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의 맥클레란 공원을 방문해 현지 당국자들로부터 산불 피해에 관한 브리핑을 듣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서부에서 한 달 이상 동시다발적으로 지속되며 큰 피해를 낳고 있는 대형 산불이 미 대선(11월3일)의 쟁점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14일(현지시각) 이번 산불과 기후변화에 대해 시각차를 드러내며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바이든은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한 연설에서 트럼프를 “기후 방화범”이라고 부르며 그의 기후변화 무시 태도와 자연재해 대처 실패를 공격했다. 바이든은 “우리가 기후 방화범이 4년 더 백악관에 있도록 한다면 불타는 미국을 더 보게 된다 해도 놀랄 일이겠냐”며 “우리는 과학을 존중하고 기후변화의 피해가 이미 여기 있다고 이해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대통령이 되면 기후변화 위협을 공격적으로 다루겠다면서, 차량 연료효율 기준 강화와 전기차 사용 촉진 등을 약속했다. 바이든은 기후변화 대응에 2조 달러를 투입하고,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협약에도 복귀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상태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14일(현지시각) 주거지인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서부 산불과 기후변화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윌밍턴/AP 연합뉴스
이번 산불에 말을 아껴온 트럼프는 이날 피해 지역인 캘리포니아주를 방문했다. 그는 이번 산불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일축하고, 산림 관리의 문제로 돌렸다.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나는 이게 관리 상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외국 지도자와 대화했는데 그 나라에는 캘리포니아보다 더 폭발적인 나무들이 있지만 산림을 관리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쓰러진 나무와 떨어진 나뭇잎을 잘 청소하지 않아서 산불이 커졌다는 얘기로, 주 정부를 탓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산불이 집중된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등 3개 주는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손을 들어준 민주당 텃밭이다. 주지사들도 모두 민주당이다. 트럼프는 이날 현지 당국자들과의 대화에서 “날씨가 시원해지기 시작할 테니 지켜보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이같은 태도는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대형 산불의 주요 원인이라는 전문가들의 시각과 배치되는 것이다. 트럼프는 화석연료 산업 장려를 공약한 뒤 취임해 자동차 연비 기준 등 환경 규제를 완화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자는 파리기후협약에서도 탈퇴했다. 그는 기후변화를 “거짓말”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기후변화 문제는 오는 29일 첫 대선 후보 토론에서도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아이다호주 등 서부 10여개 주에서는 8월 초부터 약 100건의 산불이 발생해, 한국 면적의 5분의 1을 넘는 500만 에이커(약 2만234㎢)를 태웠다. 수십만명이 대피했고 최소 36명이 숨졌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사는 한 교민은 “하늘이 잿가루로 뒤덮여 창문을 열 수가 없다”고 말했다. 3만명 이상의 소방관이 산불 진압에 투입됐다고 전국합동화재센터가 밝혔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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