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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네모종이의 깜짝 변신…마술이야, 예술이야?

등록 2006-01-26 16:50수정 2006-02-06 15:26

작가 김상헌의 종이접기 작품 ‘지화자’.
작가 김상헌의 종이접기 작품 ‘지화자’.
풀칠도 가위질도 없이 접고 또 접으면
화단·토끼·코끼리·로켓…
못 만들 게 없는 마법의 종이접기 세계
오순도순 소통의 즐거움까지
설 복지갑 함께 접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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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하는 이들에게 접어 만들지 못할 게 있을까. “접을 수 있는 가짓수는 헤아릴 수 없으며 아마도 접지 못할 게 없을 것”이라고 종이접기 책을 300여 종 펴낸 종이나라의 윤재환(44) 이사는 말한다. 잘 알려진 딱지나 비행기, 배, 학은 물론이고 토끼, 개구리, 복주머니, 꿩, 달맞이꽃, 그리고 코끼리, 공룡, 로켓까지…, 또 접은 색종이들을 이어붙이면 색동옷 입은 사람들, 화사한 꽃들의 화단까지도 만들어낸다. 종이를 접고 또 접는 손바닥 위엔 어느덧 새로운 꼴이 태어나 손놀림의 주인 얼굴엔 흐뭇한 웃음이 번진다. 색종이는 물론이고 한지, 신문지, 포장지, 화장지, 심지어 비닐, 손수건, 나뭇잎, 지폐 등 가릴 것 없이, 적게는 단 한 번, 많게는 수백 번의 접힘을 거쳐 갖가지 형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종이접기라 해서 어린이 놀이 정도로만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이미 많은 어른들도 여기에 푹 빠졌다. 1989년 한국종이접기협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졌고, 이곳에서 종이접기 ‘자격증’을 딴 어른들만 17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종이접기를 주로 다루는 종이문화재단, 종이문화원, 창작종이문화원 같은 전문기관도 생겨났다. 종이접기 책 출판도 적잖다. 전국에 초등학교들은 물론이고 300여 곳의 종이접기 교실(지회)들이 교육과 교류활동을 하고 있다. 당연히 인터넷에도 종이접기 사이트나 블로그들이 숱하게 등장했다.

왜 사람들은 종이접기에 빠져들까.

종이접기 꾼 가운데 어떤 이들은 우리 전통문화에 오롯이 새겨져 있던 종이문화 덕분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오순도순 둘러앉아 손을 놀리며 나누는 평화와 소통의 고마움 때문에, 또 어떤 이들은 순수 창작의 즐거움을 찾아 종이접기에 나선다고 한다. 그러나 한결같이 ‘종이의 변신’이 주는 묘미는 그 즐거움의 으뜸이라고 말한다. 종이접기의 기본인 정사각형 종이를 가위나 풀 없이 이러저리 접어 만드는 다양한 창조야말로 묘미 중의 묘미라는 것이다. 노영혜(57) 종이문화재단 이사장은 “한 장의 종이를 앞에 놓고 이 한 장의 종이가 표현해낼 수 있는 창조력, 아름다움, 또 그 조형미 안에 여러 것들이 깃들여 있다”며 “종이접기는 수학이자 과학이며 예술”이라고 말했다.

윷놀이(종이접기협회 회원 작품).
윷놀이(종이접기협회 회원 작품).
“종이접기는 우리 전통생활의 일부”

노영혜 이사장과 남편 정도헌(62·종이나라 회장)씨 부부는 우리 전통이던 옛 종이문화를 되살리자며 1989년 한국종이접기협회를 세웠다. 이 단체는 지금 종이접기 문화의 중심기관이 됐다. 그가 말하는 종이접기 전통은 우리 생활과 밀착해 있었다. “종이배를 만들기 전 단계가 ‘삼신 고깔모자’인데 아이들이 태어나면 닥종이로 고깔을 접어 삼신에 바쳤죠.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종이로 혼백 접기, 지방 접기를 해 제사를 지냈고요. 탄생과 죽음 모두에 종이가 쓰였지요.” 또 승무 고깔을 종이접기로 만들었고, 화려한 꽃으로 꾸민 불교의 ‘지화장엄’, 궁중의 어사화가 종이로 만들어졌죠. 꼼꼼하게 접어 쓰던 종이지갑이나 종이를 꼬아 만든 바구니 같은 생활용품들이 종이문화의 전승품들이다. 무속신앙에서도 종이를 여러 번 접어 일부를 오려낸 뒤 펼쳐 기괴한 모양을 만드는 데 쓰였다.

그렇지만 사실 접기의 즐거움 자체를 좇는 ‘근대 종이접기’는 패전 직후 일본에서 부흥하기 시작해 세계에 널리 퍼졌다. 그래서 종이접기를 뜻하는 일본말 ‘오리가미’(origami)’는 지금 세계 공용어가 됐다. ‘오리가미스트’는 종이접기 작가를 뜻한다. 노 이사장은 “본래 종이는 백제시대에 일본에 건네졌고, 종이접기도 우리나라에서 생활화한 문화였는데 현대 일본에서 더 부흥하는 걸 보고선 우리의 종이접기를 되살려야겠다는 마음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태권도처럼 ‘종이접기(jongie-jopgi)’라는 말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종이접기협회는 우리 민족의 뛰어난 종이문화 사료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저명한 제지역사학자 다드 헌터(1883~1966)가 1933년 조선 땅에 다녀간 뒤 “한국은 색종이를 최초로 만들어 사용한 나라이고, 이를 봉투로 접어 최초로 사용한 민족이다”라는 말을 자서전 <나의 종이 인생>(1958)에 남긴 사실을 최근에 밝혀내기도 했다. 당시에 다드 헌터가 서울 옥인동, 청운동, 세검정, 평창동 등지를 거닐며 한지 만드는 광경을 보며 찍은 수십 장의 사진들이 전해진다.

윤재환 이사는 “우리 민족은 석가탑 안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최소 1250년 동안 보존된 것처럼 뛰어난 ‘한지’의 기술을 지녀 ‘종이의 나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며 “접고 꼬고 뭉치는 종이접기·종이공예와 한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이런 옛 종이문화를 되살리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접고 또 접는 순수 창작의 즐거움”

은행원 출신의 서원선(45·blog.naver.com/origami21)씨는 지금 국내에 몇 안 되는 종이접기 창작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4~5년 전부터 종이접기 창작에 몰두해 지금까지 새로운 종이접는 법 170~180여가지를 창작해냈다.

서씨는 “종이를 접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고 말한다. “사각 종이를 자르지도 않고 풀을 쓰지도 않고 오직 접는 방법만으로 갖가지 재미있는 모양을 창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접는 데엔 꼭 지켜야 할 단계들이 있어요. 한 두 단계를 잘못 접거나 건너뛰면 결국에 완성단계에선 바라던 모양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되짚어 잘못된 곳을 반드시 찾아내야만 하죠.”

많이 접는다고, 반대로 적게 접는다고 좋은 종이접기인 것은 아니다. ”단 한 번을 접어 작품으로 인정받기도 하고 종이 한 장을 무려 300번 이상이나 접어 뛰어난 작품을 내놓는 경우도 있지요. 무엇보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접는 방법이 가장 좋은 창작품인 것 같습니다. 종이배나 종이비행기 같은 전승 종이접기는 완성도가 있고 매력적이기에 지금껏 이어지는 거겠죠.”

그러나 서씨 같은 종이접기 작가들은 아직 많지 않다. 종이접기를 누구나 할 수 있는 어린이 놀이 정도로 여기는 데다, 종이 접는 법의 저작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라고 서씨는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세계의 여러 종이접기 작가들이 한지를 이용한 종이접기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손재주가 뛰어나기에, 우리 것을 세계가 공감할 수 있게 노력한다면 우리 종이접기의 작품성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국내에 소개된 종이접기 가운데 상당부분이 일본인 작품들이고 국내 창작품은 여전히 부족한 현실에서 최근 종이접기 창작의 부흥에 관심을 기울일 한국창작종이문화원(원장 이지영)이 생겨났다.

종이접기 작가들과는 별개로 ‘예술품 같은 책’을 표방한 ‘아트북’ 전문가들도 여럿 생겨나 종이예술의 다양화도 기대된다. 김나래(35) 대한북아트협회 회장은 “큰 종이를 접어만드는 나만의 책을 선보여 널리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종이를 이용해 우리의 오랜 벗인 책의 모양을 다양화해 문화의 가치를 높이는 게 우리들의 일”이라고 말했다.

종이선인장 화분(박찬용 작).
종이선인장 화분(박찬용 작).
“종이는 사람과 사람 소통의 언어”

종이접기하는 사람들은 종이접기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따뜻한 소통을 찾기도 한다. 이들은 평화와 소통을 종이접기의 으뜸 정신으로 꼽는다. 가족끼리, 친구들과 함께, 심지어 낯선 사람들과 마주 앉아 누구나 손쉽게 종이를 접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소통할 수 있다는 거다.

종이접기 작가를 꿈꾸다가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종이접기 강사가 된 이도 있다. 20여 년 째 종이접기를 해온 이상은(42·수원 종이문화원장)씨는 몇 해 전부터 장애인과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종이접기 강사로 나서고 있다. “애초엔 창작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종이접기를 배우는 장애인 아이들의 환한 얼굴을 저절로 이 길에 빠져들었다”고 말하는 그는 정신지체아·자폐아들이나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 어린이들에게 ‘소통’의 도구로 종이접기를 가르치고 있다. 이씨는 “오토바이 사고로 뇌를 다친 청소년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15일만에 종이학을 접으면서 비로소 처음 말을 하기 시작했던 일, 장애인 아이들이 종이접기를 하고 남은 종이에 가슴 찡한 사연과 마음을 담아 내게 전해준 일들은 내가 종이접기를 더 열심히 알려야 할 이유들이 됐다”고 말했다. 강사들은 수감자들에게 종이접기를 전해주려고 교도소에 찾아가기도 한다. 이씨는 “네모 종이 한 장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덕분에 마음이 열리니 종이접기는 즐거움과 기쁨을 나누는 소통”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설 연휴엔 가족이 둘러앉아 복이 두둑하게 채워질 ‘복지갑이나 알에서 막 태어나는 새 생명 병아리를 접어보거나, 조상들의 차례상에 올릴 전승 종이지방을 접어보면 어떨까(접는 법 ‘24면’ 참조). 서울 장충동엔 종이로 무엇을 접어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종이미술박물관이 있다. 무료 관람. 일요일·공휴일은 휴관. (02)2264-4561~4.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종이접기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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