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
겸손은 늘 중요한 미덕이지만 요즘처럼 마음에 깊게 새겨질 때도 없는 듯하다. 지난 몇 년이 우리에게 겸손의 중요성을 알려주었음에도 요즘 같아서는 다가올 몇 년 동안에도 겸손의 미덕을 계속 그리워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의 뜻을 존중해야만 상대와 자신을 변화시켜 더불어 행복해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아이 키우기에서도 겸손은 중요한 미덕이다. 부모는 자신의 키를 낮추어서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주장과 할 말을 먼저하기보다는 지금 아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생각쯤은 다 안다는 태도로 아이들을 대하고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람으로 대하고 만다.
아이들에게 겸손하라는 말이 아이들의 말이라면 뭐든 따르라는 뜻은 아니다. 겸손한 부모라면 아이 키우기가 만만치 않음을 이미 알고 있을 터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조언도 구하고 책도 보고 나름의 준비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론은 일반론일 뿐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인 우리 아이에게 딱 맞아떨어질 리는 없다.
그래서 아이의 말을 새겨듣고 이해하려 해야 한다. 우리도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도 자신이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있어야 함께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 우리는 시간 앞에도 겸손할 필요가 있다. 모든 변화에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겸손한 부모는 자기 앞에 놓인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어른으로서 우리는 바라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를 늘 느끼고 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무언가 얻기 위해서 현실을 인정하고 타협하며 작은 변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태도가 아이를 대할 때는 사라진다. 아이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며 자신의 좌절된 욕망을 아이가 이뤄내기를 바란다. 아이는 더 이상 그 아이 자신이 되지 못한다. 아직 자라지 못한 부모 자신이 되어 이루지 못한 욕망을 대리로 실현해야 한다.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면 더 이상 부모는 아이를 아이로 보지 않는다. 아이 속에 집어넣은 자신의 욕망만 바라본다. 아이는 부모의 욕망을 실현해 줄 영혼이 없는 로봇이다. 현재 한국 사회가 경험하는 교육문제의 근본에는 이런 부모의 태도가 있다.
아이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였다면 이제 마지막 겸손함을 이야기할 차례이다. 절망에 대한 겸손이다. 아이의 가능성과 미래에 대해 쉽게 포기하고 마음대로 재단하지 말자. 적지 않은 아이들이 부모가 바라보는 시선과 부모가 들이대는 잣대 너머에서 자신을 실현하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간다. 진정 겸손한 부모라면 희망만큼이나 절망에 대해서도 겸손해야 한다.
부모로서 우리가 할 일은 비평하고 점수를 주는 일은 아니다. 아이가 인생 그 자체를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지지하는 일이 겸손한 부모의 할 일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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