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한겨레티브이 스튜디오에서 만난 타일러 라쉬는 “내 꿈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강연에서 한 청년으로부터 질문을 받은 뒤 평소 생각하던 고민을 처음으로 말했다. 그는 이 말을 한 뒤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더 적극적으로 이 꿈을 말하게 됐다고 했다. 한겨레티브이 영상 갈무리
타일러 라쉬는 2018년 5월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연 ’기후행동’ 행사에서 사회를 봤다. 서울환경운동연합 페이스북 영상 갈무리
“계절의 냄새를 모르는 삶은 너무 슬프다” 기자▶ 국제정치학 전공이다. 타일러▶ 그렇다. 기자▶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집 베란다에 텃밭을 꾸미고 채소를 직접 키우고 요거트와 치즈는 직접 만들어 먹고 천연 고체비누만 쓴다. 스트레스 해소는 한강변 산책으로 푼다고. 타일러▶ 여러 시도를 해 보고 있다. 기자▶ 2018년 환경단체가 진행하는 기후위기 집회때 사회를 보고, 2016년부터 세계자연기금 홍보대사이다. 타일러▶ 맞다. 기자▶ 책 도입 부분을 읽다 ‘심쿵’했다. “계절의 냄새가 있는데 그걸 모르는 삶은 너무 슬픈 것 같다”라는 문장이다. 어떤 느낌인지 알 듯 모를 분들이 많을 텐데. 타일러▶ 아마 시골출신이거나 밖으로 놀러다닌 유년시절을 보냈다면 그런 냄새를 아는 분들이 많을 거 같다. 나는 정말 시골스러운 곳(미국 동부 뉴잉글랜드주 버몬트 출신)에서 왔다. 내게 그런 냄새는 너무 당연한건데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그게 없으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그리워지더라. 내가 다녔던 서울대 캠퍼스에서 (친구에게) “겨울냄새 난다”고 하니까 뭔소리냐고 하더라. 자연의 흐름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기자▶ 숲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이 본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한국의 대도시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숲을 경험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본인의 어린 시절과 비교했을 때 어떤 아쉬움이 있을 것이라고 보나. 타일러▶ 한국 도시에서 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경험을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살던 버몬트 지역은 면적은 충청도 크기 정도인데 75% 가량이 산림이다. 마치 강원도같은 곳이다. 생물학 수업 시간에 항상 나무 그림 그리고 새로 발견한 것들을 적는다. 영어 수업에서는 그것과 관련한 글을 쓴다. 자연이 교육의 교재로 많이 사용된다. 한국도 도시 하천에서 왜가리나 백로도 볼 수 있고 도시생태계를 조금씩 되살리려는 노력이 보인다. 이런 노력들이 계속돼 환경, 자연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타일러 라쉬는 집 베란다에서 채소와 꽃을 키운다. 타일러씨 에이전트 제공
“미래를 생각하면 기후부터 고민해야” 기자▶ 책에서 “내 꿈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꿈이라고까지 표현한 이유가 있나. (이 발언은 어느 강연에서 한 청년의 질문에 답하던 중 나왔다) 타일러▶ 그 말을 하기 전까지 꿈, 환경이라는 주제를 많이 생각했다. 당시 꿈과 진로, 미래에 대한 강연을 많이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꿈이나 미래를 말할 때 어떤 틀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런 식이다. 이런 꿈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런 질문을 받으니까 그동안 고민하고 있었던 게 훅 나왔다. (미래를 생각하면) 집을 어디에 구할까, 기후가 어떻게 바뀔지 예상하는 표를 봐야지만 준비하는 단계가 됐는데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게 제 꿈이네요” 이렇게 말한거다. 기후위기 문제는 이미 시작됐고, 내가 상상하고 싶은 모든 건 이걸로 결정된다. (기후위기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자▶ 책에서 “전문가도 아닌 내가 환경을 이야기하는 건 누구라도 당장 말을 꺼내고 너나없이 당장 행동해야 할 만큼 지구의 상황이 절박해서”라고 했다. 무엇이 얼마나 절박한건가. 타일러▶ 이제 말을 안 할 수 없는 단계가 됐다. 사람들이 “한국에서 살고 싶으세요?”라고 질문하면 답을 하기 위해 미래에 어느 지역이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덜 보게 될까 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공유를 해야 한다. 몇 년에 걸쳐 그레타 툰베리(스웨덴의 17살 환경운동가)같은 용감한 친구들이 많이 나오니까 나같은 사람이 이 문제를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4~6년 전에는 ‘뜬금없다’는 반응이었다. 이제 분위기가 바뀌니까 이 문제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됐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기후위기 주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 기자▶ 기후위기 문제를 쉽게 설명했다. “200만원 버는데 350만원씩 쓰는 수현이라는 친구가 있다. 나는 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라고 했다. 지구가 처리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자원을 쓰고 있는 걸 이렇게 비유했다. 이런 과다지출의 삶이 계속되면 지구가 버틸 수 없다고 보는 근거가 있나. 타일러▶ 수학이나 경제나 우리 인생을 생각할 때나 단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보다 내일이 좋아지는 건 (위를 가리키며) 올라가야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올라가려면 무엇인가를 가지고 올라가야 한다. 자연 자원은 지구 안에 있고 지구가 일년에 만들어줄 수 있는 깨끗한 물과 공기, 산림, 사용할 목재는 제한돼있다. 그걸 넘어서 계속 소비하면 다음해 것을 앞당겨 쓸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올라갈 수 없다. 수현이는 돈을 다 쓰고 은행이나 친구에게 가서 돈을 빌릴 수 있다. 신용이 나빠져도 당분간은 또다른 은행이나 또다른 친구에게 돈을 빌릴 수 있다. 그러나 자연자원을 빌려줄 지구는 하나뿐이다. 그걸 완전히 망가뜨리면 돌이킬 수 없다. 우리는 항상 선(line)으로 생각했지 순환적으로 생각을 못 했다. 사고, 경제, 소비패턴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은퇴할 때 걱정없이 살 수 있다. 기자▶ 기술 개발로 극복할 수는 없을까. 타일러▶ 대기권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뽑는 기술을 개발하면 될까. 그러나 그게 보장할 수는 없다. 사실 태양열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가 이미 오래됐는데 사용하고 있지 않다. 기술이 나왔다고 끝나지 않는다.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계속 (상처에) 밴드 붙이고 연고를 발라 넘어갈 수는 없다.
타일러 라쉬의 책은 환경을 고려해 친환경 인증을 받은 종이를 사용하고 콩기름으로 인쇄했다. 집 베란다에서 채소에 물을 주는 모습. 타일러씨 에이전트 제공
“미국 보험사, 재해 보험 보장 범위 줄여” 기자▶ 대학교 다닐 때 기후위기 수업이 과학 기본교양 과목이었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환경 교육 강화 움직임이 있다. 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있나. 타일러▶ 생물학, 지질학, 지구학에 중점을 두고 공부시키면 도움이 된다. 생태계와 지구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올라간다. 그러나 이것을 넘어서야 한다. 학교에서만 하면 안된다. 기업이 생각하는 소비자는 학생이 아니다. 그들이 컸을 때는 이미 위기가 다가와있다. 이미 태평양 섬나라가 물에 잠기기 시작하고, 태풍의 영향권이 확장되면서 홍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재해) 보험을 제공해지는 지역이 줄었다.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집을 마련해도 그 집이 있는 지역은 보험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재해로 인한 피해를 봐도 본인 자산으로 해결해야 한다. 공익성있는 평생 교육이 많이 늘어야 한다. 기자▶ 한국 정부는 성인 대상 교육을 늘리겠다는 계획도 있다. 책에서 시민이 투표를 통해 권력을 심판하고 소비자가 반환경적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또 기업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두의 변화를 요구했는데. 타일러▶ 소비자 겸 시민이 가장 많이 힘을 갖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권력을 매일매일 행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음식물을 살 때 소비자는 가격과 영양 정보를 보고 판단한다. 이때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보가 더 있어야 한다. 두유 팩이 불법벌목된 산림의 나무들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인증이 있는지, 우유는 어떻게 운영되는 목장에서 나왔는지 등의 정보가 필요하다. 아직은 탄소배출량이 얼마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제품이 만들어졌는지 정보가 확실하지 않다. 소비자의 눈을 가리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거다.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기업과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정보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고, (문제가 있으면) 직접 댓글을 남기면 좋아질 수 있다. 행동하는 시민들이 많아지면 변할 거 같다.
타일러 라쉬는 요거트와 치즈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타일러씨 에이전트 제공
“일회용품이 안전하다는 것은 확실한 것일까” 기자▶ 코로나19로 발생된 문제 중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고민도 있다. 이른바 방역과 환경의 딜레마 상황이다. 어떤 고민을 했나. 타일러▶ 안타까운 상황이다. 원래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 환경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커피를 뜨끈하게 마시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코로나19로 텀블러를 들고가도 종이컵에 준다. 우리가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니 좋은 대안도 없고 자주 기댔던 과거로 돌아가버렸다. 일회용품을 불가피하게 써야 한다는 주장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걸로 끝나면 안된다. 일회용품이 건강에 좋다고 (안전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기자▶ 기후변화로 폭우가 오고 피해 상황이 늘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해수면이 상승하면 해안가 도시만 침수되는 게 아니라 도시 전체 지하시설이 침수되고 지하수가 오염돼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래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식수가 없어 생수 사재기가 발생하는 전쟁같은 상황을 상상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바다에 제방을 쌓자는 논의가 이뤄지는 지역도 있고 해안 지역 부동산 가격도 오르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외국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나. 타일러▶ 시리아 난민 문제가 있다. 내전 이후 난민이 생기는데 이들을 누가 받아들일 것인지 정치적 싸움과 혐오주의가 문제가 된다. 난민 규모가 커진 건 역대급 가뭄이 있어서다. 기후위기가 없어도 난민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규모는 기후위기를 빼놓고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 우리도 이미 겪고 있다. 태풍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요즘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가 원래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강우량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한다. 심각한 건 온도가 높은 바다 표면층이 두꺼워지고 있다. 태풍이 돌면서 바다 아래쪽 물을 끌어올리는데 이 물이 따뜻하기 때문에 수증기가 더 많이 생긴다. 그래서 계속 비가 내리고 태풍이 유지된다. 점점 비가 많이 내릴 수 있는데 이건 지역마다 다르다
타일러 라쉬는 한강 주변 산책을 즐기지만, 대기오염으로 강 맞은 편 도시를 볼 수 없는 날 환경문제를 더욱 실감했다고 했다. 타일러씨 에이전트 제공
타일러 라쉬는 “미국 보험사들은 이미 재해 보험이 보장하는 지역을 줄였다. 사람들이 (돈을 벌어) 집을 마련해도 그 집이 있는 지역이 보험 보장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재해로 인한 피해를 본인 자산으로 해결해야 한다. 미국 보스턴에서는 바다에 제방을 놓는 논의를 하고 해안가 지역 부동산 가격은 이미 오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나쁜 트렌드’ 우려…올해 11월 미국 대선 중요” 기자▶ 한국 언론은 기후위기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정치, 사회 문제보다 기후위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적다. 타일러▶ 몇 년 전 영국 비비시(BBC)에서 기사를 썼다. 남중국해에서 중국 어선들이 필리핀 산호초를 파괴시키면서까지 멸종위기종인 큰 조개를 중국에서 팔았다는 내용인데 그 기사의 핵심은 환경 문제였다. 그런데 이를 번역한 한국 언론 기사를 보면 환경 부분이 빠져있었다. 남중국해의 패권 싸움과 환경 문제가 어떻게 이어져있는지 알 수 없어졌다. 이 책도 출판사에서 내기까지 재생지를 사용하고 콩기름으로 인쇄하고 싶었는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또 환경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안 팔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모를 수는 있다. 그러나 이건 관심을 가질 기회가 적었던 거다. 이제 그레타 툰베리도 있고 비건화장품도 나오면서 동물권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이제는 이런 관심을 충족시켜야 하는 단계가 됐다. 기자▶ 2018년 트위터에 “화력발전소 그만 짓고 그만돌리고 걱정없이 숨 쉴 수 있는 한국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쓰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댓글이 달렸다. 타일러▶ 그때 당시에는 기후위기 문제를 언론에서 많이 다루지 않았다. (그 말을 했다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은 좋진 않지만 답답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화력발전소 하지 말자 하니까 원자력하라는 거냐는 말로 ‘점프’하더라. ‘왜 재생에너지나 태양열, 풍력을 뛰어넘어 원전을 생각할까, 재생에너지는 아예 생각하고 있지 않구나’ 싶었다. 그때보다는 많이 바뀌었다. 기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사용해본 적 없고 재생에너지의 범용화를 상상해보지 못해서 같다. 육식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타일러▶ 지구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을 가장 많이 파괴하는 산업이 축산업, 화석에너지, 교통이다. 특히 축산업은 동물들이 먹을 식량을 땅을 이용해 키워 고기를 생산하는데 비효율적이다. 동물을 먹지 말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고 그걸 강요할 수는 없다. 개인이 한다면 응원하겠지만 다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그나마 나은 선택이 무엇일지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단 그나마 생태발자국 환경파괴를 좀 덜 입히는 고기를 먹자고 하는 건 어떨까. 소 대신 돼지, 돼지 대신 닭을 먹는 식으로. 조금씩 목표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타일러씨는 서류나 자료로 쓴 종이의 뒷면을 활용한다. 타일러씨 에이전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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