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지금 전선에는 ‘교성’만 들린다.”
내가 아는 어떤 전쟁 취재 전문기자는 그런 문장으로 글을 맺는 걸 좋아한다. 이에 대해 누군가가 딴지를 건 적이 있다. “아니, 교성이 뭐 어때서? 그게 나쁜 건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교성은 즐거운 소리다. 환희의 음악적 표현이기도 하다.
신음은 어떠한가. 신음은 고통의 언어이지만, 역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할 때 쓴다. 더 나아가 저항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19세기 말 차르 치하의 러시아 중학교에서는 신음으로 투쟁했다고 한다. 못된 교사가 수업을 마치고 문으로 향할 때 그 발걸음에 맞추어 일제히 신음 소리를 내는 식이었다. 단, 걸리지 않도록 입을 다문 채 소리를 냈다고 한다. 이것은 ‘연주회’로 불렸다.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어린 시절, 이 일로 퇴학을 당할 뻔했다.
요즘처럼 살기 팍팍하고 정부가 맘에 안 들 때 그 투쟁을 패러디하는 건 어떨까. 몇날 며칠 시간을 맞추어 시민 전체가 함께 하는 거다. “일동 묵념” 대신 “일동 신음”. 방방곡곡의 신음 소리를 스트레오사운드로 들려주는 거다. 이름하여 ‘신음하는 민중’ 놀이. 천지가 울리도록, 끄~응.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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