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소설 외>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책세상 펴냄. 5900원
잠깐독서/
에밀 졸라(1840~1902)는 탄광 파업을 다룬 소설 <제르미날>(1885)을 통해 노동자를 하나의 사회 계급으로 등장시킨 최초의 소설가로 꼽히며, 드레퓌스 사건 당시 ‘나는 고발한다’(1894)라는 제목의 공개 서한을 발표해 양심적 지식인운동을 이끈 실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모두 20권의 연작 소설로 이루어진 <루공-마카르 가의 사람들> 시리즈에 당대 프랑스 사회의 전모를 담고자 했던 시대의 기록자이기도 했으며, 자신의 소설관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논문 <실험소설>로써 자연주의를 주창한 문학이론가이기도 했다.
졸라 전공자인 유기환 한국외대 불어과 교수가 번역한 <실험소설 외>는 졸라가 1880년에 출간한 문학론집 <실험소설>에서 표제 글을 비롯한 주요 논문을 추려 옮긴 것으로 졸라의 자연주의 문학관의 핵심을 담고 있다.
졸라가 말하는 실험소설을 난해한 현대소설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그는 문학에서의 상징주의나 심리주의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졸라의 실험소설론은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의 <실험의학 연구 입문>이라는 의학서의 결정적인 영향 아래 입안된 것으로 자연과학적 접근을 커다란 특징으로 한다. ‘과학적 실험을 수단으로 해서 일정한 유전 조건과 환경 속에 놓인 인간의 운명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실험소설의 핵심이 된다. “실험소설은 추상적 인간, 형이상학적 인간의 연구를 물리화학적 법칙에 따르고 환경의 영향에 의해 결정되는 자연적 인간의 연구로 대체한다.”(37쪽) 졸라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일정한 조건 아래 놓으면 그들의 향후 반응과 행동, 운명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무생물을 다루는 화학자와 물리학자, 생물을 다루는 생리학자와 마찬가지로 작가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써 살아 있는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판 <실험소설 외>에는 표제 논문 <실험소설> 전문과 함께, <소설에 대하여>와 <비평에 대하여>의 일부, 그리고 <공화국과 문학> 전문이 실렸다. 신문 기사에는 온갖 외설적 소재와 장면들이 등장하는데도 유독 연재소설에 대해서만 엄격한 외설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의 이중성, 그리고 문학과 정치의 항시적 긴장관계에 관한 졸라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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