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얼마 전 교내 합창대회를 치렀다. 준비 기간이 짧은 탓에 연습도 별로 하지 못하고 출전했는데 뜻밖에 3학년 우수상을 받았다. 연습 때는 그렇게 하기 싫어서 짜증을 내던 녀석들이 우수상으로 호명되자 마치 1등상이나 받은 듯 날뛰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열심히 연습한 반에 미안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찬스에 강한 것이 진정 실력이라며 능청을 떨었다.
사실 연습 과정은 서로가 피곤했다. 음악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 그저 음만 간신히 익힌 채로 모든 뒷마무리가 담임 몫으로 떨어졌는데, 나는 노래라면 완전 숙맥이어서 연습 지도 자체가 불가했다. 노래 가락도 모르는데 소프라노니, 앨토니 하는 화음을 어찌 알겠는가. 지휘자도 억지로 끌려나온 터라 앞에서 손만 휘젓고 있지 아이들을 이끌기엔 애당초 무리였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연습에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한다해도 소프라노와 앨토로 나뉘어 ‘너희들이나 잘 하라’며 싸우기 바빴다. 즐겁자고 부르는 게 노래인데 이러다가는 학급 분위기만 깨질 것 같아서 가사 외고, 서너 차례 목소리를 조율하는 것으로 연습을 마무리했다. 그러다가 막상 대회 당일이 되니, 이 웬수들이 ‘다른 반은 노래 중간에 율동도 넣고 이벤트도 하는데 우리 반은 뭐냐’며, 노래할 때(우리반 노래는 몽금포타령이었다) 북이나 장고를 곁들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나한테 원성을 퍼부었다.
어쨌거나 사정이 이러했는데도 우수상이라니, 속으로는 아이들보다 내가 더 반갑고 고마웠다. 행사를 치르면서 서로 틈새가 벌어지고 학급 분위기에 금이 간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샘이 심사위원한테 뇌물 쓴 거 아녜요?” 대회장을 빠져나가면서 몇몇 녀석들이 농을 건네기도 했지만, 표정은 모두 활짝 피어 있었다. 녀석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샘, 우리 기념으로 삼겹살 파티해요.”
그런 거였다. 겉으로는 그저 짜증이나 내고 무관심한 듯해도 속으로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였다. 아이들에겐 누구 할 것 없이 칭찬받고 싶은 ‘착한 욕심’이 숨어 있는 거였다. 그것을 슬쩍 슬쩍 건들고 자극하고 격려하여 ‘자발심’에 불을 붙이는 게 어른들의 몫일 터였다.
그 다다음날 저희들이 모둠별로 준비하여 교실에서 판을 벌인 삼겹살 파티는 요란하고 ‘짐승’스러웠지만(무진장 먹어댔다) 분위기는 흥겹고 질펀했다. 냄새를 맡고 오다가다 들르는 선생님들(평소에는 숨어서 그렇게 욕을 하던)에게 서로 달려들어 상추쌈을 싸서 먹여주는 풍경도 밉지 않았다. 책상 정리하고 바닥에 기름 자국 지우고, 창문 열어 냄새 빼고, 빌려온 프라이팬 정리하고…, 만만치 않은 뒷마무리에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마음만큼은 모처럼 유쾌상쾌하였다.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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