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공개 회동을 마치고 방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아직 사면이 결정됐거나, 대통령에 건의한 것도 아닌데 우리 당이 먼저 논란에 뛰어들 필요가 있나. 민주당도 내부 정리가 안 된 상황으로 보이는데, 그게 먼저 아닌가. 이낙연 대표가 사면에 진정성이 있다면 얼마 전 김종인 위원장을 만났을 때 얘길 하지 않았겠나. 우리는 오늘도 입장 낼 계획이 없다.”(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 3일 통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국민의힘은 사흘째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하고 있습니다. 비대위 관계자는 3일에도 공식 입장을 낼 계획은 없다고 했는데요. 지도부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구보다 국민의힘에서 가장 속내가 복잡할 수밖에 없는 건 김종인 위원장으로 보입니다. 그는 지난 1일 기자들의 질문에 평소와 달리 “지금까지 (사면 건의)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 지난번(12월30일)에 (이 대표와) 만났을 때도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보름 전인 지난달 15일
두 전직 대통령 과오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만큼, 여권에서 먼저 들고나온 사면론을 적극적으로 반기기는 쉽지 않은 입장이 된 것인데요.
당내 반발에도 대국민 사과 등을 강행하며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꾀하는 상황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사면을 찬성하고 나서면 자칫 중도층 포용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 쪽은 대국민 사과가 사면을 염두에 둔 전략적 행보였다는 시각을 경계하며 상황을 주시하는 분위기입니다.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이후 입장을 밝히더라도, 원론적인 입장만 언급하고 상황을 좀 더 지켜보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습니다.
‘지도부의 신중론’에는 정치적 의도를 파악하기도 전에 섣불리 여당발 ‘사면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면론을 공개 제기한 이낙연 대표 등의 정치적 의도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국민의힘에선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빌미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 여권 정치인 사면에 나서려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두 전직 대통령 사면 언급이 ‘한명숙 구하기’란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각종 경제 지표 악화, 연내 공급이 물 건너간 코로나 백신 등으로 ‘한명숙 성탄 사면’이 물 건너가자 마음에도 없는 전직 대통령을 끌어들여 ‘3‧1절 특사’로 운을 떼놓은 것이란 얘기”라고 적었습니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은 이번 사면론이 ‘여당의 보수 야권 분열책’이라는 의심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보수 진영에서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전직 대통령 사면 카드가 또다시 내분의 씨앗이 될 수 있어섭니다. ‘친이명박·친박근혜계’에서 석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가운데, 실제로 사면이 가시화하면 친이·친박 지지 세력이 다시 결집하며 당내에서 목소리를 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당 안팎에서 나옵니다.
이는 ‘김종인 체제’에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친이계 좌장 격인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지난 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여당 대표가 전직 대통령의 사면 복권을 대통령께 건의하겠다고 발표하는데 야당 대표라는 분은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사과할 때는 빠른데 참 기가 막힌다”며 “자기들 당이 배출한 두 대통령이 코로나가 득실거리는 감옥에 있는데 ‘정치보복 그만하고 석방하라’ 소리 한번 못 지르는 야당을 새해에는 어떻게 해야겠다. 당을 바로 세워야겠다”며 김 위원장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습니다. 비대위 회의가 열리는 오는 4일, 김 위원장이 회의 뒤 취재진 질의·응답 등을 통해 두 전직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도 관심사입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먼저 꺼낸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은 현재까지 보수 야당 내부의 분열보다는 민주당 의원들과 여권 지지자들의 반발을 더 크게 불러왔습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보수 지지층에서 가장 예민해하는 전직 대통령 사면 카드를 (오는 4월) 재보선 전에 적극적으로 띄워 야당이 집안 싸움하기를 기대한 것으로 보이는데, 막상 던져보니 민주당 내부 갈등이 더 큰 상황”이라고 짚었습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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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당 대표의 새해 첫 메시지 ‘이∙박 사면론’, 부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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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보고도 사면이냐?”…이낙연 사면론 반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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