 왔다. 대학시절 공산주의 학생단체에까지 가담했으나,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을 접하면서 가톨릭에 관심을 갖고 26살때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해 사제가 됐다. 트라피스트회는 기도·침묵·정진·노동을 강조하며 엄격한 규율로 잘 알려진 관상(觀想)수도회다. 애초 이 책은 1962년에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2004년에야 미국에서 햇빛을 보았다.
머튼의 ‘평화’는 ‘영적 평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피안의 세계’는 더더욱 아니다. 그의 평화론은, 예수에게 천국과 현세, 구약과 신약이 이분법이 아닌 것처럼, 세계의 구체적 위기 현실과 개개인의 실존이 따로 있지 않다는 절박한 통찰에서 비롯한다. 이미 3세기에 그리스도인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논증한 오리게네스와 ‘정당한 전쟁론’으로 십자군 원정을 뒷받침했던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검토도 빠뜨리지 않았다.
1960년대 초, 세계는 첨예한 이념대립과 일촉즉발의 냉전 시대였다. “냉전 시대의 종교가 지닌 가장 큰 위험은 사람들의 자멸적 성향에다, 언뜻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것 같은 자기합리화의 외양을 덧칠해주었다는 데 있다.” 머튼은 ‘도덕적 수동성’이 ‘악마적 능동성’을 극복할 수 없다는 확신을 얻는다. 그 대안은 구체적이며 선지적이다. “이런 미치광이 같은 파괴에 항의하고, 기술력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과 수단을 지닌 국제기구를 창설해야 하며, 우리의 놀라운 재능을 인류파멸이 아닌 인류 행복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하여, 머튼이 “그리스도인은 행동으로 발언해야 한다”며 ‘실천적 선택’을 촉구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우리 양심을 추스리는 것과 구체적 정책이나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이러한 중요한 차이를 간과하거나 고의적으로 모호하게 얼버무리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머튼의 호소는 종교와 시대를 넘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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