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 신찬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복건성 대중사에서 계현을 스승으로 불경을 읽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부처가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신찬은 책을 덮고 대중사를 떠나 백장을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다. 백장은 중국 선종의 황금시대를 연 고승이다. 깨달음을 얻은 신찬은 대중사로 돌아왔다. 계현이 물었다. “너는 나를 떠나 밖에서 무슨 공부를 했느냐?” 신찬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했다. 하루는 계현이 목욕을 하다 신찬에게 때를 밀게 했다. 신찬은 등을 밀며 말했다. “절간은 좋은데, 부처가 영험하지 않구나.” 계현이 돌아보자 신찬은 또 말했다. “부처가 영험하진 않지만, 빛을 내는구나.” 깨달음을 얻는 데에 절간이나 불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계현은 신찬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랐다.
계현은 여전히 불경만 읽었다. 하루는 계현이 창문 아래서 불경을 읽는데, 벌 한 마리가 창문의 창호지에 머리를 박고 앵앵거리며 나가려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신찬이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다른 곳으로 나갈 생각은 못하고 창호지에만 머리를 박고 있으니, 나귀의 해나 되어야 나가겠구나.”(世界如許廣闊不肯出, 鑽他故紙, 驢年去得.) 열두 띠 가운데 나귀는 없으니, 나귀의 해에 나간다는 말은 영원히 나갈 수 없다는 말이다. 계현은 신찬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불경을 옆으로 치우며 물었다. “너 밖에서 누구를 만났느냐? 내가 요즘 보니 너의 발언이 이상하다.” 신찬이 말했다. “제가 백장 스님에게 멈출 곳을 하나 얻었습니다.” 계현은 절 안의 모든 대중을 불러 모아 앉힌 뒤 신찬에게 법문을 청했다. 신찬의 법문을 들은 계현도 깨달음을 얻었다. <경덕전등록>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얘기로부터, 영원히 오지 않을 날을 ‘여년마월’(驢年馬月)이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온갖 문제가 한순간에 물 위로 떠올랐다. 탐욕과 무책임과 부패가 나라를 침몰시킬 정도로 과적 상태다. 이 일을 겪고도 나라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년마월’에나 살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다른 세상을 볼 줄 모르면 창호지에 머리를 박고 있는 벌레와 같다.
이상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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