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제자들과 태산을 지나가다 묘지 옆에서 통곡하는 아낙네를 보았다. 사연을 물었더니 아낙네가 대답했다. “오래전에 시아버지와 남편이 잇따라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 이번엔 제 자식까지 당했습니다.” 공자가 물었다. “그러면 왜 이곳을 떠나지 않으십니까?” 아낙네가 대답했다. “여기엔 포학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 일을 반드시 기억해두어라. 포학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 <예기>에 나오는 일화다. ‘폭정이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는 뜻의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란 성어는 여기서 왔다.
당나라 문인 유종원은 영주라는 오지로 쫓겨나 ‘땅꾼 이야기’(捕蛇者說)란 글을 썼다. 그 지역 독사의 맹독은 사람은 물론 초목까지 말라 죽일 정도였다. 이 맹독이 풍증에 효험이 있어 조정은 독사를 바치면 부역을 빼주었다. 유종원이 만난 땅꾼 장씨의 집안 내력은 기구했다. “제 할아버지도 독사에 물려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그러셨습니다. 저 또한 죽을 고비를 넘긴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유종원은 이곳 관리에게 얘기해서 장씨가 독사 잡는 일 대신 일반 부역을 지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장씨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애원했다. “제가 불쌍해서 그러신다면, 제발 저를 그냥 좀 놔둬 주세요. 마을에 아전들이 들이닥쳐 온갖 소출을 수탈해가며 난동을 부리면 백성들이 놀라 벌벌 떠는 건 물론, 닭과 개조차 안녕하지 못합니다. 매일 죽음 앞에 노출되느니, 한 해에 한두 차례 죽을 고비 넘기며 독사 잡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유종원은 예전에는 ‘가정맹어호’라는 공자의 말을 의심했지만, 장씨를 만난 뒤부터는 믿게 되었다고 썼다.
호랑이와 독사 출몰 지역을 좋아할 사람은 없고, 엄동설한의 비닐하우스 농성이나 물대포 맞는 시위를 즐길 사람도 없다. 죽음으로 호소하는 밀양 주민들은 외면당하고,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참가자 8565명은 하룻밤 새 직위해제 당했다. 땅꾼 장씨 말처럼 닭과 개조차 안녕하기 어려운 시대다. “안녕들 하십니까?”란 말 한마디에 메아리가 천둥 같다. 이 울림의 의미를 모르는 이들은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이상수 철학자 blog.naver.com/xu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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