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술잔이 각지지 않으면 그게 각술잔인가?”(觚不觚, 觚哉! 觚哉!)
공자의 탄식이다. 본디 사각으로 만든 술잔을 ‘각술잔’(觚)이라 불렀는데, 멋대로 둥글게 만들면서도 이를 그대로 각술잔이라 부르는 세태를 아쉬워한 것이다. 제사용 각술잔의 정확한 용도는 전해오지 않는다. 다만 술잔에 정교한 도철(饕餮) 무늬를 조각한 걸 보면, 관리의 탐욕을 경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饕)는 재물을, 철(餮)은 먹을 걸 탐하는 괴물이다. 이들은 재물과 음식을 너무도 탐해 자기 몸뚱이까지 먹어치우고 머리와 아가리만 남은 존재들이다. 출토 유물을 보면, 각이 살아 있는 각술잔에는 도철의 머리와 아가리가 제대로 새겨져 있지만, 둥글게 바뀐 각술잔엔 도철무늬 가 장식으로 변질됐다. 각술잔에서 도철무늬가 뭉개지면서, 본디 무언가 경계하려한 의도도 함께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걸 엿 바꿔 먹어버려 본질을 훼손시키는 이들이 세상을 어지럽힌다.
공자는 각술잔의 이름과 실질이 괴리된 현실을 개탄하며, 정치를 하면 먼저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君君, 臣臣.)는 게 그의 정명(正名) 이론이다. 맹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약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면 그는 일개 졸장부에 지나지 않으므로 몰아내야 한다는 혁명론을 주장한다. 대학에서 이 대목을 강의한 뒤 받은 리포트에서 적지 않은 학생들이 세월호 사태를 언급하며 “선장이 선장답지 않았기 때문에 참극이 벌어졌다”고 썼다. 어찌 배의 선장뿐이겠는가. 온나라 사람들을 집단 우울증에 빠지게 만든 사태에 대해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가 책임을 통감하지 못한다면, 이건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않은, 매우 비교육적인 사태가 아닌가. <맹자>를 보면 “홍수를 다스린 우임금은 세상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보면 마치 자기가 그를 물에 빠져 죽게 한 것처럼 여겼다”(禹思天下有溺者, 由己溺之也.)고 했다. 또 “농사를 가르친 후직은 세상에 굶주리는 이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를 굶주리게 한 것처럼 여겼다”(稷思天下有飢者, 由己飢之也.)고 썼다. 책임 있는 지도자란 적어도 이런 태도를 가진 이들을 말한다.
이상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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