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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움직임 속에서 고요 찾아 “발로 기도”

등록 2008-02-25 18:52수정 2008-03-05 14:14

[향기나는 사람] 명상춤 이종희씨
중세 유럽 수도원 전통에 동양의 선·도·기 접목
춤사위엔 제각각 상징…더불어 하나되면 평화
명상과 춤. 얼핏 반대되는 말처럼 보입니다. 명상에는 고요함이 필요합니다. 동작은 물론 생각과 느낌까지 모두 놓고 고요 속으로 깊이깊이 잠기는 행위이지요. 춤은 그 반대입니다. 고요함과는 거리가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움직임 속에서 고요를 찾아 명상에 이르는 방법도 있습니다. 동중정, 움직임 속에서 고요를 찾는 일이 바로 명상춤입니다. 명상춤은 중세 유럽 신비주의 수도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로 손 잡고 원 그려…풍물의 달팽이진과 흡사

16일 오전 11시 대전 한남대 학생회관 지하1층 에어로빅실, 고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10여 명의 여성들이 몸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동작은 단순합니다. 두 팔로 번갈아가며 크게 원을 그리고 발은 제자리 걸음을 하듯이 움직입니다. 모두들 쉽게 따라합니다. 한 곡이 끝나면 새로운 동작을 배우고 다른 곡에 맞춰 두 세 차례 되풀이 합니다.

1시간쯤 지났을까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 나옵니다. 시인이고 가수이자 작곡가인 로드 맥퀸이 부른 파헬벨의 캐논입니다. 참가자들은 명상춤 안내자 이종희(57)씨의 지시에 따라 서로서로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명상춤에서는 손을 잡는 방법도 독특합니다. 오른손바닥은 위를 향하게 하고 왼손 바닥은 아래를 향하게 해서 서로의 손을 겹쳐 놓습니다. 오른손으로는 받고 왼손으로는 준다는 뜻을 담은 동작입니다.

이씨는 한 손을 가슴에 얹고 다른 손으로 참가자의 손을 잡고 조금씩 원을 그리며 움직여 나갑니다. 이들이 그리는 동선은 상쇠가 앞장서서 원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되돌아 나오는 풍물의 달팽이진과 닮았습니다. 이씨는 눈을 감은 채 음악의 리듬을 타고 원 한가운데서 다시 바깥으로 돌아나옵니다. 에어로빅실 안에는 음악과 춤사위만 있을 뿐 아무도 없는 듯 고요하기만 합니다.

어떤 종교인도 마음 걸림 없게 ‘골방’이라 이름 지어

“명상춤은 종교의 벽을 넘어선 발로 하는 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몸을 움직이다가 깊은 고요 속으로 들어가 신비에 접할 수가 있습니다.”

이씨는 2년 전부터 매주 화, 수 이틀 대전 용전동의 한 아파트에 ‘한숲골방’이라는 공간을 마련해 원하는 이들과 명상춤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곳을 “모든 이의 마음 속에 자리한 지성소이자 암자이자 수도원”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왜 이곳에 골방이라는 이름을 지었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골방이라 이름을 지으면 어떤 종교인도 마음의 걸림이 없이 문을 두드릴 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숲골방’에서의 모임과 함께 이씨는 2년째 다달이 한남대에서 명상춤 워크숍을 열고 있습니다. 성공회대, 한북대, 흥사단, 수유+너머, 넘어서 등 대학과 시민단체들의 초청을 받을 때도 많습니다.

이씨가 명상춤을 보급하는 것은 그를 통해 자신이 얻은 평화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그는 평화 운동에 앞장서는 교단으로 알려진 퀘이커 신도입니다. 하지만 갈등, 대립, 분열, 상쟁이 주류인 세상이 춤을 통해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요?

“명상춤에는 다양한 상징이 들어있습니다.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춤을 추면서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나무를 상징하는 춤을 추면서 자신이 나무가 되어보고 나중에는 자신이 나무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나아가 모든 존재가 하나라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요. 그런 각성이 있게 되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옵니다. 평화로운 개인이 많아지면 세상도 평화롭게 되는 게 아닐까요.”

간호사로 독일 가 동양적인 수행의 전통에 매료

이씨는 그 자신 독일에서 명상춤을 배운 뒤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는 1975년 결혼과 함께 남편과 독일로 갔습니다. 간호사인 그와 사회학 공부를 하려던 남편이 함께 갈 수 있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이씨는 공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도 심리학과 상담을 공부했고, 강단에 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 그를 매료시킨 것은 정작 동양적인 수행의 전통이었습니다.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빌리기스 예서 신부입니다. 베네딕토 수도회 소속으로 18년 동안 일본에서 선을 배운 뒤 유럽으로 돌아와 선명상을 보급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하네요. 그는 괴팅엔의 시민대학에서 예거 신부의 강연을 듣다 ‘모든 것은 네 안에 있다.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것을 못찾을 뿐’이라는 말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는 몇 차례 예거 신부의 강연을 들은 뒤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게 됐습니다.

더 큰 인연은 독일인 친구의 소개로 한 교회에서 만난 명상춤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참석한 워크숍에서 명상춤이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고 합니다. 명상춤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독일에서 명상춤의 대가로 알려진 힐더 마리아 란다와도 만나게 됐습니다. 하버마스의 제자인 사회학자로 수도원의 전통에 동양의 선, 도, 기를 접목한 명상춤을 만든 란다는 그를 동양인 유일의 제자로 삼았습니다. 명상춤 지도자가 된 뒤 이씨는 독일에서 구·신교 수도원의 피정, 의료인과 환자, 학생과 교사, 종교인 연수 등에서 명상춤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늘 머릿속 맴돌던 비극적인 생각과 두려움 사라져”

명상춤은 먼저 그 자신을 변화시켰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명상춤을 추면서 “늘 머릿속을 맴돌던 비극적인 생각과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운명적으로 일어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살아가는 방식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일상을 주의깊게 관찰하게 되고 어떤 일을 하던 매사를 차근차근 준비하게 되면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특히 부부 사이가 좋아져 남편과 전보다 긴장없이 살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그는 한 때 부부라면 늘 서로를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더랬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사라지고 지금은 자신과 남편이 서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그게 가장 행복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차원을 한단계 승화시켰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행복감이 밀려왔습니다. 2006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 명상춤 보급에 나서고 있는 것도 많은 이들이 자신처럼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길 바라서입니다.

“명상춤은 영성훈련의 입문과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성을 개발해 평화와 행복을 찾고 그를 통해 세상이 평화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042)622-0011. href="mailto:meditanz@hanmail.net">meditanz@hanmail.net

대전/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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