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간호사가 꿈인 예림이(가명)가 그린 집 그림. 전북/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할머니를 그릴래요.”
7살 예림이(가명)는 그림 그리기를 가장 좋아한다. 예림이에게 ‘아무거나 좋아하는 것을 그려보라’고 이야기하자 주저 없이 할머니를 그리겠다고 말했다. 예림이는 스케치북을 펼쳐 흰 종이에 검은 크레파스로 뽀글뽀글한 머리와 둥근 얼굴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예림이는 할머니가 자주 입는 분홍색과 보라색으로 옷까지 꼼꼼히 색칠한 뒤 뿌듯한지 활짝 웃었다. 스케치북을 한장 한장 넘기자 예림이가 그린 그림이 가득했다. “이건 마당에서 본 나비예요. 이건 제가 풀밭에 물을 주는 모습이고요. 나중에 할머니랑 같이 살고 싶은 큰 집도 그렸어요.”
예림이가 ‘할머니’라고 부른 사람은 증조할머니다. 예림이는 전라북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80살 증조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예림이의 친부와 친모는 사실혼 관계에서 예림이를 낳았다. 중국 국적의 친모는 출산 직후 중국으로 돌아가 연락이 끊겼고, 친부도 아이를 양육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며 신생아를 두고 떠났다. 예림이의 할머니는 자궁암과 신장 질환 등으로 병원에 입원해 2년간 투병하다 예림이가 태어나기 며칠 전 숨을 거뒀다. 결국 예림이의 증조할머니가 딸을 잃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증손녀를 도맡아 기르게 됐다.
이런 상황 탓에 예림이는 태어난 지 5년이 지날 때까지 출생 신고조차 되지 않았다. 예림이의 출생 신고가 이뤄진 날은 친부가 예림이를 찾아온 유일한 날이었다. 증조할머니는 예림이에게 부모의 존재에 대해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예림이한테는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 있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예림이는 엄마가 살아 있다는 건 전혀 몰라요. 크면서 예림이가 자꾸 ‘왜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에 가 있느냐’고 물어보고,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아빠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아요. 딱 하루 아빠를 본 날 뭔가 눈치를 채기라도 한 것 같긴 한데….” 증조할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와 간호사가 꿈인 예림이(가명)가 23일 오후 전북 김제시 집에서 보호자인 증조할머니와 함께 있다. 전북/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70대에 다시 시작한 육아는 고된 일이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 예림이가 아플 때나 예방접종을 받으러 병원이라도 가려면 우는 아이를 달래며 버스를 서너번 갈아타야 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물품을 사러 마트에 가려고 해도 포대기로 예림이를 업고 30분을 걷고, 또 30분 버스를 타야 했다. 혹시나 어린아이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거나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또 연로한 탓에 이런 일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해 큰 사고로 이어질까 봐 증조할머니는 예림이를 4살 때까지 포대기로 업고 다녔다.
기저귀값과 분유값도 만만치 않았다. 예림이의 증조할머니는 건강 악화로 10년 전부터 밭일도 관뒀는데, 따로 벌이가 없는 상황에서 어린아이를 먹이고 기르기가 버거웠다고 한다. 예림이의 출생 신고 전까지 5년간은 기초생활수급비도 받지 못해 노령연금 20만원이 한달 수입의 전부였다. 그나마 예림이의 할머니가 남긴 암보험금을 까먹으며 간신히 버텼다고 한다. 출생 신고 이후에는 기초생활수급비를 포함해 한달에 80만원을 받지만, 전기세 등 각종 공과금과 두 식구의 식비 등 생활비로 매달 빠듯하다.
증조할머니는 가뜩이나 딸이 세상을 떠나 정신적으로 힘들던 시기에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기가 힘들어 온갖 생각을 다 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보육원에 보내라’고 조언했다. “누구 하나 같이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이 나이에 혼자 아이를 돌보려니 너무 힘들었어요. 건강도 좋지 않은데 아이는 계속 울고, 없는 돈을 쪼개 공과금을 내고 애를 먹이고 기저귀도 사야 하고…. 친구 같던 딸은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고요. 오죽했으면 죽고 싶다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근데 쟤가 불쌍해서 차마 못 죽겠더라고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거예요. 어떻게든 내가 쟤를 키울 수밖에 없겠다 싶었죠.”
천장 무너진 오래된 집…“장마에 또 무너질까 걱정”
열악한 주거 환경도 두 사람을 힘들게 한다. 예림이와 증조할머니가 사는 집은 증조할머니가 40년 넘게 살아온 흙집이다. 일부는 컨테이너를 덧대 개·보수했지만, 일부는 손보지 못하고 그대로 놔둔 상태다. 8년 전 폭우가 내리던 여름날, 개·보수하지 못한 방의 천장이 무너져 내려앉았다. “비가 많이 오니 흙이 떨어져서 천장이 무너진 것 같았어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났는지 천둥이 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집을 수리할 돈이 없어 8년째 방 중앙에 긴 막대를 하나 놓아 비스듬히 기울어진 천장을 간신히 받치고 있다. 그 방에 보일러 컨트롤러가 있어 씻을 때마다 보일러를 켜러 방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 한다. 방에 들어갈 때마다 막대가 천장을 잘 받치고 있는지 확인하고 곳곳이 뜯긴 나무판자로 된 문을 꼭 닫아두는 게 증조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하필 보일러가 있는 방이라 이틀에 한번은 거기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갈 때마다 무너질까 봐 걱정돼요. 방 안쪽에 꺼내야 하는 물건도 있는데 8년째 못 꺼내고 있어요. 여름마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기만을 바라죠. 장마 때문에 천장이 또 무너져서 예림이가 다칠까 봐 얼마나 걱정인지 몰라요.”
낡은 집은 계속 말썽이다. 5년 전에는 부엌 천장이 일부 무너졌고, 지난해 장마 때는 천장에서 비가 새어 방 안에 드러나 있는 전기선 위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거의 매해 비가 새는 탓에 장판과 벽지 곳곳에는 시커먼 곰팡이가 슬어 있고, 아예 벽지가 뜯어져 시커먼 벽이 드러난 곳도 많다. 비좁은 화장실에는 세면대가 따로 없고, 양동이를 놓을 공간도 충분치 않다. 예림이가 어릴 때는 화장실에서 예림이를 씻길 방법이 없어 매번 물을 받은 양동이를 방까지 가져와 예림이를 씻겼다고 한다. 부엌에 놓인 싱크대와 가스레인지도 식당에서 쓰던 걸 얻어온 것이다. 마당에는 과거 재래식 화장실과 곳간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무너져 있었고, 건물에서 쏟아져 나온 짐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예림이(가명)와 증조할머니가 사는 집은 증조할머니가 40년 넘게 살아온 낡은 집이다. 방 한군데는 천장이 내려앉아 있어 늘 조심해야 한다. 전북/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예림이는 부쩍 “내 방과 책상을 갖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집에 방이 3개 있는데, 하나는 천장이 무너져 사용할 수 없고 다른 하나는 짐으로 가득 차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은 16㎡(5평) 남짓한 방 한칸뿐이다. 이 방에는 텔레비전과 선풍기 등 생활에 필요한 가전과 예림이의 인형과 스케치북, 할머니의 옷 등이 뒤섞여 있다. 예림이와 증조할머니는 이 방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따로 책상이 없어 예림이는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숙제를 한다.
증조할머니는 집을 수리해 예림이의 방과 책상을 마련해주고 싶지만 당장 생활비도 넉넉지 않은 형편이라 꿈만 꿀 뿐이다. 예림이가 자랄수록 필요한 것들이 더 많아질 텐데, 증조할머니는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걱정이라고 한다. “제가 글을 몰라서 예림이한테도 못 가르쳐줬어요. 예림이는 말도 4살 때까지 제대로 못 했어요. 시청에서 지원하는 학습지로 이제야 한글을 익히고 있어요. 공부도 더 할 수 있게 해주면 좋을 텐데….”
어려운 환경에서도 예림이는 다행히 건강하고 착한 아이로 자랐고, 증조할머니와 예림이는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소중한 가족이 됐다. 예림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1학년 전교생이 예림이를 포함해 2명뿐일 정도로 작은 규모라 증조할머니는 예림이의 가장 친한 친구기도 하다. 어린아이가 별로 없는 동네에서 예림이는 동네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만날 때마다 인사를 예의 바르게 잘하고 다닌다고 동네 어른들한테 예쁨을 많이 받아요.”
예림이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화가가 되고 싶고, 아픈 할머니를 치료해줄 수 있는 간호사도 되고 싶다고 한다. 할머니는 항상 손을 심하게 떨고, 노환으로 매일 각종 약 네가지를 챙겨 먹는다. 예림이를 업고 다니느라 허리가 안 좋아 허리 밴드도 착용하고, 치아가 거의 없지만 비용 탓에 치과 진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할머니, 내가 얼른 커서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차 운전도 내가 다 해서 편하게 여행도 데리고 다닐게.” 예림이는 증조할머니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그때까진 아니라도 예림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내가 살아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증조할머니의 가장 큰 바람은 예림이와 함께 오래 사는 것이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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