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재즈파크 공연 여는 ㈜컬처마케팅그룹 김묘환(48) 대표이사
[향기 나는 사람들] 재즈콘서트 후원 김묘환씨
회사 수익 대부분 쏟아부어 6년째 72회 공연
입장료 단돈 1천원에 유기농 커피 공짜 대접
회사 수익 대부분 쏟아부어 6년째 72회 공연
입장료 단돈 1천원에 유기농 커피 공짜 대접
좋아하는 일이라도 계속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일에 돈이 많이 든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달로 6년째 재즈콘서트를 여는 ㈜컬처마케팅그룹 김묘환(48) 대표이사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지난 13일 저녁 서울 삼성동 패션센터에서 프랑스 재즈그룹 ‘노 스피리트(No Spirit)’가 연주하는 공연 ‘재즈파크’가 열렸습니다. 72회째 공연입니다. 관객들은 단돈 1천원을 내면 재즈공연과 함께 맛있는 유기농 커피를 먹을 수 있습니다.
초기엔 와인·양주에 안주까지 공짜 ‘고급 레스토랑’
그는 회사 수익의 대부분인 1억5천만원을 해마다 이 공연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이제 ‘재즈파크’는 재즈 음악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서고 싶어 하는 무대가 됐습니다. 미국, 프랑스, 뉴질랜드, 일본 등 다른 나라 연주자들도 대사관이나 문화원 등을 통해 공연 의사를 타진해 올 정도입니다. 연말께 다음해 공연 일정을 잡을 때면 1년치 공연 스케줄을 한 번에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지원자가 많다고 합니다. 무대에 서려면 3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합니다.
관객들의 반응? 당연히 뜨겁습니다. 재즈파크(www.jazzpark.co.kr) 사이트에 등록된 회원 수만도 1만명이 넘습니다. 사실상 거저인 입장료에 커피 대접 ‘특혜’로 600석 규모의 객석은 늘 꽉찰 수밖에 없습니다. 공연 초기 관객들이 누리는 호사는 그보다 훨씬 더 했습니다. 공연에 온 것인지 고급 레스토랑에 온 것인지 구별 못할 정도로 스폰서로부터 받은 와인은 물론 맥주와 양주까지 제공했고 강남의 유명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제공한 안주도 제공했습니다. 재즈는 원래 맥주를 마시고 시가를 피면서 듣는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김 대표의 그런 뜻을 몰라줬습니다. 공짜에 술과 안주까지 제공하자 도리어 공연장의 ‘물’이 흐려졌습니다. 어떤 손님은 술과 음식을 나르는 자원봉사자에게 술을 빨리 더 갖다 달라며 술집 종업원 부리듯했습니다. 김 대표는 생각을 바꿔 지금은 커피만 제공하고 입장료도 1천원씩 받고 있습니다.
의대 자퇴·디자이너·브랜드컨설턴터 거치며 늘 곁에 재즈는 김 대표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나아가 그의 삶은 재즈를 빼닮았습니다. 그는 대학 때 이화여대 앞 ‘야누스’와 이태원의 ‘올댓재즈’같은 재즈카페를 드나들며 루이 암스트롱, 레이 찰스, 데이브 브루벡 등의 재즈 선율에 젖어들었습니다. 재즈는 그에게 음악 이상이었습니다. 즉흥연주와 애드립으로 악보라는 틀을 벗어나는 음악을 들으며 그는 “재즈와 자유가 같은 말”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세상이 지어놓은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 애드립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의과대학 자퇴였습니다. 한의사인 아버지는 비록 서양의학이지만 아들이 의자(醫者)로 가업을 잇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적성에 맞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대학을 그만두자 결국 그는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금새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패션 디자인이었습니다. 그는 국민대와 홍익대 대학원을 다니며 패션과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취직은 식은 죽먹기보다 쉬웠습니다.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귀한 때라 굴지의 대기업 가운데 “골라서” 취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특정음이 반음씩 낮은 ‘블루노트’의 파격 같은 삶 88년에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조지타운대학 비즈니스스쿨에서 디자인경영으로 엠비에이 자격을 땄습니다. 젊은 시절 그에게 미국은 “착취자나 점령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유학 때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하기 위해 낮에 센트럴파크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는 화가를 보면서 미국의 또 다른 면을 알게 됐습니다. “미국의 힘은 그런 사람들에서 나왔다”는 것을. 미국에서도 재즈는 늘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 재즈는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누그러뜨리는 데 큰 구실을 했습니다. 재즈를 좋아하는 많은 백인들이 흑인 재즈 음악가를 가까이 하면서 인종적 편견에서 벗어났을 것이라 짐작됐습니다. 그가 발견한 문화의 힘이었습니다. 그는 재즈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세대, 지역, 계층 사이의 골을 메우고 싶어 재즈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그 안에 담고 있듯이 재즈는 세대와 계층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을 팬으로 갖고 있다고 여겨서입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의 삶은 재즈의 선율을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의 삶은 늘 보통 서양음악의 장조와는 거리가 먼, 특정음이 반음씩 낮은 ‘블루노트’의 파격을 띠었지요. 멀쩡하게 다니던 프랑스 회사를 그만둔 것도 그렇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여성의류는 프랑스 패션이 휩쓸고 있었어요. 한 나라의 산업이 특정 국가에 종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미련없이 사표를 냈습니다.” 놀이는 창조의 샘물, 놀지 못하면 병 나 그런 자유로움이 어떤 이에게는 파격으로 비치지만 그에게는 창조의 원천입니다. 그는 놀이를 통해 자유를 만끽합니다. 주말의 절반은 오로지 그 자신만의 놀이를 위해 씁니다. 스킨스쿠버, 스카이 다이빙, 플라이피싱, 골프 등 그가 즐기는 놀이는 종류가 꽤 많습니다. 그가 이렇게 노는 이유는 창조를 위해서입니다. “놀이는 리-크리에이션(re-creation), 즉 다시 창조하는 과정입니다. 놀지 못하면 아이디어는 고사하고 병이 납니다. 저는 가까이 지내는 시이오들에게 잘 노는 사람을 뽑으라고 권합니다.” 재즈가 준 자유는 그에게 창조적 사고를 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브랜드컨설팅 전문가로서 그는 세상을 다르게 읽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13마리의 파충류를 키우는 그의 파충류 애완동물 확대 현상에 대한 해석이 재미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파충류 애완동물의 증가는 뱀을 사탄으로 여기는 기독교의 쇠퇴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와 함께 또 한 가지의 분석을 내놓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매일 먹이를 줘야하는 개와 고양이는 애물단지가 되어 외면받기 시작했고, 몇 주 동안 먹이를 주지 않아도 버티는 파충류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지하철 남녀 옷차림 관찰하며 심리상태 비평 ‘지하철 남녀’의 옷차림과 심리상태에 대한 비평도 재미있습니다. 그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그 때가 그에게는 또 다른 자유시간입니다. 지하철에서 뒤집어 입은 듯한 자켓과 청바지에 귀를 덮고도 남는 큰 헤드폰을 쓴 흰머리의 선하게 생긴 아저씨를 발견한다면 그가 바로 김 대표입니다. 그의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재즈만은 아닙니다. 그는 힙합, 트로트, 랩 등 장르를 가리지 않습니다. 귀로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눈으로는 사람을 관찰합니다.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여성들이 붉은색 옷을 많이 입으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는 의지를 가진 것입니다. 계절의 시작을 뜻하기도 하구요.”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지하철에서 남성들의 옷차림을 유심히 관찰했더니 무채색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기대감이 높을 때 사람들은 유채색 계열의 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위축되어 있거나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입니다. 재즈처럼 깊고 오랜 여운 남기는 공익적 문화상품이 꿈 이런 이야깃 거리를 갖고 있다보니 그의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는 와인 모임도 세 개나 꾸리고 있습니다. 20년 전 53일 동안 술을 계속 마시다 쓰러진 뒤 술을 끊고 와인 두 잔이 한계임에도 술자리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것은 그의 그런 입담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또다른 직업을 “스토리텔러”라고 합니다. 요즈음 그는 또 다른 꿈을 꿉니다. “문화를 제대로 산업화시키는 일”입니다. 스타를 ‘만들어’ 비싸게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고 버리는 게 아니라 스타도, 그를 둘러싼 문화상품도 재즈의 선율처럼 깊고 오랜 여운을 남기도록 만들고 싶어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언젠가는 수익보다 공익을 앞세우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무료 재즈 공연은 그런 꿈을 향한 과정입니다. 글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의대 자퇴·디자이너·브랜드컨설턴터 거치며 늘 곁에 재즈는 김 대표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나아가 그의 삶은 재즈를 빼닮았습니다. 그는 대학 때 이화여대 앞 ‘야누스’와 이태원의 ‘올댓재즈’같은 재즈카페를 드나들며 루이 암스트롱, 레이 찰스, 데이브 브루벡 등의 재즈 선율에 젖어들었습니다. 재즈는 그에게 음악 이상이었습니다. 즉흥연주와 애드립으로 악보라는 틀을 벗어나는 음악을 들으며 그는 “재즈와 자유가 같은 말”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세상이 지어놓은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 애드립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의과대학 자퇴였습니다. 한의사인 아버지는 비록 서양의학이지만 아들이 의자(醫者)로 가업을 잇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적성에 맞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대학을 그만두자 결국 그는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금새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패션 디자인이었습니다. 그는 국민대와 홍익대 대학원을 다니며 패션과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취직은 식은 죽먹기보다 쉬웠습니다.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귀한 때라 굴지의 대기업 가운데 “골라서” 취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특정음이 반음씩 낮은 ‘블루노트’의 파격 같은 삶 88년에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조지타운대학 비즈니스스쿨에서 디자인경영으로 엠비에이 자격을 땄습니다. 젊은 시절 그에게 미국은 “착취자나 점령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유학 때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하기 위해 낮에 센트럴파크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는 화가를 보면서 미국의 또 다른 면을 알게 됐습니다. “미국의 힘은 그런 사람들에서 나왔다”는 것을. 미국에서도 재즈는 늘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 재즈는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누그러뜨리는 데 큰 구실을 했습니다. 재즈를 좋아하는 많은 백인들이 흑인 재즈 음악가를 가까이 하면서 인종적 편견에서 벗어났을 것이라 짐작됐습니다. 그가 발견한 문화의 힘이었습니다. 그는 재즈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세대, 지역, 계층 사이의 골을 메우고 싶어 재즈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그 안에 담고 있듯이 재즈는 세대와 계층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을 팬으로 갖고 있다고 여겨서입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의 삶은 재즈의 선율을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의 삶은 늘 보통 서양음악의 장조와는 거리가 먼, 특정음이 반음씩 낮은 ‘블루노트’의 파격을 띠었지요. 멀쩡하게 다니던 프랑스 회사를 그만둔 것도 그렇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여성의류는 프랑스 패션이 휩쓸고 있었어요. 한 나라의 산업이 특정 국가에 종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미련없이 사표를 냈습니다.” 놀이는 창조의 샘물, 놀지 못하면 병 나 그런 자유로움이 어떤 이에게는 파격으로 비치지만 그에게는 창조의 원천입니다. 그는 놀이를 통해 자유를 만끽합니다. 주말의 절반은 오로지 그 자신만의 놀이를 위해 씁니다. 스킨스쿠버, 스카이 다이빙, 플라이피싱, 골프 등 그가 즐기는 놀이는 종류가 꽤 많습니다. 그가 이렇게 노는 이유는 창조를 위해서입니다. “놀이는 리-크리에이션(re-creation), 즉 다시 창조하는 과정입니다. 놀지 못하면 아이디어는 고사하고 병이 납니다. 저는 가까이 지내는 시이오들에게 잘 노는 사람을 뽑으라고 권합니다.” 재즈가 준 자유는 그에게 창조적 사고를 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브랜드컨설팅 전문가로서 그는 세상을 다르게 읽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13마리의 파충류를 키우는 그의 파충류 애완동물 확대 현상에 대한 해석이 재미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파충류 애완동물의 증가는 뱀을 사탄으로 여기는 기독교의 쇠퇴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와 함께 또 한 가지의 분석을 내놓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매일 먹이를 줘야하는 개와 고양이는 애물단지가 되어 외면받기 시작했고, 몇 주 동안 먹이를 주지 않아도 버티는 파충류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지하철 남녀 옷차림 관찰하며 심리상태 비평 ‘지하철 남녀’의 옷차림과 심리상태에 대한 비평도 재미있습니다. 그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그 때가 그에게는 또 다른 자유시간입니다. 지하철에서 뒤집어 입은 듯한 자켓과 청바지에 귀를 덮고도 남는 큰 헤드폰을 쓴 흰머리의 선하게 생긴 아저씨를 발견한다면 그가 바로 김 대표입니다. 그의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재즈만은 아닙니다. 그는 힙합, 트로트, 랩 등 장르를 가리지 않습니다. 귀로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눈으로는 사람을 관찰합니다.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여성들이 붉은색 옷을 많이 입으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는 의지를 가진 것입니다. 계절의 시작을 뜻하기도 하구요.”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지하철에서 남성들의 옷차림을 유심히 관찰했더니 무채색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기대감이 높을 때 사람들은 유채색 계열의 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위축되어 있거나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입니다. 재즈처럼 깊고 오랜 여운 남기는 공익적 문화상품이 꿈 이런 이야깃 거리를 갖고 있다보니 그의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는 와인 모임도 세 개나 꾸리고 있습니다. 20년 전 53일 동안 술을 계속 마시다 쓰러진 뒤 술을 끊고 와인 두 잔이 한계임에도 술자리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것은 그의 그런 입담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또다른 직업을 “스토리텔러”라고 합니다. 요즈음 그는 또 다른 꿈을 꿉니다. “문화를 제대로 산업화시키는 일”입니다. 스타를 ‘만들어’ 비싸게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고 버리는 게 아니라 스타도, 그를 둘러싼 문화상품도 재즈의 선율처럼 깊고 오랜 여운을 남기도록 만들고 싶어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언젠가는 수익보다 공익을 앞세우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무료 재즈 공연은 그런 꿈을 향한 과정입니다. 글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