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배웅> 나눔사 펴냄. 김흥겸 지음. 김흥겸과 벗들 역음. 1만원.
잠깐독서/
“제 장례식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서른 여섯 짧은 인생을 마감하기 석달 전, 김흥겸은 살아서 장례식을 치렀다. 그의 지인들은 세브란스 병원 작은 채플실에서 ‘아주 특별한 배웅’을 준비했다. 어떤 친구는 달동네 철거민들과 함께 살던 흥겸의 모습을 떠올리며 기도했고, 또 다른 이는 그가 만든 노래 <민중의 아버지>를 불렀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 장례식에서 고인은 잠시나마 행복해보였다.
그로부터 꼭 10년이 흘렀다. 빈민운동가 김흥겸의 벗들이 그의 이야기를 엮은 책을 펴냈다. 그가 남겼던 유고집 <낙골연가>를 다듬고 보태서 만들었다. 수필과 옥중서신, 투병일기 등 살아생전 남긴 기록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민중의 아버지> 외에 <빈민의 함성>, <전빈협 찬가> 등 그가 직접 만든 노래 6곡과 창작시 7편도 함께 담았다. 이 모임을 만든 김흥겸의 대학동기 김응교씨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은 그의 딸을 위해서 이 책을 펴냈다”고 전한다. 당시 6살 꼬마였던 봄이는 이제 16살의 소녀가 됐다.
연세대에서 신학을 전공한 김흥겸은 대학 2학년 때부터 파주 백석교회와 신림동 낙골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했다. 이때부터 도시 빈민문제에 눈을 뜬 그는 이후 사당동, 돈암동, 신대방동 등 철거지역을 돌며 본격적인 빈민운동에 뛰어든다. 가명 김해철도 ‘철거민 해방’이라는 뜻에서 지었단다. 철거민들이 부를 변변한 투쟁가 하나 없던 시절, 그는 묵묵히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만든 곡들 중에 유독 빈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노래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위암선고를 받고도 고인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자신의 과거와 현실을 담담히 기록해 나갔다. 서른 네살에 스스로 묻고 답하며 쓴 ‘조서’에선 이런 그의 고민이 엿보인다. “소설은 본질을 담기에 너무 방만하고, 시는 우리의 패배를 다 담아 얘기할 그릇이 아니며, 수필은 대립이 없다. 그래서 조서를 쓴다.” 전태일의 죽음을 그토록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던 70-80년대의 민중신학자들이 왜 또 다른 노동자의 삶과 죽음에는 침묵하는지 안타까워했고, 길을 잃고 벽돌처럼 줄줄이 쓰러져간 투쟁의 대열에 가슴아파했다.
2월13일 연세대에선 고인의 10주기를 맞아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이 자리는 그를 아꼈던 지인들이 함께 만든 모임 ‘김흥겸과 벗들’이 주최한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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