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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설] 그들의 카르텔

등록 2006-03-09 21:12수정 2006-03-10 17:41

술 취해 음식점 주인인 줄 알았다?
여성 권리는 고사하고 인권개념마저 없다니
고문과 사법살인 없어졌지만
민중을 물건으로 아는 본질적 카르텔은 여전하다
세설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어 사퇴 압력을 받아온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이 버티기 수순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한나라당 당명을 뺀 <국회의원 최연희>라는 간판을 내걸었을 뿐 아니라, 동해·삼척 현지에서 한나라당 당직자들과 당원,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고자 하는 예비 출마자들을 중심으로 최 의원의 구명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최연희 의원은 한나라당을 탈당하는 선에서 이 문제를 덮어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일부에서 일고 있는 동정론에 기대어 이전에 벌어졌던 국회의원 성추행 사건처럼 또다시 어물쩍 넘어가고 싶어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에 이어 열린우리당 한광원 의원까지 “봄의 유혹” 운운하는 수필에서 “일방적 매도”라고 최연희 의원을 두둔하고 나섰다. 한결같이 절망스러운 행동들이다.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은 ‘실수’로 덮고 지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근원적인 문제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가부장적 사고 폐해의 일단이 드러난 것일 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의 유착이 만들어낸 추악한 정치문화적 추태 중의 하나가 가시화된 것에 불과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공당의 정치인들이 줄줄이 언론사 간부들을 단체로 만나야 하는가. 정치인이 개인적으로 기자들을 만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개인적 친분 관계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자. 그런데 이번 술자리는 아예 공당의 대표인 박근혜 의원이 주선한 자리라고 한다. 언론사 편집부 간부들과 한나라당의 유력 당직자들이 ‘상견례’하는 자리였다는 것이다. 서로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할 정치인들이 무엇 때문에 언론사 간부들을 ‘상견례’해야 했던 것일까?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보도 지침인가?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폭력의 악순환 고리가 엄존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최연희 의원이 그간 보인 행보를 보면, 그가 여성의 권리는 고사하고 인권에 대한 개념마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사건이 터져나온 후에 ‘해명’이라고 내민 핑계를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가슴이 터질 것같다.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여기자는 성추행 하면 안되고 음식점 여주인은 성추행해도 된다는 뜻인가? 인간에 대해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이 국회의원을 해도 되는 것일까? 게다가 그가 동해시 성폭력 상담소 이사장이었다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은 결국 우리 사회의 어떤 계층이 인권에 대한 개념 자체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권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위에 군림하는 상전이라고 생각한다. 독재시대에는 말을 듣지 않으면, 즉 그들의 이익에 맞게 행동하지 않는 민중은 총으로 쏘아죽이고 ‘사상이 불순한 폭도’라고 매도하면 그만이었다. 거대언론사들은 이들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해 왔다. 한나라당과 거대언론사의 ‘상견례’는 우리 사회 폭력의 악순환에 기득권과 거대언론사가 여전히 두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아무도 쏘아죽일 수도 없고, 잡아다가 고문할 수도 없으며, 사법 살인을 할 수도 없다. 물론, 아직도 오징어로 경비원을 패도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본질은 여전히 같다. 본질은 여전히 민중 알기를 물건처럼 알고 있는 ‘그들의 카르텔’이다. 여기자는 그 카르텔에서 가장 약한 자다. 즉 그들의 카르텔 안에서는 유사 민중인 셈이다. 최연희 의원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 존경심을 결하고 있는 독재의 전통을 충성스럽게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맥락은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나는 전여옥 의원의 도를 넘는 막말도 결국 우리 사회가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녀의 논평은 논평이 아니라 언어 폭력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치매 노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정치적 논평이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그녀가 믿는 것은 그 폭력을 용인해 주는 사회 시스템이 온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폭력의 고리를 계속 생산해 내는 ‘그들의 카르텔’이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고 있다. 그녀는 온갖 막말을 쏟아내고도 특정계층에서 오히려 인기를 누린다. 그것은 그녀가 뱉어내는 폭력적 언어가 구시대의 구사대 몽둥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몽둥이를 휘두르는 대신 언어의 폭력을 휘두른다. 나는 그녀가 그 몽둥이-언어를 진짜 폭군이었던 정치인들을 향해 휘두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녀가 섬기는 봉건 제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마음껏 깔아뭉개도 무사하다. 왜냐하면, 그는 그 ‘카르텔’ 바깥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김정란/상지대 교수·시인
김정란/상지대 교수·시인

2006년 한국의 정치 상황은 여전히 암울하고 답답하다. 모든 것은 비틀려 있고, 말과 돈을 움켜쥔 자들이 행사하는 선동 앞에 무방비로 내던져져 있다. 육체적 폭력은 사라졌지만, 다른 종류의 폭력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합리적 비판은 사라지고 하이에나같은 물어뜯기만이 있다. 그러나 서로 이익이 맞는 ‘그들의 카르텔’에 속한 자는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최연희 의원과 전여옥 의원은 당장 의원직을 사퇴하기 바란다. 두 분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예의를 결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동네 반장도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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