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국동에 문을 연 공정무역 전문가게 ‘그루’ 매장 전경.
[살맛 나는 삶터] 공정무역 매장 그루 1호점
제3세계 노동 ‘제값’ 치르는 소비자운동 열매
생필품에서 비 맞아도 되는 종이옷까지 다양
제3세계 노동 ‘제값’ 치르는 소비자운동 열매
생필품에서 비 맞아도 되는 종이옷까지 다양
국내에서도 공정무역 전문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27일 서울 안국동에 문을 연 '그루' (02-739-7944)입니다. 공정무역을 새로운 소비운동의 하나로 만들 목적으로 지난해 출범한 ㈜페어트레이드코리아가 만든 매장입니다. 공정무역은 제3세계 생산자들이 만든 물품을 제값을 주고 구매함으로써 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소비자 운동입니다.
'그루'에 가면 인도, 네팔, 동티모르, 페루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된 다양한 종류의 공정무역 상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커피, 식용유, 설탕 등 생필품에서 주전자, 컵, 접시, 스푼, 포크 등 주방용품, 손수건, 가방, 티셔츠, 가디건, 원피스 바지, 치마 등 의류와 팬시제품에 이르기까지 100여 종의 상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들 제품은 페어트레이드코리아 홈페이지(ecofairtrade.co.kr)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디자인은 좀 떨어지지만 품질은 수제 명품
아시아의 가난한 여성들의 자립에 관심이 많은 '그루'는 여성들의 재능이 발휘될 수 있는 의류 부문에 힘을 많이 쏟고 있습니다. 가게 이름 '그루'는 페어트레이드코리아가 만든 패션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면, 울, 마, 실크 등의 자연소재와 베틀을 사용해 짠 원단을 써서 핸드메이드로 만든 제품들에 붙여집니다. 종이로 만든 옷도 있습니다. 비를 맞아도 괜찮다고 합니다. 27일 개점 행사 때에도 참가자들은 '그루' 브랜드가 달린 옷을 많이 사갔습니다.
가게를 찾는 이들에게 호평을 얻은 상품은 유기농 면제품입니다. 입어본 이들은 모두 감촉이 좋다고 한마디씩 합니다. 면화는 농약을 많이 사용해 기르는 대표적인 농작물로 세계에서 쓰이는 농약의 25%가 목화밭에 뿌려집니다. 하지만 '그루'에서 수입하는 원단은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의 비다르바 농민조합(VOFA)이 유기농으로 재배한 면화로 만든 것입니다. 이들은 화학비료 대신 퇴비를 쓰고 무당벌레나 거미와 같은 곤충을 이용해 벌레를 잡습니다.
공정무역 전문가게 '그루'는 매장 그 자체로도 볼거리가 됩니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매장은 고풍스런 멋과 현대적인 세련됨이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매장 한 가운데는 잔디가 깔린 뜰이 있고 그 위는 탁 트여 언제든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이 공간은 공연 무대로도 쓰입니다.
하지만 '그루'의 앞날이 밝기만은 한 것은 아닙니다. 실무자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주력 상품'인 의류의 디자인입니다. 현지에서 만든 의류의 디자인 수준은 우리나라 사람의 눈높이에 조금 못미칩니다. '그루'는 전문디자인그룹과 손잡고 가을, 겨울용 티셔츠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너도나도 자원봉사·후원금…신상품 개발 등에 시민 투자자 모아
소비자들이 비싸다고 느끼는 점도 넘어야 할 산입니다. 특히 유기농 면으로 만든 티셔츠의 경우 생산량이 작아 제작 단가가 무척 높습니다. 티셔츠 한 벌의 값이 5만원이나 하는 이유입니다.
이미영 대표는 "디자인을 빼면 품질은 명품에 견줘도 손색이 없지만 소비자들은 동남아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값이 비싸다고 느낀다"며 "가격 정책을 어떻게 해야할지 솔직히 고민"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루'의 앞날을 희망적으로 생각합니다. 디자인만 조금 개선하면 품질에서는 어떤 명품 브랜드와도 경쟁해볼 만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공정무역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우호적인 시선도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 '그루 1호점'을 만들 때 많은 이들이 길게는 4개월 가까이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서인조경에서 매장 안팎의 조경을 후원했고, 조각가 이영섭씨는 '대지'라 이름붙인 여인상을 기증했으며 에덴바이오벽지에서 벽지를, 엘지화학에서 바닥재를, 웅진코웨이에서 비데, 정수기, 공기청정기를 기증했습니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를 비롯해 락앤락, 지에스홈쇼핑, 우림건설 등 여러 회사에서 후원금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루'는 여전히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1억5천만원의 초기 출자금은 매장 개설과 제품 개발 등에 다 썼고 디자인 개선과 신상품 개발 등에 적지 않은 자금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는 시민을 대상으로 투자자를 모아 충당할 계획입니다. '그루'는 공정무역의 숲을 만드는 데 필요한 나무 한 그루씩을 심을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찾아가는 길
지하철3호선 안국역 1번출구 ->골목길로 50미터 직진 ->용화당 한의원 왼편 골목
연락처 : 02)739-7944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매장을 찾은 시민들이 유기농 원단으로 만든 의류를 살펴보고 있다.
매장 한 켠에 주전자, 그릇, 머그컵 등이 전시되어 있다.
매장 한 가운데 자리한 작은 정원
‘그루’ 입구에 세워진 간판은 예술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