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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설] ‘여승무원’이라는 이름의 기이한 직제/김선우

등록 2006-03-23 22:42수정 2006-03-24 14:32

KTX 남성승무원은 정규직으로 채용하면서
여성승무원은 위탁파견직으로 채용한 것도 그런데
애초 ‘여승무원’이란 직제를 따로 둔 것부터 이상하다
승무원이면 승무원이지 여승무원은 뭔가
세설

봄비 속이다. 새만금 공사 재개라는 대법원 판정을 티브이로 지켜본 후 이 글을 쓰고 있다. 소식을 전하는 기자의 멘트는 이렇게 시작했다. 표류하던 새만금 간척사업이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탄력을 받는다,는 말이 이렇게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싶다. 요즘은 시간관념이 자꾸 얼크러진다. 2006년임을 잊을 때가 많다. 때로 1996년 같고 86년 같고 심지어 76년 같을 때도 있다. 이 땅의 사람들이 눈물을 삭이며 되뇌여야 했던 말,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끔찍한 전언을 온몸으로 통과한 후에야 간신히 얻어낼 수 있었던 ‘민주’는 어디로 실종한 걸까. 정치적 민주는 삶의 민주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꽃자리였을 것이다. 꽃진 자리에서 익어가야 할 개개인의 삶의 민주, 삶의 질과 자존과 품격을 위해 사람들은 싸웠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과거의 꽃진 자리인 열매를 따 쟁반에 받쳐든 정치권의 ‘옛 민주투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에 대한 회의와 분노와 슬픔이 진저리쳐질 때가 있다.

새만금을 고향으로 살아온 투박한 손의 어민들은 침통한 눈물을 흘리는데 말쑥한 정장 차림의 관료들은 축하주를 부딪히며 만세환호하는, 평생 농사짓고 살아온 주름진 어머니 아버지의 땅에 미군부대를 들어앉혀야 한다고 윽박지르며 경찰과 용역을 보내 농사 준비중인 논밭을 굴삭기로 갈아엎는 지금은 80년대인가. 지금 이 일들은 한나라당이 하고있는 건가. 헷갈린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쟁터. 노조가 뭔지도 모르던 KTX(고속전철) 여승무원들이 스스로 노조를 만들고 노동법과 단체협약을 알음알음 공부하며 파업에 이르게 된 과정엔 지금 이땅의 노동현실이 복잡하고 슬프게 얽혀 있다. 그이들이 전단지를 돌리고 가슴에 리본을 달기 시작했을 때, 상급단체였던 철도유통 노조는 돕기는커녕 사측의 입장에서 오히려 그이들을 압박했다. 왜였을까. 권력화되는 순간 타락할 위험이 커지는 인간의 조직들 중 노조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간 많은 노조들의 타락상을 보아왔고, 그 타락상은 간부들의 집단이기성에서 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조든 시민단체든 정부든 권력의 맛을 본 조직의 상층부는 어떤 조직을 망라하고 스스로 엄정한 자기성찰 능력을 전면가동하지 않으면 썩어간다. 상대적 약자의 입장과 시선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지 못하면 권력에 편승하고도 그것이 편승인지 모르는(모르고 싶은!)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나이 어린/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라는 이삼중의 멍에를 지고 고독한 싸움을 하던 KTX 여승무원들이 소속된 상급노조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다가 탈퇴하여 그이들의 싸움에 연대해 주었던 철도공사 노조에 재가입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일만도 슬픈 일이었다.

철도공사 노조의 파업과 철회 과정은 또 어떤가. 대표적인 노동악법인 직권중재와 연행, 감금, 협박으로 이어지는 징계일변도의 과정들도 옛시대의 유물인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이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게다가 ‘옛 민주투사’인 철도공사 사장은 여러 지면에서 이렇게 횡설수설한다. “비정규직 법안 개정과 직권중재 폐지는 건전한 노동운동이다… 하지만 현재 직권중재를 어기면 불법이 된다… 의도가 좋더라도 불법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없다.” 과거 사형수였던 자신의 전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듯한 현 공기업 사장의 이런 발언 역시 신자유주의 세계시장에 ‘뻑쩍지근하게’ ‘투항한’ 이 정부의 단면인가.

KTX 여승무원들은 어느날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지 협박을 받았다. 이것이 이땅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다. 유일하게 여승무원만 위탁 파견직으로 채용한 것도 그렇거니와, 애초에 ‘여승무원’이라는 직제를 따로 둘 생각을 한 것부터가 이상하다. 승무원이면 승무원이지 여승무원은 뭔가. 여승무원이라는 직제를 따로 두고 이들만 외주 위탁 방식의 비정규직으로 뽑는 행위에는 이 사회에 만연한 뿌리깊은 모순들이 얽혀 있다. KTX 한 열차에 타게되는 승무원은 팀장 1명과 여승무원 3명(그나마 인력부족을 이유로 2명으로 줄었다). 팀장은 남자로 철도공사 소속이다. 남성승무원은 철도공사 정규직으로 채용하면서 여성승무원은 파견직으로, 그것도 ‘여승무원’이라는 직제를 만들어 채용하는 행태는 도대체 뭔가. 철도공사는 말그대로 공기업이다. 국민이 낸 세금과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에서조차 상시적 업무에 비정규직 고용이 조장되고 성차별 행태가 남발된다면, 시장과 이윤의 논리가 무소불위의 빅브라더인 사기업들에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비정규직 양산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 사기업들에게 정부가 무슨 낯으로 양극화 해소를 운운하며 비정규직 남용 방지와 차별 금지를 운운한단 말인가.

게다가 나는 또 하나의 의혹을 버릴 수 없다. ‘여승무원’이 열차에서 하는 일은 검표부터 시작해 정규직 승무원과 거의 동일한 업무들인데 그중 ‘여승무원의 몫’으로 암묵적으로 명시됨직한 몇 개만 들어보자.
김선우/시인
김선우/시인
장애인 승하차 도우미, 노약자 보살피기, 혼자 여행하는 어린이의 안전한 인계, 환자 구호… 혹시 철도공사에서 ‘여승무원’만 위탁계약직으로 임시직 고용을 하겠다는 발상을 한 이면에는 장애인의 승하차를 돕고 어린이와 노약자를 보살피는 일들이 정규직 노동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사소한 일들이라는 무의식적 가치체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게다가 이런 ‘보살핌 노동’은 관습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되어온 일들이었다. 한 사회는 궁극적으로 서로를 보살피는 노동으로 건강해진다. ‘보살핌 노동’과 ‘여성 노동’의 가치가 폄훼되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면 건강한 공동체의 염원은 요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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