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열렬하게, 오랫동안 좋아했던 가수나 드라마, 물건 등에는 애정 이상의 것, 인생의 한 시절이 담겨 있다. 이를테면 지난 4월 한국에 온 듀란듀란은 책받침 속 존 테일러의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나의 중학교 시절 그 자체였다. 당연히 듀란듀란의 공연을 보러가는 건 그 시절의 나를 만나러 가는 일이기도 했다. 문제는 순수의 시대의 나뿐 아니라 그때와 지금의 시간적 격차까지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공연장에서 그 시절 그 팬심으로 돌아간 나에게는 여전히 멋진 “오퐈”였지만 우리 오빠 이제 나이 쉰 살. 내가 ‘구리다’고 비웃었던 약수터나 관광버스 아줌마들의 오빠와 같은 연배가 되신 거다. 그럼 …, 나는?
<섹스 앤 더 시티> 극장판이 개봉된다. 시즌별로 다채로운 ‘삽질’ 연애를 하던 시절, 보고 또 보면서 애정을 넘어 애증 관계까지 형성된 캐리를 다시 만난다니 가슴 떨린다. 그런데 들려오는 건 늙으니까 ‘옷발’도 안 나더라 따위의 흉흉한 소문이다. 언니들을 영접한 지 이제 10년. 언니들의 ‘원숙해진’ 외모가 내 나이를 확인사살하겠지만 그래도 빨리 재회하고 싶다. 나의 20대 시절을.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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