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낮 대구 달성군 유가읍 박근혜 전 대통령 집 앞에는 우리공화당 등 정당과 단체 5곳이 집회 신고를 내고 저마다 환영 행사를 벌이며 5000여명이 몰려 들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한 뒤 대구 집 앞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소주병이 날아드는 소동이 벌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좋은 이웃으로서 여러분의 성원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다”며 10분 가량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뒤 집으로 들어갔다.
24일 낮 12시15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구시 달성군 유가읍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박 전 대통령은 미리 기다리고 있던 화동에게 꽃다발을 받은 뒤,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메시지 발표를 3분가량 이어갔을 때 경찰저지선 뒤에서 소주병이 날아와 깨졌다. 소주병이 박 전 대통령에게까지는 닿지 않았지만 1분 가량 행사가 중단됐다. 다른 부상자도 없었다.
소주병을 던진 남성 이아무개(47)씨는 특수상해미수 혐의로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대구 달성경찰서는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이씨는 체포 뒤 <한겨레>와 통화에서 “대구에 사는 모든 이들이 인민혁명당 사건의 피해자다. 그 사건으로 대구가 보수화됐고, 저 같은 사람들이 기를 못펴고 살았다. 변변한 직장도 못구하고 결혼도 못하고, 저도 피해자다. 박근혜가 사죄도 하지 않고 대구에 내려온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된다. 소주병을 던져서 박근혜를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1974년 대구지역 혁신계 인사 등이 북한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 인민혁명당을 결성했다며 발표하고 이들을 처벌했다. 특히 1975년에는 관련자 8명에게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고 이튿날 사형이 집행돼 박정희 정권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으로 손꼽힌다. 2000년대 들어 열린 재심에서 관련자 전원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24일 낮 대구 달성군 유가읍 박근혜 전 대통령 집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던 중 소주병이 날아 들었다. 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은 “돌아보면 지난 5년은 저에게 무척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힘들때마다 저의 정치적 고향이자 마음의 고향인 달성으로 돌아갈 날을 생각하면서 견뎠다. 제가 많이 부족하고 많은 실망을 드렸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구 달성군으로 오게 된 배경에 대해 그는 “24년 전 1998년 낯선 이곳에 왔을 때 여러분들은 처음부터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보듬어주셨다. 지지와 격려에 힘입어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연이어 지역구 4선 의원을 거쳐 대통령까지 됐다. 이곳 달성군 흙 속에 저의 발자국도 분명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 가고싶을 만큼 그 시절이 참으로 그립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별다른 정치적 메시지는 내지 않았다. 그는 “제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했지만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앞으로 그것은 또 다른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인재들이 대구의 도약 이루고,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저의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좋은 이웃으로서 여러분의 성원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24일 낮 대구 달성군 유가읍 박근혜 전 대통령 집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은 10분가량 메시지를 발표한 뒤 질문을 받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을 수행해 온 유영하 변호사는 백브리핑에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는 뜻이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저도 오늘 처음 들은 말이라, 확인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언론을 통해 윤 당선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방문하겠다고 한 것을 접했는데, 직접 연락 온 것은 없다. 연락이 오면 박 전 대통령이 (만날 것인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결과에 대해 입장을 낸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선과 관련해 말씀하신 것은 없다”고 답했다.
24일 낮 대구 달성군 유가읍 박근혜 전 대통령 집 앞 네거리에는 환영 화환과 펼침막 등이 걸렸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이날 권영진 대구시장, 강은희 대구교육감, 김문오 대구 달성군수, 이철우 경북도지사, 김관용 전 경북도지사,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을 맞이하러 나왔다. 박 전 대통령 집 앞 네거리는 환영 화환으로 가득찼고, 박 전 대통령의 사진과 ‘진실 정의의 대통령’이라고 적힌 대형 펼침막과 애드벌룬이 걸렸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대구 달성군), 정희용 의원(경북 칠곡·고령·성주)도 환영 펼침막을 걸었다. 가로세로연구소는 무료 커피차를 운영해 시민들에게 음료를 나눠줬다.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우리공화당, 대구행동하는우파시민연합, 천만인무죄석방본부, 명탐정근혜짱, 박대통령귀향환영위원회 등 정당과 단체 5곳이 집회 신고를 내고 저마다 환영 행사를 벌이며 5000여명이 몰려 들었다. 우리공화당 쪽이 가요를 틀고 축제 분위기를 띄우자, 한쪽에서는 ‘여기 노래 부르러 왔나, 소리 좀 낮추라’, ‘여기가 조원진 행사판이냐’며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대구 중구에서 온 권아무개(77)씨는 “늘 박 전 대통령이 보고 싶었다. 오늘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대통령 시절에 아랫사람을 잘못 둬서 벼락을 맞았는데 이제 정권이 바뀌어서 문재인 대통령도 똑같이 고생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 북구에서 온 정아무개(76)씨는 “우리는 정치를 잘 모르지만 박 전 대통령이 너무 안타깝다. 박정희 대통령도 정치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처음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고향에 오셔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지자들은 “대통령 박근혜와 함께 위대한 대한민국을”, “박근혜 대통령 완전 해방! 부디 건강하세요”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기도 했다.
이날 대구 달성군은 인파가 많이 몰릴 것에 대비해 기존 임시주차장에 더해 테크노폴리스초등학교 터에 임시주차장을 추가로 마련하고, 대형버스 임시주차장도 마련했다. 청와대 경호처는 박 전 대통령 집 앞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통제하고, 집회 장소와 인도를 경찰저지선으로 분리했다. 경찰은 20개 중대, 1500명을 동원해 경비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