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여론] 실업계 여고생이 말하는 “우리사회 바꾸어야할 문제”
“얼굴이 예쁘면 뭐든 잘하는 건가요?”
“도대체 이력서에 키와 몸무게는 왜 적는 거예요?”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보면서 참 창피했어요.”
"학벌사회… 실업계나오면 우리도 비정규직 노동자 되는거 아닌가요?"
“노숙자나 노인들에 대한 복지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업계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사회의 문제점과 요구사항을 들어보았다.
좋은게 좋은거라지만, 외모지상주의 너무 심하다
정민경(고2)양은 최근 인터넷 ‘얼짱’이 성매매 포주를 했다는 시사프로그램을 보고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퍼져있는 외모지상주의의 심각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정보산업고교에 다니는 정 양은 평소 학교에서도 선배들이 선생님들로부터 외모가 취업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3학년 여름방학 때 쌍꺼풀수술은 기본이고 코까지 고친다고 들었어요. 사실 쌍꺼풀 없는 눈도 매력 있는데, 연예인들도 다 수술해서 예뻐지니깐 미의 기준이 그렇게 정해진 것 같아요.”
그는 ‘얼짱 신드롬’이 친구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얼굴 예쁘고, 몸매 좋고 옷 잘 입으면 아무래도 더 호감이 간다는 것. “처음에서 외모에서 생기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저도 치열이 고르지 않아서 신경 쓰이고, 말할 때 위축될 때도 있어요.”
한편 외모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취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더욱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취업을 준비 중인 허수지(고3)양은 외모로 평가하는 사회가 참 싫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옛 속담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능력보다 외모가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이력서에 키와 몸무게는 왜 적는 거예요? 요즘에 학교에서 취업면접 연습하는데, 선생님들이 ‘못 생겼으면 말이라고 잘해라’라고 하셔요. 똑똑하면 뽑아준다고.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요. 아무리 똑똑하고 말 잘해도, 결국 얼굴 예쁘고 날씬하면 저보다 성적이 낮은데도 기회가 주어지더라고요.”
학벌사회의 폐해, 나도 비정규직 노동자?
그러나 학생들이 가장 크게 공감하는 부분은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학벌’중시 풍조였다. 예일대 박사학위를 위조한 신정아 동국대 교수이후 줄기차게 터져 나온 사회 유명 인사들의 학력위조사건은 청소년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거짓말을 해서까지 학교를 높여야 하나’, ‘중졸, 고졸이어도 능력만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비판하는 마음 한편에는 ‘그래서 역시 학벌이 중요하다’는 현실파악을 뼈저리게 하게 됐다.
이처럼 특히 실업계고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학졸업자들도 취업이 안되는 요즘시대에 고졸, 그것도 실업계학교를 나와서 과연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불안해하기도 했다.
허수지(고3)양은 “알바 할때도 이력서에 학교 이름보고 ‘한번 생각해보자’라는 식으로 말한다. 내가 인문계학생이었으면 그랬겠는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학연, 지연 ‘빽’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든 것 같다”며 “고졸이냐, 대졸이냐에 따라 초봉이 달라지고, 몇 년을 일해도 정규직이 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잖아요”라고 씁쓸해했다.
이예림(고2)양은 “학벌로 포장하려는 것은 남의 눈을 의식해서다”며 “우리사회에 이미 학력에 따라 사람을 다른 기준으로 보는 편견이 깔려있다. 진학을 준비하고 있지만, 실업자가 넘쳐나는 요즘, 홈에버 노동자 해고뉴스를 보면서 나도 비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지하철에 노숙자 너무 많아요” 부익부 빈익빈 심화
한편 갈수록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부익부 빈익빈’현상은 학생들이 보기에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점으로 꼽혔다.
고교 1학년 한 학생은 지하철역에 노숙자가 너무 많은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가 너무 부족함을 느낀다. 특히 최근에는 ‘노숙소녀’라고 불리는 청소년들도 늘고 있어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부모님이 자주 싸우고, 우리들 앞에서도 막말하는 등 가정불화가 가출이 원인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떠돌다 갈 곳 없으며 노숙자처럼 생활하는 거죠.”
방과 후 영등포역 근처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영선(고3)양은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노숙자를 발견한다. 지저분하고 냄새도 나고 외관상 안 좋지만, 그보단 측은한 마음이 앞선다. 가끔 공무원들이 노숙자를 툭툭 치면서 내쫓는 모습을 볼 때면 가서 말리고 싶지만 나서기 쉽지 않다. 특히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노숙생활을 하는 걸 보면 정말 이해가 안된다.
“정말 돈이 없으면 못사는 세상인 것 같아요. 노숙자 중에는 능력이 없거나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게 가장 큰 원이라고 생각해요. 정부가 쓸데없는 정책에 예산 낭비하지 말고, 복지시설을 확충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생계지원비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 줘야죠.”
이밖에 학생들은 실업계 학생에 대한 차별, 문화시설 부족, 열악한 학교 시설 등에 불만을 나타냈다.
윤수진(고1, 가명)양은 실업계 학생라는 이유로 학교에서의 인권침해가 더욱 심각하다고 말한다. 특히 교사들의 감정실린 체벌과 폭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윤 양은 “숙제 안 해오거나 문제풀이 틀렸다고 발로차고, 손에 피멍들 정도로 때려요”라며 “부모님한테도 이렇게 안 맞아봤는데, 너무 심각해요”라고 울분을 토했다. 또 용의복장 및 두발규제는 물론 껌만 씹고 있어도 담배 피웠다고 의심할 정도로 학생들에게 대한 인격존중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신샛별(고1)양은 “영화비도 너무 비싸고, 연극도 보려면 대학로까지 나가야한다”며 “지역사회에 저렴한 청소년문화시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김지훈 기자 news-1318virus@hanmail.net
ⓒ2007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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