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
크리스마스와 설날, 졸업 및 입학 시즌을 거치고 나니 이제 게임기가 없는 아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저마다 사준 이유는 다를 것이다.
어떤 부모들은 다른 아이보다 앞서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게임기를 사주었을 것이다. 자신의 아이가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부모로서 앞서간다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아이도 게임기가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선심을 쓰면서 한번 해보게 할 기회를 가졌을 터이니 부모의 의도가 완전히 어긋나지는 않은 셈이다.
한번 게임기를 맛본 아이들은 부모를 조르게 되고 아이가 기죽지 않게 하려고 많은 부모들이 구매 대열에 합류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속이려고 아이에게 게임기를 안겨주기도 한다. 마침내 몇 남지 않은 부모들도 게임기 없으면 왕따 당한다는 아이의 말에 굴복하고 만다. 그런데 게임기가 이처럼 너도 나도 사줘야 할 정도로 필요한 물건인가?
일본 도호쿠대학의 카와시마 교수는 뇌 영상 연구를 통해 게임기를 이용하는 아이의 두뇌 활동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게임이더라도 게임을 할 때 사용하는 뇌의 영역이 한자리 수 더하기를 할 때 사용하는 뇌의 영역보다 훨씬 적었다. 이처럼 두뇌의 효과적인 자극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을 과도하게 이용하는 아이들은 주의력과 조절력, 종합적 사고력을 담당하는 전두엽 발달이 지연되기 쉽다.
저명한 교육심리학자인 제인 힐리 박사 역시 즉각적인 반응이 필요한 게임이 아이들의 주의 유지시간을 짧게 만들어 학습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또한 논리적 사고를 시작해야 할 나이에 ‘싸우거나 도망치는 식’의 원시적 대응방식을 유도하는 활동에 과도하게 노출하면 두뇌 구조의 형성에 이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두뇌 발달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만 7살 이전에는 게임기 사용을 제한하고, 그 이후에도 게임 시간 및 내용을 선택하는 데 부모의 제한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거나 초등학교 저학년일 경우 가급적 게임에 노출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아이들은 단순하게 자극이 반복되면서도 쉽게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게임에 빠져들기 쉽다.
게임기 열풍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교육을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나라라는 점에서 그 모순에 놀라게 된다. 교육에 대한 강조가 아이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조금 더 나은 아이로 발달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어, 수학 잘 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 사육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씁쓸해진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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