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미국 대통령 선거. 미국의 정책은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기후위기 문제와 관련해 이번 선거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그날 이후’ 전지구적 기후위기도 갈림길에 선다.
‘더 데이 애프터’(The Day After)는 1983년 11월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이 제작한 텔레비전 영화다.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 이후 미 중부에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대재앙으로 바뀌었는지 극명하게 묘사해 전세계에 충격을 줬다.
3일(현지시각) 혼돈의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요즘 외신들은 미국 대선 다음날인 11월4일을 ‘더 데이 애프터’로 부른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정책 방향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지만, 특히 기후위기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번 선거가 중요한 변곡점으로 꼽힌다.
미국은 2015년 오바마 행정부 당시 유엔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에 참여했지만,
2017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했다. 파리협약은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섭씨 2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는 각 나라의 약속이다. 중국에 이은 세계 2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이 탈퇴한다는 것은 이 협약 자체를 무력화하는 결정이라 파장이 컸다. 미국은 지난해 11월5일 공식 탈퇴 절차에 들어갔다. 1년 유예기간을 뒀기 때문에 대선 바로 다음날인 11월4일이 파리협약 공식 탈퇴일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미국은 계속 기후위기 문제를 부정하고 나홀로 석탄·석유 경제 가속화의 길로 달려나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등이 이미 선언한 ‘2050년 탄소 중립’(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상쇄돼 순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의 정반대 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위기를 꾸준히 부정하며 오바마 행정부때 시행된 많은 기후 정책을 뒤집었다. 트럼프도 해양쓰레기 제거, 국립공원 및 공공용지 추가 지원, 청정 물 인프라에 380억달러를 투입하는 법안을 지지하기는 했다. 하지만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에 의존한 발전소와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철폐하고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을 고려하도록 한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취소하는 등 기존 환경규제를 철폐하는데 주력했다. 또 국가환경정책법을 폐지해 환경영향평가기간을 2년으로 제한했다. 이는 고속도로와 송유관 파이프라인, 발전소 건설 비용 등을 절감하는 방안이다.
반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집권하게 되면 첫날 파리협약 재가입을 선언하겠다”고 공언했다. 바이든은 이상기후로 인한 미 서부지역 산불에 대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가리켜
“기후 방화범”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0월29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페어그라운드에서 연설하고 있다. 플로리다주/AP 연합뉴스
바이든의 환경 정책은 ‘2050년 탄소 중립’을 장기 목표로 한다. 미 민주당과 같은 목표다. 전력 분야에서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줄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태양광 패널 5억개, 풍력 발전기 6만개 설치한다. 2035년까지 모든 신형 차는 전기차만 생산하도록 했다. 대형트럭 온실가스 퇴출 기한은 2040년으로 제안했다. 이처럼 녹색 인프라를 늘리고 녹색 일자리 100만개를 만드는 등 구조적 전환을 끌어내기 위해 4년 동안 2조달러(2267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에너지 고효율 주거단지 150만개 건설, 기존 빌딩과 주거시설 600만개 그린리모델링, 주택 소유자에 친환경 가구 도입 지원, 친환경 차량 변경 인센티브 등도 약속했다.
지난달 28일 영국 비영리 단체인 ‘에너지와 기후 정보 모임‘(Energy and Climate Intelligence Unit)이 아시아지역 언론을 대상으로 한 ‘미 대선 결과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에 미치는 영향’ 온라인 브리핑이 있었다. 제리 브라운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바이든에게 기후위기는 일자리로 연결된다. 그가 2조달러를 쓴다면 많은 기업이 어떤 형태로든 돈을 벌 것”이라며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돈이 된다. 미국에서 이런 변화를 만든다면 밝은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브리핑에서 레이첼 카이트 전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아프리카개발은행과 세계은행 협력 하에 아프리카에 신재생에너지 확충을 위한 미국 기업들의 지원과 금융 상품 제공 등의 계획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모두 미국 기업투자로 전환하면서 재생에너지 투자가 중단됐다”고 말했다.
한겨레와 인터뷰 중인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달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미국 대통령은 다른 모든 리더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을 근거로 기후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은 매우 부유한 나라이기 때문에 특별한 책임이 있다. 지금까지 배출된 전세계 온실가스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고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바이든을 지지했다.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두번째 지구는 없다’ 책을 낸
타일러 라쉬도 지난 8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의 결정은 국제적으로 미칠 파장이 크고 나쁜 트렌드를 만들 수 있으니 주목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새 미국 대통령의 등장은 한국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활동가는 3일 “국제적 기후변화 대응에서 미국의 역할이 중대했는데도 파리협약 탈퇴, 녹색기후기금 공여금 미납 등 트럼프 대통령이 찬물을 끼얹어왔다. 2021년 파리협정이 본격 이행되는 해를 맞아 만약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제적 협력과 공조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또 “바이든의 100% 청정 에너지 공약이나 2050년 탄소 중립 달성 등의 공약을 고려하면 미국 내 변화가 클 것이고 이는 세계 시장에도 변화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바이든의 전기차 생산 확대 공약이 배터리를 만드는 한국 대기업에 호재가 될 것으로 분석한다.
2050년 탄소제로를 선언하며 그린뉴딜 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가 상대할 미국 새 대통령은 누가 될 것인가.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