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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자라는 게 두려운 아이들

등록 2008-01-07 17:59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

아이들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이의 마음속에는 아이여서 할 수 없는 일이 많기에 어서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고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은 가고 나이는 먹는 것이기에 두려움보다는 기대를 갖는 편이 아이를 위해 유리하다. 두려움 속에서 뒷걸음질치다 보면 미래를 준비할 수도 없고 다가오는 현재를 즐길 수도 없다.

두려움이 크지 않다면 아이에게 나이 먹는 것이 나쁠 이유는 없다. 한 살 더 먹으면 키도 커지고, 힘도 세지며, 아는 것도 많아진다. 예전에는 못하던 작은 손놀림도 가능해져 복잡한 물건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전에 못하던 멋진 말들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처럼 나이 먹는 것은 아이들에게 좋은 일이기에 새해를 맞으면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한 살 더 먹으니 기분이 어떠니?”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고 던지는 질문답게 대개는 좋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곤 했다. 가끔 속이 찬 아이를 만나면 좀더 노력해야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이 질문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점점 많은 아이들이 나이 드는 것을 기쁨이 아닌 부담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더 어려운 공부를, 더 많은 시간을 들여 해야 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 아이들에게 나이 먹는 것이 좋지 않냐고 물으면 대개 “하나도 안 좋아요. 더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한 살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아이도 쉽게 본다.

그래도 희망을 갖고 “공부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힘이 생겨서 더 하는 거야. 그래서 너가 더 똑똑해지잖아.”라고 말했다가는 아이의 이어지는 항변에 가슴이 답답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면 뭐해요. 그럼 더 많이 공부하겠죠.”

부모의 세뇌교육으로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부를 안 하면 ‘거지나 노숙자가 되고’, 좋아하는 어떤 것도 가질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니 공부를 안 할 수는 없는데 정작 하는 것은 괴롭다. 그러니 아이 처지에서는 공부 부담이 없는 유아기로 퇴행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이런 아이들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아 좋은 성적을 올리는 아이도 있고, 자신의 능력이 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즐겁게 지내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조사가 된 바는 없지만, 이런 아이들은 지금 우리 아이들의 다수가 아니다.


만약 의심이 된다면 자신의 아이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한 살 더 먹어서 즐거우냐고. 그리고 우리 어른들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렇게 어른 되기를 두려워하도록 아이를 키우는 것이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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