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은 산골 분교의 아이들과 음악을 나눌 때가 음악인으로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전북 김제시 화율분교 뒷마당에서 자신의 곡 ‘마술피리’를 수화노래로 가르쳐주고 있는 모습. 사진 아티움오프스 제공
[느림과 자유]172회째 분교음악회 이어가는 예민씨
아이들과 눈맞춰 도란도란, ‘삶 속 음악’ 나눠
“도시 프로그램 반복하는 건 또다른 문화 소외”
아이들과 눈맞춰 도란도란, ‘삶 속 음악’ 나눠
“도시 프로그램 반복하는 건 또다른 문화 소외”
<아에이오우>와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예민(42). 그의 음악은 결이 곱다. 맛은 담백하고 상큼하다. 결 고운 소리는 여운이 길다. 그가 8년 동안 172회째 분교음악회를 이어가고 있는 힘은 그의 결 고운 마음에서 나오는 듯 싶다.
그는 강원도 영월의 한 분교에서 시작해 오지 섬마을까지 찾아다니며 연 분교음악회에 번 돈의 대부분을 쏟아 부었다. “아이들과 무릎을 맞대고 눈동자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눌 때 느꼈던 행복감, 서너 시간의 만남 뒤에도 헤어짐이 아쉬워 서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순수함 등이 음악인으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었다”고 한다.
“그런 행복감은 죽기 얼마 전에 맛보면 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일찍 알려주셨는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무대에서 혹은 카메라를 보면서 노래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상상으로 쓴 노래말이 세상에 존재함을 알고 깜짝 놀라
90년대 초 동심을 잘 표현한 그의 히트곡 <아에이오우>와 <산골소년…>이 세상에 나왔을 때 분교음악회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는 1997년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강원도 평창군의 한 분교 아이들과 지내면서 자신이 상상으로 쓴 노래말이 세상에 존재함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학생수 10명이 안되는, 난생 처음 알게 된 분교에서 그는 ‘햇볕 든 칠판 위에 분필로 근 오선 마루 바닥 위의 낡은 풍금’(아에이오우)을 봤고, ‘냇가에 고무신 벗어놓고 흐르는 냇물에 발 담그’(<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는 아이들을 만났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개울가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은 조약돌을 주워다 두드리며 박자를 맞췄습니다. 저도 제 음악도 무척 행복했습니다.” ▶“고양이를 술먹여 건반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치게 하는 듯한” 현대음악 불편
음악과 인간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오랜 고민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93년 한국인 가운데 처음으로 100년 전통의 미국 코니시음대 작곡과에 들어갔지만 “고양이를 술먹여 건반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치게 하는 듯한” 현대음악의 불편함이 견디기 힘들었다. 음악의 기원을 탐구하고 세계 민속 음악 수집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오랜 고민 끝에 음악과 사람은 삶 속에서 만나야 함을 깨달았다. 분교에서 만난 아이들과 나눈 음악이 바로 그랬다. 다른 일을 해도 그 때의 행복감이 밀려 왔다. 그예 2001년 한해 동안 120회 분교음악회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쉽지는 않았다. 가장 어려운 일은 섭외였다. 공연을 빙자한 책장사로 여기는 학교도 있었다. 그의 팬이 교사로 있는 강원도 영월의 한 분교에서 첫 음악회를 열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내용이 문제였다.
“제가 노래를 부르는데 한쪽에서는 마을 사람이 옥수수를 쪄와서 나눠주고, 옆에 앉은 아이는 노래가 언제 끝나냐고 묻더군요. 첫 공연에서 그냥 무너졌습니다. 너무 창피하고 선생님에게 미안했어요. 그때부터 아이들과 음악적으로 어떤 만남을 가져야할까 고민했지요.”
▶이곳에 온 이유와 어떤 일 할 것인지 설명하며 세계 여러 악기 보여주기도
그의 음악회는 수업처럼 바뀌었다. 먼저 햇살 좋은 교정에 걸상을 끌어다 놓고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와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설명한다. 이어 남미 안데스 지역 인디오들이 비를 부르는 데 쓴 레인스틱, 두꺼비 소리를 내는 악기, 파도 소리를 내는 오션 드럼, 버팔로 턱뼈로 만든 악기 등을 하나씩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눈다. 2시간30분의 음악회 가운데 그가 부르는 노래는 2곡 뿐이다. “도시의 프로그램을 그냥 가져다 주는 것은 또 다른 문화 소외를 낳게 됩니다.”
분교음악회를 통해 그는 산골 학교 아이들의 어려운 처지도 많이 알게 됐다. 본교에 가서 학교급식이 너무나 맛있어 몇 차례나 먹고 집으로 돌아올 때 토하는 아이 이야기를 들었고, 그런 제자들에게 밥이라도 제대로 먹이기 위해 분교를 없애려고 애쓰는 선생님을 만났다.
지난해부터는 그런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는 음악회를 열고 싶어 여러 곳에 제안서를 들고 다녔지만 후원자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분교음악회를 매개로 어떤 돈벌이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깰 수는 없었다. 그동안 광고 제의도 많이 받았었다.
▶다문화가정 위한 음악회도 준비…아시아로 확산 희망
“무대에 서는 게 행복하지 않아” 가수를 포기했지만 재원 마련을 위해 지난해 7년만에 음반을 냈다. <오퍼스 2007>. 하지만 그의 따스한 가슴과 달리 음반 시장은 블록버스터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얼어붙어 있었다. 발매 뒤 6개월 동안 들어온 음원 수입은 250만원에 불과했다. 도리어 빚을 졌다. 요즈음 그는 다시 작곡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의 음악을 맡았다. 애니메이션용 음악을 부탁하는 곳도 있다.
예민은 여전히 음악과 아이들의 행복한 만남을 꿈꾼다. 지난해 여름 우즈베키스탄에서 음악회를 하다 알게 된, 고려인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공연장을 사들여 제대로 꾸며주고, 분교음악회를 아시아로 확산하고 싶다. 올해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음악회도 준비중이다. 그래서 요즈음엔 제안서를 들고 이곳저곳을 많이 다닌다.
“앞으로 20년, 아니 마지막 분교가 없어지는 그 자리에서 음악회를 열고 싶습니다. 마지막 분교가 사라질 때는 소외받는 아이들이 다 사라진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너무 행복했습니다. 개울가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은 조약돌을 주워다 두드리며 박자를 맞췄습니다. 저도 제 음악도 무척 행복했습니다.” ▶“고양이를 술먹여 건반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치게 하는 듯한” 현대음악 불편
예민이 경북 예천군 덕율분교에서 아이볼을 늘려 북의 가죽이 팽창해 음이 높아지는 원리를 알려주고 있다. 사진 아티움오프스 제공
강원도 고성군 구성분교에서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를 부르는 예민을 한 아이가 턱을 괴고 올려다보고 있다. 사진 아티움오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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