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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실 빨간 양말

등록 2008-07-16 16:54

[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양말이 문제였다. 늦은밤 전화 한 통이 왔다. 꽤나 가까웠던 친구였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멀어진 이였다. 이따금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다는 둥 간단한 소식들은 바람결에 실려 들었던 터였다. 그의 아버지가 죽었단다. 어두운 국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연세가 예순다섯이니 평균 연령에 비춰 보면 비명횡사한 꼴이다. 가슴이 미어져 왔다. 외아들인 그가 경황이 없다는 소리도 수화기 너머 들려왔다.

다음날 새벽부터 옷장에 처박아둔 까만 옷들을 꺼냈다. 정성스럽게 다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부부에게 마음 깊숙이 애도를 표하고 싶었다. 부조금도 꽤 실하게 준비했다.

OO병원 영안실. 곡소리를 뚫고 그의 부친 영정 앞에 서려는 순간, 아차! 양말이 문제였다. 꽃분홍색에 가까운 새빨간 양말. 그것을 내가 신은 게 아닌가! 귀여운 작은 구멍까지 반짝인다. 급 당황에 이어 박장대소의 기운이 온 세포에 퍼졌다. 오른손 검지로 내 살을 꼬집었지만 미치도록 튀어나오려는 웃음에는 소용이 없었다. 상주와 마주보고 인사를 나눈 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이후에 어찌 되었느냐고? 그 친구와 의절하지는 않았다. 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빨간 양말.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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