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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탄광촌 고교 ‘달건이’들, 막장서 사고쳤다

등록 2008-07-15 14:50수정 2008-07-15 18:32

도계고등학교 뮤지컬 동아리 학생들과 지도교사 이종오선생님.
도계고등학교 뮤지컬 동아리 학생들과 지도교사 이종오선생님.
[향기 나는 사람들] 뮤지컬 배우 된 ‘문제아’들
흡연 음주에 툭하면 폭력, 학교의 무법자
‘춤추고 노래하고 놀게’했더니 ‘스타 탄생’
교육은 사람을 바꿉니다. 교사가 포기하지 않으면 학생은 언젠가 바뀝니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고등학교의 교사들이 그랬습니다. 모두가 가망이 없다고 한 아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교사들은 뮤지컬을 통해 아이들을 바꿔냈습니다.

이 학교 뮤지컬 동아리는 삼척시에서 유명합니다. 2006년 8월 만들어진 이 동아리가 상연하는 작품은 '뺀지와 철조망'. 내용은 이렇습니다.

탄광촌의 한 고등학교 '문제학생'들이 자신들의 동네인 낙지(樂地)를 접수한 다른 동네 건달패 '철조망'에 맞서기 위해 '뺀지'라는 조직을 만듭니다. 이름은 철조망을 끊을 수 있다는 뜻에서 '뺀지'로 정했습니다. '뺀지'들은 말썽을 피우다 들켜 선도 프로그램으로 막장에 보내집니다. 이들은 그곳에서 매몰사고를 겪고 구출되는 과정에서 광부로, 광부의 아내로 살아가는 부모들의 힘든 삶을 알게 되면서 개과천선하게 됩니다.

학부모 교사 반대 무릅쓰고 학교예산 2천만원 배정

‘뺀지와 철조망’ 연극 영상

이 뮤지컬의 주요 배우들은 대본에서처럼 한때 도계 지역을 주름잡던 '달건이'들입니다. '달건이'는 부적응 학생을 가리키는 교사들의 은어. 흡연과 음주는 보통이고, 무단결석, 폭력, 수업시간에 잠자기, 슬리퍼 신고 다니기 등 학교 방침에 늘 어깃장을 놓고 살았던 아이들입니다. 선배들에게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조폭인사'를 하면서 교사에게는 대들기 일쑤였지요.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에게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욕지거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청소년 연극제 팸플릿.
청소년 연극제 팸플릿.

2006년 봄. 도계고에서는 교사들이 '달건이'들에게 두 손을 드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은 말갈기처럼 기른 머리를 단정히 다듬으라는 교사의 말을 계속 무시했던 겁니다. 학생부장의 엄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체벌을 할 수도 없고, 그저 버티는 아이들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인국(60) 교장은 30명 가까운 '달건이'들을 교장실로 불렀습니다. 더이상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을 포기하는 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도대체 너희들이 잘하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춤추고 노래하며 노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그래? 뮤지컬이네. 뮤지컬을 하도록 해줄 테니 대신 머리를 단정히 하라고 했어요."

'달건이'에게 뮤지컬을? 반대가 많았습니다. 학교운영위에서 결정하긴 했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문제 학생들을 위해 2천만원이나 되는 학교 예산을 쓰는 게 달갑지 않았습니다. 몇몇 교사들은 더욱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영어 단어 하나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꼴통'들이 뮤지컬 대사를 어떻게 외울 수 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교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다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가능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고급 문화를 체험하게 해주는 데 쓰는 돈은 아깝지 않았어요."

교장 선생님이 직접 대본 쓰고 앞장…1년만에 전국무대 은상

8월 김경준, 최경민, 김승환 등 27명의 학생들이 1기 단원으로 '뽑혔'습니다. 건달조직 철조망의 침입, 뺀지 결성, 싸우지 않고 이기기, 개과천선, 졸업 등 8막으로 이뤄진 뮤지컬 대본은 전 교장이 썼습니다. 실업부와 음악부 교사가 중심이 되어 동해시의 연극 강사를 초청해 대본 읽기부터 시작했습니다. 교사들은 학교 생활에 넌덜머리를 내는 아이들이 잘 따라줄까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대본을 재미있어 하고 잘 외웠습니다. 교사들의 걱정은 기우였지요. 남현우(19)군은 "대본요. 흐름을 따라가면 쉽게 외워저요"라고 말합니다.

뮤지컬 연습이 시작되자 도계고는 물론 학교 주변의 분위기도 달라졌습니다. 야간 자율학습 대신 동네를 배회하며 음주, 흡연, 폭력, 금품갈취 등을 하던 아이들이 연기 연습에 몰두하자 '사건'이 크게 줄었고, 반대하던 학부모들의 목소리도 사그라들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아이들의 '변신'. 교사들과 오랜 시간 부대끼면서 반항적이던 아이들이 교사를 따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조명호 군은 "학교가 오는 게 재미있어 졌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들은 뮤지컬 연습이 시작되면서 머리를 단정하게 깎아 전 교장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초기 학생부장으로 아이들과 씨름했던 최승국 교사는 "믿고 사랑하자 아이들이 따르기 시작했다"며 "교사들도 겉모습만으로 아이에게 낙인을 찍고 상담 등 교육적 배려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합니다.

3개월 남짓 연습을 마친 동아리는 2006년 12월 학교 축제인 '느티제'에 1막과 2막을 선보였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지요. 학생들은 물론 교사와 학부모들까지 이구동성으로 대단한 작품이라며 칭찬했습니다. 중학교 때 이들을 가르쳤던 교사들은 무기력하고 반항적이기만 했던 제자들의 변화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뮤지컬 동아리는 그해 말 지역 행사에 초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이듬해 대회에 진출하게 됩니다. 삼척시 청소년예술제 대상, 강원 청소년연극제 뮤지컬 부문 1위, 전국청소년연극제 단체 부문 은상 등. 주연을 맡은 권상문군은 두 차례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습니다. 올해 들어 공연은 더욱 늘어 상반기에만 10여 차례 무대에 섰습니다. 공연 때마다 갈채가 쏟아졌고, 말썽장이들은 삼척시의 스타가 됐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여중고생으로부터 휴대폰으로 팬레터를 받기도 했습니다. 무대에 서면서 아이들은 또 다시 달라졌습니다. '달건이'들이 꿈을 갖기 시작한 것이지요. 뮤지컬 배우의 꿈 말입니다. 지난해 주연을 맡아 두 차례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권군은 서울종합예술학교에, 어덕용군은 백석예술전공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올해 주연을 맡은 이인철(19)군도 "뮤지컬을 공부하는 대학에 꼭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학교 분위기도 싹 바꿔 100% 대학진학…지역문화 대표상품 꿈

도계고등학교 뮤지컬 동아리 학생들이 연극하는 모습.
도계고등학교 뮤지컬 동아리 학생들이 연극하는 모습.

뮤지컬 동아리의 성공은 학교 분위기를 크게 바꿨습니다. 스타로 거듭난 '문제아'들은 다른 아이들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범생이'들은 공부에, 자신들은 뮤지컬에 서로 다른 재능을 갖고 있는 똑같은 친구였습니다. 공부하는 아이를 괴롭힐 이유가 없었습니다. 최근에 부임한 이계호 교감은 "학생들이 너무 순하고 말을 잘 들어 깜짝 놀랐다"고 도계고의 분위기를 평가했습니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도계고는 지난해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서울의 대학에 19명이 진학했고 진학률 100%를 달성했습니다. 한 학년 학생 수가 100명도 되지 않는, 몰락해가고 있는 탄광촌의 작은 고등학교가 거둔 입시 성적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뮤지컬 동아리의 성공은 교사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교사들은 동아리가 만들어진 초기 탄광촌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칠 전문가를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전 교장은 인기가수 출신 강원래씨가 운영하는 클론 댄스스쿨이 있는 강릉까지 찾아가 강습을 부탁했습니다. "강씨가 우리 얘기를 듣더니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하더군요. 무료로 학생들을 가르쳐 줬습니다."

주위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뻗쳐 왔습니다. 문화관광부는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통해 예술강사와 1250만원의 경비를 지원했습니다. 삼척시는 지난해 1700만원에 이어 올해 10월 열리는 삼척세계소방방재장비엑스포 초청 공연 준비금으로 2천만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특히 삼척시의 지원금은 뮤지컬 공연 수준을 올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교장과 교사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중입니다. '뺀지와 철조망'을 지역 문화 상품으로 만드는 일이지요. 이를 위해 학교쪽은 지역 휴양·레저 기업과 뮤지컬 공연 협의를 시작했습니다. 공연 수준도 높일 계획입니다. 뮤지컬 담당 이종오 교사는 "<점프>의 배우처럼 무술 동작을 할 수 있거나 비보이를 결합시켜 뺀지와 철조망의 대결 장면을 보다 화려하게 꾸미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때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눈에 보였으나 지금은 말썽꾸러기들도 똑같이 눈에 들어옵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눈을 뜬 것이지요." 그래서 도계고 교사들은 행복한가 봅니다.

◈슬라이드로 보는 ‘뺀지와 철조망’


   

삼척/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사진·영상 제공 도계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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