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나폴리 역사학 주춧돌 앞에 서다 ‘<비코;중, 일, 한> 국제 학술대회’ 참관기
동방과 인연맺은 마르코 폴로 750돌 잔치
동서문화 상호 이해의 토대 쌓은
17세기 철학자 비코 학술회 ‘푸짐한 만찬’
300년 지나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동서문화 상호 이해의 토대 쌓은
17세기 철학자 비코 학술회 ‘푸짐한 만찬’
300년 지나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커버스토리 잠바티스타 비코(1668~1744)는 서양 역사학의 기틀을 세운 이탈리아 학자다. 서구는 물론 중국·일본의 학계에서는 그를 인문학의 마르지 않는 원천으로 삼는다. 그의 사상이 근대와 탈근대의 문제의식에 두루 영감을 줬다고 평가한다. 반면 한국에서 그 이름은 너무도 낯설다. 비코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한국 인문학의 바탕이 넓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조한욱 한국교원대 교수가 글을 보내왔다. 지난 10일부터 사흘간(현지시각) 나폴리에서 ‘잠바티스타 비코;중국,일본,한국’을 주제로 열린 국제 학술대회 참관기다. 그의 글이 비코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마르코 폴로 탄생 750주년을 기념해 이탈리아 곳곳에서 방대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마르코 폴로는 동서 교류의 문을 연 사람이니, 동서 문화의 융합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전체 학술대회의 초점이 맞춰졌다. 이탈리아의 동양학자와 이탈리아를 연구하는 동양의 학자들이 모일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나폴리에서는 그들이 자랑하는 철학자 비코에 초점을 맞췄고, 나는 여기에 초청받았다. 비코가 누구이기에 이탈리아의 거국적인 행사에 그에 대한 국제 학술대회가 포함되었을까? 비코는 보통 시대를 앞서 태어난 천재로 알려져 있다. 데카르트의 영향 아래 수학적 지식만이 진리의 근거라고 여기던 시대에 그는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이 알 수 있다”는 명제를 내세움으로써 인간 사회와 인간의 역사가 연구의 합당한 대상이라고 설파했다.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의 존립 근거를 확인해준 것이다. 그는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그 시대가 사용하는 언어에서 찾았다. 원시시대에는 신화와 민담과 같은 것이 사람들의 언어였기 때문에, 한때는 무시당했던 그런 자료가 그 시대에 대한 이해의 단초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입구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코에게서는 ‘언어적 전환’, ‘담론 분석’, ‘상징적 해석’ 등등 현금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주류를 이루는 방법론의 선례를 찾을 수 있다. 제임스 조이스, 헤이든 화이트, 게오르그 가다머, 에드워드 사이드와 같은 인물들이 비코를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데카르트 과학적 방법론과 대적 열성가들의 간헐적이고 고립적인 노력으로 간간히 빛을 보던 비코는 1968년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심포지엄이 뉴욕에서 열린 것을 계기로 무대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어떤 한 사상가를 기념하는 학술 대회로서는 최대 규모였던 이 심포지엄의 논문집은 1970년과 1973년 사이에 거의 90개에 달하는 학술 잡지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이후 미국과 나폴리의 비코 학회 주관으로 비코에 대한 학술대회가 거의 매년 열려 국제적인 학문 교류의 가교 노릇을 하고 있으며, 이번 학술대회는 올해가 갖는 의미를 고려하여 특히 이탈리아 정부의 지원 아래 거국적으로 열린 것이었다. 11월10일 오후부터 본격적인 발표와 토론이 시작됐다. 첫번째 주제는 ‘비코의 동양’이었다. 그 중 두드러진 것은 장롱시 홍콩 성시대학 교수의 발표였다. 비교문학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장롱시는 비코가 동서의 교차 이해에 한 축이 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이 알 수 있다”는 비코의 원리야말로 다른 문화에 대한 미적인 감수성을 계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서 문화의 융합에 초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11월11일 오전에 두번째 주제인 ‘동양의 비코 연구’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우에무라 타다오 도쿄 외국어대학 교수는 비코의 <이탈리아인 태고의 지혜>를 번역한 노학자로서, 자신이 어떻게 하여 소렐과 크로체를 통해 비코를 알게 되고 마침내 후설의 안내로 비코를 새롭게 ‘발견’하게 됐는지 감명 깊은 여정을 술회했다. 마리오 사바티니 베네치아대학 교수의 ‘주광키안과 비코’가 이어졌다. 주광키안은 <새로운 학문>을 중국어로 번역한 사람이다. 사바티니 교수는 본디 미학 교수였던 주광키안의 인생 역정을 소개하며, 니체와 크로체와 마르크스를 거쳐 마침내 비코의 <새로운 학문>에서 학문과 예술에 합당한 전망을 찾게 된 과정을 상술했다. 다음으로 나의 발표가 있었다. 한국에서 비코 연구는 거의 전적으로 역사학자들에 의해 이뤄져왔다고 밝히며 이종흡 경남대 교수의 책 <마술, 과학, 인문학>과 나의 학위 논문 <미슐레의 비코를 위하여>의 내용을 소개했고, 앞으로 비코 연구가 발전하기 위해 관심 있는 학자들의 연대가 필요하고, 원전으로부터 옮긴 비코 저서의 충실한 번역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후에 세번째 주제인 ‘비코의 테마에 따른 동양과 서양’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주로 언어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서 상형문자를 사용하는 중국어가 상징적으로 갖는 의미에 초점이 맞춰졌다. 가장 뛰어난 것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모라비아 대학교 정화열 교수의 ‘비코와 중국어원학 재검토’였다. 사정상 불참하여 다른 사람이 대독한 논문에서 그는 중국어를 분석하며 그것이 인간의 몸과 관련된 기호임을 증명했다. 몸과 관련된 언어란 모든 인류에게 공통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는 언어다. 이러한 ‘문자 이전의 언어’를 통해 인류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비코야말로 자신의 시대를 훨씬 뛰어넘은 사상가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정 교수의 역량을 체득하는 순간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영감의 원천
여기는 나폴리 역사학 주춧돌 앞에 서다 ‘<비코;중, 일, 한> 국제 학술대회’ 참관기
‘<비코;중, 일, 한> 국제 학술대회’ 참관기 조한욱/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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