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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점점 몸이 굳고 떨리는 6살 내 아들, 덜 힘들수만 있다면…

등록 2021-05-05 20:03수정 2021-07-06 15:36

[나눔꽃] 희귀 난치성 ‘뇌전증’ 앓는 지환이

이름도 낯선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가장 심한 뇌전증으로 치료 어려워
6개월때 발작으로 뇌세포 1/3 손상…먹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해
지환(가명)이의 할머니와 아버지가 지난달 29일 오후 대구 북구의 집에서 지환이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지자 호흡기를 씌워주고 있다. 대구/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환(가명)이의 할머니와 아버지가 지난달 29일 오후 대구 북구의 집에서 지환이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지자 호흡기를 씌워주고 있다. 대구/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산소포화도 측정기가 요란한 경고음을 냈다. 지환(가명·6)이의 산소농도 수치가 90 아래로 떨어졌다는 알림이다. 할머니 권숙자(가명·66)씨가 재빨리 지환이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자 산소농도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지환이는 여전히 호흡이 불편한지 거친 숨을 내쉰다. 측정기에서 또다시 요란한 신호음이 난다. 이번엔 옆에 있던 아버지 전민우(가명·42)씨가 석션(기도에 막힌 이물질을 빨아들이는 치료)기를 찾아 가래를 제거한다. 뇌전증과 뇌병변 장애가 있는 지환이는 혼자 숨쉬기 어렵다. 뇌전증 등으로 폐의 절반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잦은 경련 뒤엔 목에 가래가 찬다.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고, 몸을 스스로 가누지도 못한다. 지난달 29일 대구시 북구에 있는 집에서 만난 지환이는 권씨 품에 조용히 안겨 있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아가며 지환이 곁을 지키고 있다.

경련 호전 안돼 의료용 대마 처방
한달 약값만 180만원으로 부담 커
우울증 앓던 아내마저 세상 떠나고
아버지·할머니 24시간 교대 돌봄
“더 나빠지지 않고 오래 함께하길”

 병명 찾는 데만 1년

지환이의 병명은 희귀 난치성 뇌전증인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이다. 뇌전증 중에서도 증상이 가장 심한 병으로 약물이나 수술 등으로도 회복이 쉽지 않다. 지환이가 태어날 때부터 뚜렷한 뇌전증 증상을 보인 건 아니다. 태어났을 때는 손목에 약간의 떨림 정도만 있었다. 병원에서도 “인큐베이터에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말했다. 아버지는 지환이가 열이 나거나 경기를 하긴 했지만 일반 신생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대구에 사는 지환이 할머니가 서울로 급히 올라온 건 지환이가 생후 100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다. 지환이가 이유 없이 심한 경련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지환이를 진료한 의사는 “뇌전증 증상을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뇌전증이 의심됐지만 원인도 병명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지환이의 병명을 찾기 위한 지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전씨는 지환이를 데리고 여러 대학병원을 찾아다녔다. 유명한 뇌전증 전문의를 수소문했고, 한의원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곳에서도 분명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사이 지환이의 몸은 조금씩 굳어갔다. 지환이의 진단서엔 늘 ‘상세불명의 뇌전증’이란 설명이 따라붙었다. 아버지는 속이 탔다. “정말 답답했습니다. 병명을 모르니 어떤 약이 필요한지도 몰랐고, 처방해준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으니까요.” 그사이 지환이는 폐렴과 경련 등으로 중환자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회사에서 근무 중이던 아버지가 가족들의 호출을 받은 건 지환이가 생후 6개월 정도 됐을 때였다. 지환이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심각한 경련을 일으켰다. 평소 10분이면 멈췄을 발작은 1시간 이상 지속됐다. 당시 진료를 보던 병원은 지환이에게 맞는 약이 없다며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할 정도로 아이를 진정시킬 방도가 마땅찮았다. 여러차례의 고비를 넘긴 뒤에야 지환이는 겨우 진정됐지만 경련 이후 지환이의 뇌세포는 3분의 1 이상이 죽었다. 심각한 손상이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더 큰 위험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지환이를 키우며 가장 아찔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치료를 못한다니까 잘못될까 걱정이 많았는데 지환이가 잘 버텨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절망과 안도를 되풀이하던 끝에 전씨는 지환이의 병명을 알 수 있었다. 의사는 지환이의 병이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이라 진단했다. ‘현상 유지가 최선’이란 절망적인 설명도 뒤따랐다. 지환이는 곧이어 미토콘드리아 근육병증 진단도 받았다. 근육 경련과 함께 각종 장기 기능이 저하되는 병이다. 2016년 지환이가 돌을 갓 넘겼을 때의 일이다.

음식물 섭취로 폐질환을 거듭 겪은 지환이의 배에 위루관이 시술돼 있다. 대구/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음식물 섭취로 폐질환을 거듭 겪은 지환이의 배에 위루관이 시술돼 있다. 대구/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현상 유지도 쉽지 않아

지환이의 몸 상태는 그 뒤로도 조금씩 악화됐다. 지환이의 팔과 다리, 허리는 조금씩 굳어 고개를 혼자 돌리거나 몸을 뒤집지 못한다. 폐의 한쪽은 어느덧 새까맣게 변해 제 기능을 잃었다. 옹알이 수준으로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지난해부터는 소리를 아예 내지 않는다.

지환이는 돌 무렵까지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어렵다. 지금은 배에 작은 구멍을 뚫어 위루관으로 영양분을 섭취한다. 하루 세번 위루관을 통해 영양식을 투여하지만 늘 부족하다. 지환이는 여섯살이지만 몸무게는 16㎏밖에 되지 않는다. “지환이가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 딸기를 좋아했어요. 딸기를 주고 싶은데 먹을 수가 없으니 아주 살짝 입술에 대주는 게 전부예요. 입으로 물이 조금만 들어가도 사레 걸리거든요.” 할머니는 손자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

경련도 나아지지 않았다. 하루 세번 경련약을 투여하지만 약 효과가 떨어지면 다시 경련이 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경련으로 지환이의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고 호흡이 거칠어져도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산소 호흡기를 채우고, 등을 두드리고, 몸을 주무르며 경과를 지켜보는 일이 전부다. 계획된 시간보다 경련약을 조금 일찍 투여하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잘 듣지 않을 때가 많다.

여러 약을 써도 경련이 나아지지 않자, 지환이를 진료하는 의사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중증 뇌전증 치료제로 사용되는 의료용 대마 처방을 내렸다. 의료용 대마는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 한달 약값만 180만원이 든다. 하지만 지환이의 고통을 덜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약을 바꾸자 지환이도 어느 정도 호전되기 시작했다. 약값이 부담됐지만 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경련이 오면 전기 충격을 가하는 느낌을 받는다는데 손을 잡아주는 것 이외엔 해줄 수 있는 게 없단 사실이 너무 마음 아팠거든요. 지환이가 덜 힘들 수만 있다면 더 비싼 거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죠.”

 아빠는 주저앉을 수 없다

전씨는 매일 가혹한 고통을 이겨내는 지환이를 보며 마음을 다잡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약값과 의료기기 대여비로만 한달에 230만원가량이 든다. 기저귀와 물티슈, 식염수 등 소모품 비용도 월 20만원으로 비용이 만만찮다. 지환이가 아플 때면 각종 검사비와 입원비도 뒤따른다.

전씨의 확실한 고정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 70만원이 전부다. 신용불량자인 전씨는 부정기적으로 식자재 운송 일을 하며 월 150만원가량을 버는데, 일감이 적을 땐 이마저도 쉽지 않다. 4년 전 사업에 실패한 전씨는 아직까지 부채가 6천만원이나 남아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전씨는 지환이의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은 뒤 회사를 그만뒀다. 병원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했던 지환이를 회사를 다니며 돌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전씨는 사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아내와 함께 지환이를 간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뜻처럼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업이 비교적 괜찮게 운영됐지만 매출이 점점 줄었고, 한두푼 빌리다 보니 빚은 금세 4억원까지 불어났다. 사업은 실패했고 채권자들의 독촉은 이어졌다. 결국 2017년 여름, 전씨는 파산 신청을 했다. 아이는 여전히 아팠고, 빚은 쌓였지만 치료는 끝이 없었다. 지환이가 태어난 뒤 우울증이 생겼던 전씨의 아내는 그 무렵 돌연 세상을 떠났다.

슬픔과 상실감에 빠졌지만 전씨는 주저앉을 수 없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힘들어할 여유도 없었어요. 아이는 여전히 아픈데 제가 포기하면 다 끝나버리는 거잖아요.” 서울 생활을 접고 어머니가 있는 대구 집으로 옮겼다. 자신이 일할 때 지환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씨는 하지정맥류가 있어 식자재 운송을 위한 장시간 운전이 힘들지만 지환이를 위해 일을 멈출 수 없다. 매월 소액이나마 부채를 갚으면서 재기를 꿈꾼다. 모든 건 지환이를 위해서다. “지환이가 재활치료도 받아야 하는데 비용도 문제고 일하느라 시간도 나지 않아 못 시키고 있거든요. 여유를 좀 찾으면 지환이 물리치료부터 시키고 싶어요.”

전씨의 꿈은 별다른 게 없다. 지환이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고 오래도록 전씨와 함께하길 바랄 뿐이다. “예전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지환이도 언젠가 걷고 뛸 거란 희망을 가졌어요. 그럴수록 더 실망감이 커지더라고요. 요즘엔 이렇게 힘겨운 고통을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생각을 해요. 더 나빠지지만 않고 오랫동안 함께 있어주길 바라는 게 전부입니다.”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지환이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기업은행 035-100411-01-456, 예금주: 사회복지법인어린이재단)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1588-1940)으로 문의해주시거나 네이버 해피빈에서도 후원이 가능합니다. 모금에 참여한 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 연락해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받을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20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약물치료비와 치료부대경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지환이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2000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지환이 보호자의 뜻에 따라 목표액이 넘는 금액은 다른 위기가정 지원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보도 이후…

뇌병변 장애를 가진 하늘이 사연(<한겨레> 4월5일치 10면)이 <한겨레>와 밀알복지재단이 함께한 ‘2021 나눔꽃 캠페인’에 소개된 뒤 231분께서 1480만800원(2일 기준)의 따뜻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밀알복지재단은 “소중한 후원금은 하늘이의 통원치료비, 의약품비, 긴급생계비로 전달하겠다”고 전했습니다. 하늘이네 가족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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