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
요즘 아이들에게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상상력이 정말 부족한 사람은 다름 아닌 어른들이다. 다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학습지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한다. 공부를 좀 잘한다 싶으면 특목고에 보내려는 꿈을 갖는다.
아이들은 모두 다른 개성을 갖고 태어났지만, 비슷하게 키워지면서 비슷한 흥미와 장래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이처럼 비슷하게 만들어진 아이들의 운명이란 일개 소모품이 되기가 쉽다. 최근 들어 생물학적 다양성이라는 개념이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그동안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다양한 생물종에서 인류에게 필요한 신물질을 발견할 수 있기에 생물학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국가적인 부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사회가 어떨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며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인류의 노력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의 눈높이에서 키워진 아이들만으로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주도할 수 없다. 보다 큰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흐름은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아이들에게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다. 과거나 현재, 미래에도 이어질 수많은 가치 있는 직업들이 있다. 이러한 직업은 학교에서 수학이나 영어를 배우고 각종 암기과목을 섭렵해서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 열 명 중 두 명 정도나 지금의 학교에서 배우는 학습 내용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머지는 생활 속에서, 스스로 부딪히면서 배우는 영역이다. 이런 직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점수가 아닌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얼마 전 세계소믈리에대회 우승자의 책을 읽어봤다. 책을 읽으며 그가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지금의 성공을 거두었을까 하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불과 27살에 세계 최고가 된 그는 7살부터 주방에서 엄마를 도와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시장에 데리고 다니며 지중해에서 자라는 생선과 대서양에서 자라는 생선의 차이를 이야기해줬다. 초등학교를 갓 들어갔을 무렵 그는 이미 갖가지 향신료와 허브를 맛보고 냄새를 기억했다.
지금 우리의 옆에 있는 아이들이 불과 이십대면 자신이 흥미를 가진 분야에서 위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아이일지 모른다. 그 분야는 영·수로 대표되는 공부나, 음·미·체로 대표되는 예체능이 전부가 아니다. 목공 기술도 될 수 있고 요리도 될 수 있다. 작은 기업체에서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실현을 할 수도 있다. 이런 다양한 상상이 부모에게 가능할 때 아이들 역시 그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부모들의 얄팍한 상상력이 아이들의 생명력의 불을 꺼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 확인해야 한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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