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
12월이 되니 아이들을 어떤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좋은지를 묻는 질문을 많이 듣게 된다. 공식적인 교육과정의 첫 단추인 유치원 선택이 고심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답은 간단하다. 좋은 선생님이 있는 유치원이 좋은 유치원이다. 아무리 시설이 번듯해도 교육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일이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아이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힘을 끌어올려줄 수 있는 선생님은 그리 흔하지 않다. 게다가 교육은 사랑과 태도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학적인 방법까지 숙달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서울 강남을 시작으로 영어유치원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영어유치원에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질이 문제이다. 모든 영어유치원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이 유아교육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영어권 국가에서 여행 삼아 또는 소일 삼아 한국에 온, 심하게 말하면 그저 일반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병원에 온 아이의 예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아이는 약간의 우울 증상을 보이며 유치원에 가는 것을 심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아이는 몇 차례의 면담을 통해서야 자신이 가장 괴로웠던 순간을 얘기했다.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해서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하자 선생님이 “No Korean”이라고 말한 것이다. 당연히 선생님은 한국어를 모른다. 그래서 한국어를 쓰지 말라고 한 것인데, 아이는 자신이 무시받고 있으며,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 선생님이 아동의 심리와 발달에 대해 작은 지식만 있었더라도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치원에 다닐 나이의 아이들은 활발한 언어활동을 통해 주변을 파악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발달 과제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말을 빼앗는 것은 마치 새의 날개를 부러뜨리는 것과도 같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영어유치원들은 유아교육을 전공한 교사를 영어교사와 함께 배치하기도 한다. 영어유치원을 꼭 보낼 생각이라면 적어도 이 부분은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된 유치원일수록 아이들에게 지식 습득을 과도하게 요구하지 않는다.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인성교육, 감성교육, 놀이를 통해서 뇌의 적절한 발달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뇌의 적절한 발달이 있어야 향후 건강한 아이, 유능한 성인으로 자랄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남산 타워에 오르기 전에 인천 앞바다를 보려고 해서야 되겠는가.
유치원을 선택하기 전에 아이들과 교사가 노는 모습을 직접 관찰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잘 노는 교사, 놀면서 아이들의 눈빛을 관찰하여 방향을 이끌 줄 아는 교사가 한 분이라도 있으면 그 유치원은 좋은 유치원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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