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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알보다 대장금이 세다

등록 2005-11-10 16:52수정 2005-11-12 00:27

지난달 중국내의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 대장금 선풍과 함께 등장한 ‘장금예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젊은이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는 충칭의 한 야외판촉 가게. 충칭/ 모종혁 통신원
지난달 중국내의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 대장금 선풍과 함께 등장한 ‘장금예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젊은이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는 충칭의 한 야외판촉 가게. 충칭/ 모종혁 통신원
중국 대륙 방영 첫날부터 ‘장금열’ 한국음식·한복에도 옮겨붙었다 놀란 중국인 ‘반한류’ 공박 벌이지만 패션·유행에 그친 표피문화 한국내 깊이 붙박인 ‘한풍’과 대조

커버스토리

지난달 31일 중국 당국이 “한국산 김치서도 기생충 알이 나왔다”고 발표했을 때 베이징의 한국 교민들은 긴장했다. 모처럼 형성된 한국음식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학형 농산물유통공사 베이징지사장은 발표 다음날 “<대장금> 열기에 대한 악영향이 가장 우려된다”고 했다.

한국산 김치에 대한 한국 당국의 검사 결과가 발표된 뒤 ‘김치 기생충 알 검출 사건’은 장군 멍군 식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식당가의 매출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온대성 재중한국인요식업체연합회 회장은 8일 자신이 경영하는 베이징 최대 한국음식점인 수복성의 경우 “최근 매출액이 오히려 상승했으며 중국인 손님 수나 김치, 불고기 소비도 평상시와 달라진 게 없다”고 소개했다. 다른 회원사의 경우도 이번 일이 김치나 불고기 소비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주중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8일 “한국과 중국이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했다. “김치가 중국 당국의 조사대상이 됐다는 건 그 만큼 이 음식이 국제화됐다는 의미이자, 한·중 관계가 식탁까지 서로 들여다볼 정도로 밀접해졌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기생충 알’ 파동을 겪었음에도 중국에서 한류는 여전히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반한류’의 파고도 거세지고 있다. 한류와 반한류는 중국 문화산업 인사들에게 반성거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동시에 한국에도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던져주고 있다.

‘장금열’과 신한류=지난 9월1일 중국 대륙에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되면서 ‘창진러(장금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미 대만과 홍콩에서 방영돼 인기가 검증된 터라 수입사인 후난위성텔레비전은 1000만위안(약 13억원)이라는 거금을 기꺼이 투자했다. 첫 방영일부터 ‘장금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방송사에는 “하루 2편 방영이 감질 난다”는 항의전화가 빗발쳤고, 중국어로 더빙한 성우의 발음까지도 시청자들의 간섭을 받았다.


“하루 2편 감질난다” 항의

장금열은 ‘한국음식 열기’와 ‘한복 열기’로 불붙어갔다. ‘일품 대장금’ 등의 상호를 내세워 장금열을 타고 새로 단장하거나 개업하는 한국식당이 폭발했다. 충칭 등지에서는 사진관마다 한복 대여가 큰 인기를 끌었고, 홍콩에서는 <대장금> 방영 이후 인삼과 동충하초 판매량이 10~20% 늘었다. “여성은 대장금처럼 가꾸길 원하고, 남성은 대장금같은 여성을 좋아한다”는 말도 생겨났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8일 보도에 따르면, 후난위성텔레비전은 <대장금> 등의 인기에 힘입어 10월 말 현재 광고 수입이 이미 6억위안(약 78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진작 본전을 뽑은 셈이다.

홍콩 시사 주간 <아주주간> 최근호(10월23일 발행)는 이번의 ‘장금열’을 이전의 ‘한류’와 구분해 ‘신한류’라 이름지었다. “오늘날 중국을 달구는 한류는 이전과 달리 한국 정부가 ‘문화입국’을 표방해 정책적으로 문화산업을 지원한 결과 만들어진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발전은 첨단과학기술산업 등 다른 영역의 성장을 자극하고, 이런 선순환이 한국경제의 운명을 바꾸어놓고 있다”고 보도는 썼다.

‘장금열’은 중국 최고위 지도부에까지 전해졌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9월22일 방중한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바쁜 일정 때문에 <대장금>을 매번 보지는 못한다”고 말했고,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도 “아내가 <대장금>을 즐겨보는데 나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같이 본다”고 했다. 류윈산 당 중앙선전부 부장은 “매일 1억의 중국인들이 이런저런 한국의 드라마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중 국교 정상화 이듬해인 1993년 드라마 <질투>가 처음 중국에 수입됐을 때 반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중국 시청자의 시선을 한국 드라마에 붙잡아맨 건 1997년 중국에서 방영된 <사랑이 뭐길래>다. 중국 방영 기준으로 100회가 넘는 이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4.2%라는 놀라운 인기를 누렸다. 이어 <별은 내 가슴에> <연풍연가> <천국의 계단> 등이 한국 드라마의 명성을 이어갔으며, 2002년 <가을 동화>는 중국 내 21개 채널에서 방영될 정도로 갈채를 받았다. 그해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중국 제목: ‘나의 야만스런 여자친구’)가 가세해 박스오피스에서 1000만위안의 수익을 올리면서 중국에서 ‘하한주(哈韓族)’라 불리는 한류 팬들을 대거 만들어냈다. 중국 통계에 따르면 1993년 한국 드라마는 1편 수입된 데 그쳤으나 2002년 67편, 2003년 252편, 2004년 107편이 수입됐다. 웬만한 한국 드라마는 다 수입된 셈이다.

드라마의 열기에 힘입어 2002년 7월엔 한국 소설 <국화꽃 향기>가 출간돼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고, 이어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내 이름은 김삼순> 등이 출간됐다. 이런 한류 열기는 한국식 헤어스타일, 패션에서부터 한국산 휴대전화와 엠피3 등의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아주주간>은 보도했다.

“한국 드라마 옹호는 매국노”

반한류와 중국의 반성=그러나 ‘장금열’에 대한 반작용으로 올 가을 중국에선 ‘반한류’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반한류’의 전면에 나선 이들은 중국 영상산업의 주역들이다. 이들은 중국 정부가 자국 문화의 보호를 위해 전면에 나서 한류를 제한해주길 바라고 있다.

한국에도 적지 않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홍콩의 액션 스타 청룽(成龍)은 9월23일 자신이 김희선과 함께 주연한 영화 <신화>의 시사회에서 “중국 매체는 한국의 2류 스타를 위해 너무 많은 지면을 돌리고 있다”는 폭탄발언을 던졌다. 그는 “한국에 갔을 때 한국 매체는 온통 자국 스타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차 있었다”며 “할리우드와 한류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의 매체는 중국의 스타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기 탤런트 장궈리도 대놓고 비난했다. “<대장금>은 침술이 중국의 발명품임에도 마치 한국인의 발명품인 것처럼 호도한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았지만 문화적으로는 한번도 침략을 당한 적이 없었다. 만약 중국의 방송과 매체들이 한국 드라마를 이렇게 옹호한다면 이는 매국노와 다를 게 없다.”

이런 감정적인 ‘반한류’ 기류에 대해서는 중국 내부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반한류’에 비판적인 이들은 한국 드라마의 인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아주주간>은 한국 드라마가 주로 편성되는 밤 10시는 “방송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쓰레기 시간대’ 혹은 ‘닭갈비’처럼 먹자니 불편하고 버리자니 아까운 시간대”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시청자의 인기를 누리는 걸 보면 “중국 매체가 중국 드라마에 각박하고 한국 드라마에 관용적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랴오닝성의 작가 장홍제는 “한국 드라마의 주된 주제는 사랑, 가족애, 우정 등이며 가장 큰 매력은 사람의 감정과 심리를 잘 묘사하는 데 있다”며, “한국 드라마를 보면 이런 따뜻한 가치를 통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는다”고 평했다. 네티즌 푸루이쉐는 지난달 29일 인터넷 <광명망>에 발표한 글을 통해 “중국 드라마는 현실에 발을 딛지 않고 허공에서 설교만 하려 들고, 홍콩과 대만 드라마는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극단적인 내용을 다룬다”며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학업, 직업, 애정, 결혼 등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매우 절실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왕후이 저장성 청년연구회 비서는 ‘반한류’의 정서가 위험할 뿐 아니라 중국 문화의 발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진단한다. “중국의 문화산업 종사자들은 한국 드라마가 가져온 압력을 동력으로 전환시켜 중국 드라마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이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드라마 제작자들은 현실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마음만 조급해 국가가 시장을 보호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런 경향이 가장 우려되는 것이다.”

“한류는 한풍에 못 미친다”=자오옌 중국사회과학원 외국문학연구소 연구원의 지적은 한국의 문화산업 종사자들도 귀를 기울여볼만한 대목이다. “중국 독자들은 상업 매체의 부추김 속에서 주로 한국의 유행 문화와 접하고 있다. 나는 물어보고 싶다. 중국인들은 도대체 한국의 본격 문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만약 중국의 독자들이 주로 한국의 이런 유행문화에만 관심이 있고 심지어 이를 모방하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의 지식들이 안다면 우리를 어떻게 보겠는가.”

“반한류 정서 위험“ 자가진단도

한·중 문화교류가 주로 대중문화에 치우친 현실은 두 나라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숙제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일 김하중 주중 대사가 주장한 “중국의 한류는 아직 한국의 한풍(漢風, 중국 열풍)에 비해 대단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지적도 곱씹어볼 만하다. 김 대사는 “한국엔 128개 대학에 중문과가 있는 반면 중국엔 한국어과가 있는 대학이 33곳에 지나지 않는다”며 “한국에서 발행되는 중국 관련 서적은 외국 관련 도서 가운데 최다인 데 반해 중국에서 발행되는 한국 관련 서적은 아주 적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중국 열풍은 깊고 넓은 반면 중국의 한류는 드라마와 패션 방면에 국한돼 있어 아직 표면적인 데 지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 대사의 논리가 단순히 한류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수사인 것만은 아니다. 중국과 한국이 서로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생략하고 대중문화의 유행에만 맡긴다면 한류와 한풍은 한때 불고 그친 바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주소희 인턴기자 sushi100y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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